전라도서 태어난 미국인, 53년 만에 결국…
권승준기자
입력 : 2012.03.22 03:05
4代 117년 걸친 한국 사랑… 연세대 세브란스 인요한 소장 '특별귀화자' 국적 취득
금발에 벽안(碧眼)인 한 남자가 만세를 외치듯 두 팔로 태극기를 펼쳐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외국인이지만 그의 입에서는 연방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이제 진짜 한국사람이오. 무지하게 기쁜게 우리 함께 잘 살아봅시다잉!"
사방에서 웃음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4대(代)가 117년 동안 변치 않는 '한국 사랑'을 이어온 미국인 집안에서 마침내 첫 '한국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사방에서 웃음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4대(代)가 117년 동안 변치 않는 '한국 사랑'을 이어온 미국인 집안에서 마침내 첫 '한국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청사에서 인요한(53) 박사가 권재진 법무장관으로부터 대한민국 국적 증서를 받고, 태극기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인요한 박사는 4대에 걸쳐 우리나라의 교육, 복지 등 사회발전에 공헌한 미국 기독교선교사 집안의 후손이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국적을 허용한다"는 국적법에 따라 선대(先代)의 공로로 후손들이 특별귀화 허가를 받은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공로로 특별귀화자가 된 것은 인 소장이 처음이다.
실제로 그의 가계(家系)는 선교·독립운동·교육·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 세기가 넘도록 한국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린 기록으로 가득하다. 첫 인연은 1895년 인 소장의 외증조부인 유진 벨(Bell·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한국 땅에 발을 디디면서 시작됐다. 벨 선교사는 '전남 지역 선교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활발한 선교활동을 했다. 그의 사위인 윌리엄 린튼(Linton·한국명 인돈)은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거부 등 항일운동을 주도했고, 이후 한남대학을 설립했다.
인 소장의 아버지 휴 린튼(한국명 인휴)은 말 그대로 이 땅에서 피를 흘리고 뼈를 묻었다. 한국전쟁 당시 군인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고, 1984년 농촌 선교 사업 도중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무덤은 전남 순천에 있다. 인 소장이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휴 린튼은 적정한 응급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택시로 병원에 옮겨지던 중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인 소장은 "농촌의 좁은 길까지 올 수 있는 구급차만 있었어도 아버지는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1993년 미니버스를 개조해 좁은 길에서도 쉽게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된 한국형 앰뷸런스를 만들었다.
인 소장은 그동안 몇 번이나 귀화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가 반대했다. "어머니는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워낙 강해 내 귀화를 반대하셨어요. 너무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죠."
인 소장은 이번 특별귀화허가를 받으면서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을 통해 미국시민권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어머니를 안심시키면서 진짜 한국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전라도 전주에서 태어나 계속 한국에서 자란 토종 한국인이라오. 항상 한국에 살면서도 10% 부족한 마음이었는데 이젠 특별귀화 제도 통해서 100% 한국 사람이 됐응게 아주 기뻐요. 나는 어차피 여기서 뼈를 묻을 거니까. 이제 마음이 더 편하니까 오늘부터 더 다리 쭉 뻗고 잘라고."
'政治.社會 關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國家正常化 推進委員會 親北人事 100名 發表 (0) | 2012.03.22 |
---|---|
제주 해군기지, 천안함 폭침 2주기를 맞으며..... / 조선닷컴 토론마당 (0) | 2012.03.22 |
[사설] 진보당, 부정선거한 손으로 無罪 방망이도 두드리나/ 조선일보 (0) | 2012.03.22 |
'선거혁명'이 가능한가? / 김동길 (0) | 2012.03.18 |
이정희가 從北이 아니라면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 趙甲濟 (0) | 2012.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