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04 22:22
할리우드 액션 대작들 가운데엔 미국 정찰위성의 뛰어난 능력을 과시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뉴욕 맨해튼의 건물 사이로 도망가는 주인공을 수백km 상공에 떠 있는 정찰위성이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기까지 한다. 바닷속 깊이 움직이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군용위성이 실시간으로 탐지해 어디로 움직이는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파악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영화 속의 얘기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사진을 찍는 정찰위성은 특정지역 상공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24시간 특정지점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 잠수함의 경우는 추적·감시하기가 훨씬 어렵다. 최신 대(對)잠수함 장비로도 적(敵) 잠수함을 실제로 탐지할 수 있는 확률은 10~50%에 불과하며, 인공위성으로 바닷속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은 추적할 수 없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민주통합당 한반도·동북아평화특별위원장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 "(한반도는) 위성에서 관찰하는 모든 물체가 레이더로 디지털로 기록되고, 그 배가 언제 어디서부터 공격받아서 흘러갔는지 다 나오고, 그게 청와대에 있다"며 "그런 자료를 하나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이야기해서 국민적 신뢰가 흐려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와 군(軍)이 2010년 3월 26일 밤 천안함 피격 전후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숨겨 의혹을 사고 있다는 취지인 듯하다. 이 전 총리는 또 "만약 어뢰에 의해 공격받은 게 사실이라면 방어전선이 뚫렸다는 것이고, 해군작전사령부와 합참이 책임져야 하는데 앞뒤가 안 맞는 조치를 했다"며 "군 지휘체계를 점검하고 문책할 사람을 문책해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군에선 "총리까지 지내신 분이 상식에 맞지 않고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을 받아 폭침(爆沈)됐지만 공격받았을 당시나 직후엔 북 잠수정의 공격인지 확실히 몰랐고, 뒤에 민·군 합동조사단의 정밀조사에 의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한·미 군 당국은 북 잠수정이 수중으로 침투해 천안함을 공격했던 상황을 추적·감시할 수 없었으며, 피격을 전후한 천안함의 항적(航跡)은 미 인공위성이 아니라 우리 해군의 KNTDS(해군 전술지휘통제체계)로 파악하고 있었다. 천안함 항적 KNTDS 자료는 사건 후 국회 등에 비공개로 제출됐다. 또 북 잠수정 경계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당시 합참의장을 비롯한 합참 작전라인 핵심 관계자들과 해군 작전사령부, 해군 2함대 고위간부들이 상당수 옷을 벗거나 징계를 받았다.
오는 26일로 천안함 폭침 2주기를 맞는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괴담(怪談)이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일부 정치세력이 어떤 의도를 갖고 괴담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천안함 46용사와 부상자들의 희생과 고통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