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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에는 목적이 있다
당신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당신은 하나님 안에서 챔피언이 될 운명을 지닌 사람이다. 당신 안에는 아직 표출되지 않은 재능이 꿈틀대고 있다. 당신에게는 아직 이용되지 않은 잠재력이 있다. 열등감이나 낮은 자아상은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깨를 당당히 펴라. 머리를 높이 들라. 당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다. -조엘 오스틴의<최고의 삶>중에서- 하나님은 나를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직접 지으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실 때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작아보일지 몰라도 우리의 미래를 보고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크게 보시고 자기의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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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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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사랑으로 정성을 다하여 사랑의 물을 주었던라면 예쁜열매가 사랑을 받았을텐데요. 사랑을 보내지 않았더니 이렇게되었답니다. 저와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오늘하루도 반성하는 그리스도의 삶으로 이여지길 소망해 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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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풍금 찬양.간증 어와나감독 필리핀선교 인토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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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위기 - 아 5:2~6 |
2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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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는 사랑과 기쁨의 노래지만 오늘 이 부분은 신랑과 신부의 이별 장면을 다룬 우울한 내용입니다. 그토록 사랑하여 만난 사이지만 이성간 부부간에도 사랑의 위기는 있습니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라던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에도 느닷없이 사랑의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문을 열어다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2절). 그렇습니다. 신앙의 위기는 우리가 졸거나 잠 잘 때 찾아 옵니다. 우리가 방심하거나 나태하여 안일함에 빠질 때 닥칩니다. 주님은 <내가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고 당부하셨지만 제자들은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아무리 마음이 원해도 육신이 약하므로 누구든 긴장을 놓으면 잠에 떨어지고, 또 잠에 빠지면 사랑과 믿음에 필연적으로 위기가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신랑이 밖에서 문을 두드릴 때 지체하지 마시고 일어나 문을 여십시오. 주님은 졸거나 잠자는 우리를 깨우시기 위해 수시로 말씀을 통해, 성령을 통해, 혹은 환난과 시련을 통해, 양심을 통해 우리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 말씀은 불신자 전도용이 아니라 기성 신자들인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주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내가 옷을 벗었노라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3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지만 이건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더 이상 신랑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여전히 그는 <나의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이미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고, 발까지 씻었는데 다시 옷을 입고 발을 더럽히는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겪기 싫다며 신부가 이렇듯 늑장을 부립니다. 오늘 우리 역시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자주 번거로움, 수고로움, 희생, 십자가, 양보, 손해 등을 계산하며 선뜻 일어나 문 열기를 주저하고 회피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핑계와 변명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얼마나 한심하고 뻔뻔한지 어이가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하지 마시고 당장 일어나 주님께 문을 열어 드리십시오. 신랑을 기다리는 자는 당연히 옷을 입은 채 깨어 허리띠를 띠고 있어야 합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눅 12:35-36).
사랑하는 자가 가버렸네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6절). 오늘 말씀 가운데서 가장 슬픈 대목입니다. 늑장을 부리던 신부가 일어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내 사랑하는 자>가 가버린 뒤였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때를 놓친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사 55:6)고 했고, 또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고 했습니다. 이제 술람미 여인은 때늦은 후회와 자책으로 가슴을 칩니다. 그토록 좋아했던 신랑이었건만 자신의 태만과 나태와 무책임으로 밖에서 문을 두드리던 신랑을 놓쳐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미련하여 그때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다가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사 마음의 분별이 오면 그제서야 자신의 죄와 허물이 얼마나 크고 막심한 것인지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새해에는 결코 늑장을 부리고, 태만하여 신랑이 떠나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신랑이 문을 두드릴 때 즉각 응답하며 문을 열어 영접하는 명민한 신부, 깨어 근신하는 신부가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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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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