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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을 보이라
하나님은 강물이 갈라질 거라는 확실하고 절대적인 증거를 제사장들에게 미리 주지 않으셨다 그들이 강물에 발을 담글 때까지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으셨다. 헌신과 순종의 첫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강물을 멈추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발을 내디뎌 주님의 지시하심을 따를 때, 산을 옮기는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빌 하이벨스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중에서-
주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세상 가운데 더럽혀진 신을 벗어 버리고 아직 남아있는 작은 의심과 두려움을 온전히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네 믿음을 보이라” 주님이 말씀하실 때 망설임으로 뒤 돌아보지 마십시오. 주님의 음성을 쫒아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순종과 결단만이 주님이 약속하신 축복과 생명의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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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던진 떡 - 전 11:1~4 |
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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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1절). 주님은 이 세상에 자신을 던지셨고, 그 아름다운 투신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을 마련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물 위에 던지신 떡을 건져 내 먹는 것이야 말로 사랑으로 살이 붙고 따뜻한 피가 돌며 믿음의 잔뼈가 굵어지는 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또 그렇게 자라고 성숙한 사람들이 하나 둘 이 세상을 채워나갈 때 춥고 삭막한 세상에도 생명의 온기가 넘칠 것이며, 또 그게 곧 우리 모두의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2절). 이것은 구제에 인색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후히 기부하라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물론 그것은 당장의 결실이 없고, 기약없는 일을 기다리는 막연한 기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곱 사람, 여덟 사람이 내가 던진 떡을 건져내 양식을 삼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보람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거리에는 벌써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했습니다. 춥고 허기진 이웃들을 위해 내 가진 떡을 조금이나마 물 위에 던지는 일에 좀 더 관대하십시오.
무슨 재앙이 임할지 <…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2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무슨 재앙을 당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올해만 해도 지구촌 도처에서 각종 재앙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최악의 불행을 당해야 했고, 지금도 가공할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홍수, 폭설 등으로 피난생활, 이재민 수용소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만이 아니라 재앙은 언제든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현자는 그 때를 위해서라도 흐르는 물에 떡을 던지는 일에 인색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내가 써버린 재물은 그것으로 사라져 버리지만 물 위에 던진 떡은 소멸되지 않고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린 후 추수 때 다시 풍성한 수확을 보듯, 상인이 자본을 투자해 훗날 많은 이득을 올리듯 그렇게 도로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남을 위해 헌혈하지만 언젠가 내가 필요할 때는 헌혈한 이상의 수혈을 보장받는다는 논리입니다. 세상의 약삭빠르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질없는 짓 같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고 희망의 열매를 가져다주는 실마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반드시 대가를 바라고 투자하는 장사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값진 보상과 축복이 있음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풍세를 살피고 구름을 바라보고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4절). 세상의 지혜란 지금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를 면밀히 살펴 어느 쪽을 향해 돌아누울 것인지를 정하는 것입니다. 또는 저 산 너머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이 곧 사라지고 말 것인지를 잘 판별하여 때를 놓침 없이 누구의 편에 붙을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처신의 경륜은 바람 부는데 섣불리 씨를 뿌리지 말고, 구름이 끼어있는데 추수하겠다고 함부로 들녘에 나가지 말라고 점잖게 훈육합니다. 그러나 현자는 <지금의 풍향>만 보는 자는 역풍을 보지 못하고, <지금의 잿빛 하늘>만 주목하는 자는 이윽고 떠오를 태양을 보지 못한다고 경계합니다. 즉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기라 해도 흐르는 물에 떡을 던지는 일만큼은 멈추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살기가 팍팍하다고 기부금, 헌금부터 줄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습니다. 부디 이 은혜로운 성탄의 계절에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며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펴는 일에 보다 관대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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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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