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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지
“무슨 일이든 돈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그것처럼 고단한 삶은 없어요.
자신의 직업 안에 희망을 불어넣고, 꿈을 불어넣고, 정열을 불어넣어야 하는 거지요.
저처럼 과일 파는 사람이 없으면 되겠어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건강한 생활도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요.
내 생활도 꾸려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건강도 책임져주는 소중한 일인데 제가 어떻게 소홀히 할 수 있겠어요.”
-박성철의 ‘당신의 이름은 희망입니다’ 중에서-
직업을 선택할 때 많은 이들은 최대한의 물질적 보상을 쫒아 갑니다.
그래서 일을 통해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이들을 늘 부러워하며 자신의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업은 물질적 충족감을 채워주는 도구로만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내가 어느 자리에, 무슨 일을 하든지 나의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을 믿고 기대하며 늘 주님께 하듯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실과 정직으로 어디에 있든지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물질의 축복만이 아닌 삶의 기쁨과 가치를 발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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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매자 1 - 전 10:1~4 |
1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 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 3 우매자는 길에 행할 때에도 지혜가 결핍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의 우매한 것을 말하느니라 4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순이 큰 허물을 경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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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역시 <지혜> 혹은 <지혜자>입니다. 그러나 이 10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어휘는 <우매> 혹은 <우매자>입니다. 전도서에 나오는 <지혜>라는 개념이 <지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하는 <신앙적 개념>이듯, <우매> 역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보다 <영적인 개념>입니다. 시 14:1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랬습니다. <지혜>가 그렇듯 <우매>도 저급한 지적 수준이 아니라 철저한 신앙적 개념임을 염두에 두고 현자가 이르는 우매자의 몇 가지 처신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는 자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1절). 파리 한 마리가 옥합에 들어가 죽으면 거기 담긴 향유 전체가 썩어 악취를 냅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일을 소홀히 하면 결국 큰 일까지도 다 망치고 그르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어리석은 우매자의 모습이라는 지적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는 늘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 보다도 한 달란트에 몹시 약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적기 때문입니다.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는 명분도 있고, 생색도 나지만 한 달란트는 너무도 하찮은 양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 세속적이고도 물량적인 가치관에 젖은 소치고, 또 달란트를 맡긴 주인에 대해 무지한 탓입니다. 주인은 오히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일을 맡기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한 달란트에 무책임한 종에게는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을 어두운 바깥에 내어 쫓으라!>며 혹독하게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작은 일을 비웃지 마십시오. 한 달란트를 과소평가하는 우매자가 되지 마십시오. 오늘이 벌써 연말결산의 달인 12월 첫 날입니다. 올 한 해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해 왔는지를 진지하고도 냉정하게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왼쪽에 마음을 두는 자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2절). 성경이 말씀하는 오른편은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다고 했고, 사도신경도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하며 고백합니다. 또 마지막 심판 때도 양은 심판주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현자는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을 택하고 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쪽을 우선적으로 결단하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오히려 많은 이들이 왼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편하고 생색이나고 이익이되고 갈채를 받고 길이 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결코 장삿속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손해가 되지 않아야 믿고 고단하거나 외롭거나 희생이 따르면 가던 길도 미련없이 포기하고 왼쪽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다 우매자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편16:8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그랬습니다. 여호와는 내 우편에 계십니다. 우편을 택하십시오. 그래야 내 인생이 요동치 않습니다.
감정에 따라 춤추는 자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4절). 이게 바로 우매자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로지 자기 감정대로만 삽니다. 자신의 분을 조절하지 못해 성질이 날 때마다, 마음이 상해 주체하지 못할 때마다 자리를 옮겨 다닙니다. 갈수록 사람들이 자제할 줄을 모릅니다. 참는 게 미덕인 시대는 한참 지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수틀리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내팽개칩니다. 그러나 어디든 늘 좋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거기서도 어쩌다 감정이 상하면 또 자리를 뜹니다. 마치 보던 신문을 끊듯이, 마시던 우유를 그만 두듯이 그렇게 편리하게 결별을 고합니다. 주님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자신도 오래 참으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오래 참으사 우리가 다 구원얻기를 바라신다고 하셨고,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습니다. <내 감정에 충실했어! 내 감정에 솔직했어!>란 말로 자신의 경박한 처신을 합리화 하지 마시고 자제하고 절제하고 숙고하셔서 진중하게 거취를 정하십시오. 그런 사람이 우매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시는 지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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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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