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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는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움직여야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생명력 있게 남아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연종 목사의 ‘섬기는 그리스도인’ 중에서-
주의 말씀을 기초로 삼아 운영되는 교회는 결코 어둠의 시험 앞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각 사람의 심령을 감화시키고 그 말씀이 어둠의 뿌리를 잘라내는 검이 되어 성도의 마음과 행동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의 말씀을 기틀삼아 주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자는 주 앞에 더욱 겸손하고 영육간에 강건해짐으로 주의 어린양들을 돌보기에 부족함 없는 목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에 비춰 신앙을 점검하십시오. 또 교회의 절기행사와 예배에 앞서 먼저 기도로 주 앞에 엎드리며 말씀에 어긋남 없이 준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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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향한 여정 - 빌립보서 2:12~18 |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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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믿음이 생기고, 이 믿음은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구원에 대해 성경은 두 가지 차원을 말씀합니다. 첫째는“구원을 받으라”(행16:31)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은 구원은 믿을 때 즉시 얻어진다는 구원의 질적인(quality) 측면을 말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구원이란 인간이 스스로 점진적인 고행이나 수도를 통해 얻는 종교적인 해탈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는 즉시 천국의 백성이 되어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한 강도는‘강도’로서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것입니다(눅23:43). 여기서 구원은 즉각적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어떤 착하고 합당한 행위에 대한‘보상’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의 또 다른 차원을 말하는데, 그것은“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매일 삶 속에서, 천국에 가기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독일의 본회퍼 목사는“나를 따르라”는 책에서“값싼 은혜”를 말합니다. 믿으면 구원을 얻으므로 계속 멋대로 살다가 적당한 시기에 회개하고 교회에 가면 구원을 받는 것 아니냐는 식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주는 은혜는 결코 그처럼 값싼 것이 아니라. 구원은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바울은“구원을 이루라”고 촉구합니다. 구원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루어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두렵고 떨림”은 이 구원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가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12).‘두려움과 떨림’은 공포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있다는‘경건한 자각’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그의 의로우심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려움이야말로 참된 경건과 영성의 기초입니다.‘떨림’은 전율이다. 구원이란 믿음을 통해 죄의 용서를 받고 천국 백성이 된 성도가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이 지상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의 전 과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의 삶을 종종“마라톤 경주”(딤후4:7)로 비유했습니다. 마라톤은 속도와 호흡을 조절하며 몇 시간을 달리는‘장기전’입니다. 이처럼 이미 구원받은 성도는 선물로 받은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늘 믿음의 선한 마라톤을 하는‘영적 달리기 선수’입니다(16). 그러므로 구원받은 날을 기억하라는 요구는 대단히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는 것인데, 우리가 부르심을 받는 그 날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데, 무슨‘구원 받은 날’을 정확히 기억하라는 것인가? 물론 우리는 예수를 영접해서 눈물 콧물 흘리며 통회하고 회개했던 날은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이라는 긴 과정의 한 부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명심하십시다. 믿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실 그 날까지 천성을 향해 하루하루 걸어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어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가도록 소원을 갖게 하시고 행하게 하십니다(13).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민감하게 반응함으로 순종하면 아름다운 구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적용] - 구원의 확신이 있나요? 나는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나의 말로 정리해 봅시다. - 구원받은 날보다,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나는 어떠합니까? -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얼마나 경건의 삶을 유지하고 있나요? 성령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믿음을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심으로 자녀 삼으심 감사합니다. 구원의 확신속에서 구별된 삶을 통하여 오늘도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시옵소서. 주님, 나를 통하여 이루어 가실 그 일을 기대합니다. 성령충만케 하심으로 순종하게 하시고 바른 신앙의 길 가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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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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