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어머니라는 기억이 아예 없었드면 좋았을터인데...
겨우 학령의 나이에 접어든 시기에 잠시 잠깐 모습을 보였다
마음 깊은 곳에 상처만 남기고, 자식을 버린 채 이혼을 한 어머니,
난 한 동안 자라면서, 어머니란 단어와 모정(母情)에 회의(懷疑)를 가졌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나를 낳아 준 어머니와 같다 한다면
어느 누가 모정이란 말을 입에 담을 것인 가 싶다.
닫혀진 외갓집 대문 넘어로 퍼부어진 물세례를 받은 게
낳아 준 어머니를 기억에서 지우게 된 마지막 의식과도 같았다.
대문 밖에서 물세례를 받고 돌아선 이후부터
어머니란 단어를 적어도 나의 마음 속에서는 지운 채 살았다.
그후 중학교를 졸업 할 시기에 어머니가 중병으로
몸져 누워서 아들을 보고 싶어한다고 이모들이 소식을 전했지만
나는 단호히 만나는 것을 거절 하였기에 생전에 다시 볼 기회는 없었다.
이제 내 나이도 고희(古稀)를 바라보게 되니
긴 세월의 저 편, 먼 곳으로 사라져 간 아픈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여러 종류의 사랑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무척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데, 나에게는 그 사랑에 대한 기억은 없다.
오히려, 사랑은 커녕, 지워지지 않는 가슴 아픈 상처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혼을 하면서, 자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상처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이유를 불문하고, 이혼경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특히 자식을 낳은 후, 이혼한 사람에 대해서는
일종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다.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는 많이 둔하다는 생각을 하는 때가 많다.
나름대로는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못하는 가 보다 하는 생각이다.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잘 아는 것처럼
사랑도 많이 받아본 사람이 제대로 알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
현상을 받아 드리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인생이 짧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긴 세월을 범인(凡人)으로 살아오면서
그런데로, 소임을 잘 감당하면서,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 데,
아내와 자식도 사랑한다고 생각을 했었는 데
역시 사랑하는 방법이 서툴렀던 것 같다.
은퇴생활에 접어들고 보니, 이것이 진짜 자화상을 보는 게 아닐 까 싶은 게,
사회 일선으로부터 자연스런 현상의 왕따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왕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간에는 기가 막히는 지경의 얘기를 아내로부터 듣게 되었으니,
아내가 자신의 몸이 중병을 얻지 않았더라면
황혼이혼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는 장 기간의 병환 중에 나타난 짜증 일 것이라 여기고,
정작 내 마음으로 진담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아무리 진담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부부 간에 이런 얘기가 오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아내를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해변에 둥지를 틀고
은퇴생활을 시작 하였는 데,
문득문득 삶에 대해,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뉘라서 현재 내가 격고 있는 상황을 이해해 줄텐 가!
따지고 보면, 빛 좋은 개살구처럼 살아온 인생인 것 같기도 하다.
부모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은 다른 이들로부터도 제대로 사랑을 못 받는 것인지
자신의 요즈음 처지가 종종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어찌 할 수 없는 일,
이 모두가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의 몫이려니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을 추수리면서,
남은 날이라도, 빛 좋은 개살구의 인생이 되지 않도록
더욱 더 의미있게 살아야겠다.
자주고름/최성남 대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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