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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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향기] 이병준 대표의 "역지사지가 안될 땐 억지사지라도 해야 산다."

鶴山 徐 仁 2011. 6. 25. 00:11

역지사지가 안될 땐 억지사지라도 해야 산다.
이병준

얼마 전 또 존속살해 사건이 터졌습니다. 삼십대 중반의 한 남자가 29년 전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죽이고 곧 의붓아버지를 잇따라 살해한 사건입니다. 어릴 적 엄마가 집을 나간 후 곧 새어머니가 들어왔으나 그 관계도 원만치 못했고,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마저 그나마 몇 년 뒤 세상을 떠났고 그 후로부터는 고아원으로 전전하며 험난한 세월을 지냈습니다.
어른이 되어 ‘내가 왜 이렇게 살까?’를 생각하는 그는 1차 원인제공자로 어머니를 떠올렸고 그런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중 가족관계증명을 발급받다 어머니의 주소를 알게 되어 29년만의 모자상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술을 마시며 4시간 이야기를 하던 끝에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문란한 생활을 해 내 인생이 꼬였다.”며 반성하라고 다그쳤고, 이에 어머니가 “내 아들이 아닌 것 같다.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말하자 미리 준비한 흉기로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경찰은 전했습니다. 그 뉴스를 전해 들으면서 몇 해 전 존속살해 사건의 이 모 군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이야기는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었는데요, 어쩜 두 남자의 경우가 그렇게 비슷한 지, 또 안타까운 사연이 된 두 어머니의 삶이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은지요. 정말, 왜 그렇게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부부치료 장면에서 결혼한 지 20년, 30년이 지났는데 처음으로 “미안하다” 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며 우는 부부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몇 해 전 해외 부부세미나에 참석했던 20년차 부부가 그랬습니다. 보통은 남편들이 미안하다고 고백할 때 아내들이 우는 데 그 부부는 아내가 미안하다고 했고 남편의 통곡이 터졌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면 정말 “미안하다” 고 말하는 것, 그래서 억지로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거듭 깨닫게 됩니다. 억지로라도 역지사지를 해야하는 심리적 이유는 분노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거절감의 외현화는 분노
심리학에선 치명적인 상처가 된 사건을 trauma라고 하는데요 사람에 따라 단 한 번의 트라우마가 일생 전체를 좌지우지 할 만큼 크게 작동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태어나 자란 원가족에서 경험한 트라우마가 결혼관계 속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두 사람의 경우는 일생에 한 두 번의 trauma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 중에는 7살 때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육체관계를 갖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것이 있었습니다. 7살 아이에게 부모의 성행위를 보는 것도 엄청난 트라우마가 됩니다. 부모야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일 수 있지만 아이 입장에선 부모님이 처절하게 싸우는 장면으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더구나 부적절한 관계 현장을 목격했을 때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겠죠. 오래된 영화 <양철북>의 주인 오스카는 어머니의 외도장면을 목격하고 더 이상 성장하기 않기로 결심하며 어린아이 상태로 양철북을 두드리며 살아갑니다. 그 때는 ‘어떻게 사람이 성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심리학을 공부하고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스카가 취한 심리적 행동은 ‘고립(isolation)’으로서 자기 속에 머물러 버림으로서 더 이상의 상처를 받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그것은 거절에 대한 상처가 너무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반사적으로 문을 닫는 행위와 같습니다.
사람에게 거절감은 목숨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상처를 남기며 분노가 쌓이게 되면 극단적인 행동까지 하게 되는데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살인 동기도 거절감으로 쌓인 분노의 극단적 표출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거절을 마음에 쌓아두고 있다가 한꺼번에 폭발시킨 것이죠.
이것을 교류분석(T.A) 심리학에서는 ‘회색 경품권’을 교환했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두 존속살해의 이유는 회색경품권을 교환할 시점에 그 대상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싸움은 보통 내용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용이야 조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 고상한 말로는 ‘타협’ 이나 ‘협상’ 이라고 합니다. 타협이나 협상이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태도 때문입니다. 즉 거절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협상의 달인들은 철저히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 본다고 합니다. 그 작업이 잘 될수록 대비할 수 있고 협상 장면에서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다고 합니다.
가족관계에서도 마찬이겠죠? 따라서 역지사지는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역지사지가 안되면 억지사지로 꼭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