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다.
카이로는 아라비아어로 '승리자' 를 의미한다.
카이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전략적인 요충지로, 고대부터 도시가 건설된 것이지만
같은 이유로 지배자의 변동은 심하였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통치할 때에는 문화가 정체하였으나,
1798∼1801년프랑스 점령시대에는 시가가 확장되었고,
영국과 터키의 연합군이 카이로를 프랑스에서 탈환하여
터키의 주권하에 메메드 알리 왕조의 수도가 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영국보호령화(1918), 형식적인 독립(1922) 등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1946년까지 카이로를 지배하였다.
나일강 서쪽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고,
시내에는 옛 성채와 아므르사원(642)·알아즈하르 사원(970)을 비롯하여
많은 이슬람 사원과 궁전 등의 건축물· 박물관, 그 밖의 문화시설이 있어
관광자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인구 : 690 만 )
카이로시
피라미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건조물인 피라미드는
고 왕국의 전성기인 기원전 2700년 경에 만들어 졌다.
이집트 전체에서 94개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로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쿠프왕의 피라미드의 경우 2, 352, 000개에서 268만 여개 정도의
각 2.5t 내지 10t 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었다.
밑변의 길이 230.3m, 겉표면에 있었던 돌의 17만여개는
아랍과 터키 점령하에서 건축자재로 재활용 되느라 벗겨 졌다.
스핑크스
스핑크스는 이집트 어로는 '살아 있는 형상'이라는 의미의
'셰세프안크(shesep ankh)'라고 불려졌다.
사자의 앞부분과 인간의 머리가 결합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 근동에서 고대인들이 가장 힘세고 완벽한
사자의 앞부분, 황소의 뒷부분, 독수리의 날개
그리고 인간의 머리로 구성된 신화적인 동물입니다
피라미트 주위노점상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은 1857년에 세워졌다.
현재 10만점이 넘는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된 유물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최소한 3~4일이 소요된다
박물관주위 전시물
박물관주위 전시물
박물관주위 전시물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박물관 전시물
멘피스 박물관
멤피스 박물관은 람세스의 거상이 있는 곳이다.
무릎아래는 잃어버렸지만 머리쪽은 완벽한 굉장한 미남이다.
긴 수염에 왕권의 상징인 코브라 모자를 쓰고
미완성인채 누워있는 높이 5m, 신장15m의 거대한 석상이다
카이로대학
아즈하르 사원
무하마드 알리 사원
이슬람교 예배당으로 1857년에
사이드 파샤에 의해 완성되었다.
연필 모양의 뾰족한 2개의 첨탑이 특징이다.
이스탄불의 사원을 본따 만든 사원이다.
이집트가 오스만 터 지배 하에 있을 때,
이집트를 다스리던 총독이었다.
카이로 전경
카이로 시내를 흐르는 나일강.
나일강과 그 삼각주 지대의 수로에 의한 수운도 발달하였다.
타흐리르 광장 전경
카이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광장으로 왼쪽에
나일강이 바로 흐른다. 오른쪽 뒤쪽의 옆으로 길게
나 있는 빨간색 건물이 이집트 박물관이다
카이로의 전경
시가지 풍경
카이로 시장 모습
Opera House - Opera Aida가 초연된 곳
카이로회담 (1943년11월27일)
카이로 선언이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한국에 관한 특별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현재 한국민이 노예 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 독립 국가로 만들기로 결의한다"고 명시해,
한일합방 이후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했다.
이 선언의 내용은 45년 포츠담 선언에서 다시 확인됐다.
이집트의 그림자
이집트 유혈시위 5일째... 누적 사망자 100명 넘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지난 25일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102명이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또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경찰이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면서 지난 이틀 사이에만 73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등 주요 대도시에서의 약탈도 잇따르고 있다.
영국의 BBC 방송에 따르면, 시위 5일째인 29일(토요일)에도 비바 시와 나세르 시의 경찰서를 공격하려던 시위대 17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카이로 중심가의 내무부 청사로 진입하려던 시위대들도 경찰의 발포로 최소 3명이 사망했다고 알 자지라 방송 등은 전했다.
카이로 시민들은 이날 오전부터 알-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오후 들어서면서 주변 큰 거리를 가득 메우며 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새벽 밤 TV연설을 통해 내각을 해산하고 경제·정치 개혁을 약속했지만, 시위대는 “무바라크는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세를 꺾지 않았다. CNN 방송은 “이집트인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공허한 개혁 약속에 이제 염증을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제2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수천 명이 중심가 회당 부근에 집결해 시위를 계속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이집트 당국은 전날 오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로 선포한 통금 시간을 이날엔 오후 4시부터로 늘렸으나 시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두시위를 계속했다. 이곳에선 최소 31명의 시위대원이 숨졌다.
치안이 악화하면서 절도·강도 등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카이로의 한 시민은 “도둑들이 각 집을 돌면서 금품을 훔치고 있어서 무기를 들고 집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며 “몇몇 범죄자들은 구급차와 순찰차를 훔쳐서 몰고 다니고 있다. 도시 전체가 미쳤다”고 BBC에 전했다. 불안을 느낀 이집트의 부유층과 사업가들은 개인 전용기로 나라를 떠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
- ▲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는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등 주요 도시를 비롯한 이집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도소 수감자 1000여명 탈옥
교도소 수감자들의 대규모 탈옥사태도 이어졌다. 이날 이집트의 나일 TV는 “수백명의 죄수들이 카이로 남쪽 파이윰 교도소에서 탈옥했다”고 전했다. 탈옥한 죄수들은 시내로 진입해 절도·강도를 일삼고 있으며, 경찰력이 충분치 않아 시민들이 탈옥한 죄수들을 잡아 군에 인계하는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한편 퇴진 압박에 직면한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최측근인 오마르 술레이만 정보국장을 부통령에, 아흐메드 샤피크 전 항공부 장관을 총리로 임명했다. 1993년부터 20년 가까이 정보국장을 맡아온 술레이만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와 함께 무바라크의 후계자 후보로 거론됐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유사시 권력이양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성난 시위대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엘바라데이 가택연금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으로서 현재 이집트 반정부세력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는 29일 아랍어방송인 알 자지라 방송에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권 내 인사 교체가 아니라, 정권 교체”라며, “무바라크가 계속 권좌에 앉아 있기로 한 결정은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브루킹스연구소 산하 도하 센터의 샤디 하미드 연구원은 이집트 시위대가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번 인사는 시위대를 더욱 부추기고,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요구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45만 이집트군의 충성심은?
현재 주요 도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처음으로, 군이 탱크를 동원해 최소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29일 “이집트를 해치는 약탈과 무질서 등을 중단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45만 명의 이지트군이 무바라크에 끝까지 충성할 것이냐는 것은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