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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송희영 칼럼] 정치하는 자들의 아동 학대(虐待)/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1. 1. 24. 22:08

 

입력 : 2011.01.21 22:01

송희영 논설주간

공짜 복지 논쟁에 벌써 배부른 시늉해선 안된다
평생 월급 주자는 시민운동도 나올 판
채권을 손쉽게 펑펑 찍다간 국가 부도 무덤에 들어설 것

무상 급식, 무상 의료, 무상 보육 같은 공짜가 정치권에서 어지럽다.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처럼 통 큰 복지(福祉) 상품도 속속 출시된다. 주민투표 하자는 세력도 있고, 복지에 들어갈 세금을 부자들 지갑에서 빼내자는 축도 있다.

벌써 배부른 시늉을 하면 안 된다. 홀로 사는 노인에게 무료 장례식을 제공하고 해마다 제삿밥 올리겠다는 정치인이 나올 것만 같다. 원만한 성생활이 국민 행복지수를 높여준다며 매주 묘약 한 알씩을 배달하겠다는 공약도 기대할 만하다.

아직 초보 단계의 복지 논쟁일 뿐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보다 더 심했다. 모든 국민에게 태어날 때부터 평생 월급을 주자는 정치 활동(Basic income 운동)도 여러 나라에서 있었다.

어차피 출생 축하금에서 출발해 무상 보육, 무료 급식, 의무 교육에 이어 실업수당, 노후연금까지 국가가 평생 복지를 제공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럴 바에야 쪼개서 주지 말고 탄생한 날부터 죽는 날까지 모든 개개인에게 정부가 기본급을 통장에 넣어달라는 논리다. 갖가지 이름의 복지 예산을 합해 보면 그럭저럭 계산을 맞출 수 있고 행정 비용도 훨씬 안 들어간다는 보고서가 적지 않다.

우리 정치권에는 순진해 보이는 구석이 남아 있다. "무슨 돈으로 공짜 세례를 퍼붓겠다는 거냐"고 반박하자, "세금을 더 거둬야죠"라는 대답이 나왔다. 무상 의료에는 건강보험료를 몇 배 올려야 할 것이라고 걱정했고, 무상 보육에 들어갈 14조원은 다른 예산을 절약하면 댈 수 있다는 모범 답안도 보인다.

복지를 늘리겠다면 다른 지출을 줄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옳다. 연간 300조원이 넘는 국가 예산 중 5%만 절감해도 무상 보육을 당장 실행할 수 있다. 증세(增稅)를 들먹이며 세금 폭탄으로 국민을 겁주기 전에 예산의 지출 항목부터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이 언제까지 순수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유권자는 위선(僞善)으로 가득 찬 존재다. 공짜 복지를 반기면서도 세금을 선뜻 더 내겠다는 유권자는 소수다. 정치인들은 공짜는 내가 즐기고 세금 청구서는 옆집에 돌리라는 본성을 꿰뚫고 있다. 이런 위선적 본능을 짜릿하게 자극하는 사례가 부유세(富裕稅)다. '돈 많은 자들 지갑에서 빼내 그대에게 바치겠다'는 유혹을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

"당신 지갑은 열 필요가 없습니다. 결단코." 지능지수가 무척 낮은 정치인이라도 두뇌회로를 1%만 가동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눈치 없이 "지금보다 세금을 두 배로 내셔야 합니다"라고 설득할 국회의원은 없을 것이다.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납부해주셔야겠습니다"라는 대선(大選) 주자도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남의 돈으로 선물 돌리겠다는 얌체성 약속이 선거판을 휘젓고 다닐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정치는 증세보다 쉬운 길을 선택했다. 채권을 발행해 쓰는 수법이다. 저항하는 세력이 적어 편하다. 공무원·정치인 몇몇이 타협하면 그만이다. 빚더미는 다음 세대에 넘겨지고, 그들의 신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늘의 표를 잡아야 할 정치인에게는 무엇보다도 현역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아서 좋다.

아들 딸 세대, 손자 세대에 빚을 떠넘기며 후손(後孫)을 학대하지 말라고 한들 먹힐 리 없다. 유럽 국가 정치꾼들이 다 그 길로 걸어갔고, 그러다 국가 부도를 경험했다.

그렇다고 정치는 변하지 않는다. 다른 정치인이 나와 다른 처방을 내놓는다. 새 지도자는 나라 부채가 무겁다고 한탄하며 자녀 세대 학대 행위를 개탄하는 척한다. 그러면서 이번엔 돈을 찍어 쓴다. 그냥 지폐 인쇄기를 돌리기가 민망하면 채권을 중앙은행에 맡기고 쉽게 복지 예산을 확보한다. 무작정 돈을 찍어 쓰던 짐바브웨에서는 얼마 전 물가가 2억%까지 올라갔다.

그래도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지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스는 나랏빚을 감추려고 회계 장부를 두 번이나 조작했다는 핀잔을 들었다. 워낙 빚투성이여서 국가 채권마저 팔리지 않아 이웃에서 멸시를 받았다. 복지국가의 모범이라는 스웨덴이나 덴마크도 과잉 복지로 국가 부도를 겪었다가 살아났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가려면 멀었다. 정치권이 예산 절감 방안을 찾고 세금 폭탄을 걱정하는 지금이 오히려 복지 천국(天國)이다. 채권을 펑펑 찍어내 공짜 선물 나눠주다가 국가 부도의 무덤 속으로 머지않아 들어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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