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학봉 도쿄 특파원
'대통령의 톱세일즈 교섭력', '군사 및 과학기술 인재 육성 지원', '정부 주도의 파격적인 가격'.
UAE 원자력발전소 수주전에서 한국에 밀린 일본 정부가 구성한 '인프라해외전개 추진실무담당자 회의'가 지난 6월 분석한 한국 수주의 성공 요인이다. 한국은 정부와 민간이 하나가 돼 수주전에 임하는 '관민(官民)일체형'인 데 반해 일본은 관이 수수방관,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도 패했다는 반성을 담았다.
'논의만 무성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일본 정부이지만 원전·고속철 등 인프라 수주전만은 달랐다. 일본은 한국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해 신속하게 행동했다. 총리실 산하에 인프라 해외수출관계 장관회의를 설치했으며 외무성 등 각 부처에도 인프라 수출지원팀을 만들었다. 정부 관료들이 나서 민간기업을 끌어들여 '국제원자력개발'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돈이 부족하다고 기업들이 울상을 짓자, 인프라수출 펀드 조성 등 파격적인 금융지원책도 잇따르고 있다. 관과 민이 하나가 돼 인프라 수출을 한다는 '올 재팬(ALL JAPAN) 전략'이 전광석화처럼 추진됐다.
1년도 되지 않아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11월의 베트남 원전 수주에 성공한 데 이어 한국이 유력하던 터키 원전 수주도 한발 더 다가갔다. 베트남 원전 수주를 위해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처럼 직접 베트남을 방문, 물량공세를 펼쳤다. 간 총리는 베트남에 790억엔(9848억원)의 차관을 제공하고 공항·철도 건설 등도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수주가 확정적이었던 터키 원전이 일본으로 기우는 것도 일본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과 리튬 등 자원개발협력을 하기로 했던 볼리비아 쪽 상황도 간단하지 않다. 일본이 2008년까지 볼리비아에 지원한 자금은 엔차관 470억엔, 무상자금 850억엔, 기술지원 630억엔 등이다. 우리 돈 2조원에 가깝다. 최근 도쿄를 방문한 볼리비아 대통령이 공동성명서에 "무상원조에 감사한다"는 문구를 넣었을 정도다. 원전 발주를 놓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한 터키도 엔차관만 5501억엔(7조6330억원)을 받았을 정도로 일본 신세를 많이 진 나라다.
우리가 일본만큼은 꼭 이겨야겠다는 염원으로 죽을 힘을 다해 달려왔듯이, 일본도 최근에는 한국에만은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인프라 수주전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이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못하느냐'는 개탄을 채찍 삼아,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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