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良心)의 실종(失踪) 시대(時代)
세사(世事)잊고 조용히 지내려고 시골로 내려와 이 산방(山房) 적정재(寂靜齋)에 머물며 살고 있는데, 그것마저 뜻대로 허락되지 않는 게 세상살이인 것 같다. 인터넷과 신문, TV 등 매스컴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스피노자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던가.
인간이 인간인 이상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라면, 과연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의(信義)’, 즉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사이든 부부 사이든 이웃과 이웃 사이든 ‘믿음’이 없으면 그 인간관계는 결국 파탄(破綻)이 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 ‘믿음’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간 개개인이 간직하고 있는 ‘양심(良心)’이다. 물론 양심은 추상적·관념적 개념이긴 하지만,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든 인간은 양심을 속일 수는 없다.’고 한 R.W.에머슨의 말을 구태여 인용하지 않더라도 ‘양심(良心)이란 남들이 모르는 자신의 어떠한 잘못도 스스로는 결코 잊지 못하게 하는 마음속의 눈’이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양심(良心)을 정의하고 있다.
인간에게 그 ‘양심(良心)’이란 것이 있어 바른 삶을 살도록 작용할 때, 올바른 인간관계가 유지될 수 있고, 비로소 개인과 개인은 물론,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도 불협화음(不協和音) 없이 바르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판단해 볼 때 긍정적(肯定的) 사고(思考)인데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양심’이란 것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부정적(否定的)인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양심은 선악(善惡)을 바르게 판단하고, 세상을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도록 해야 하는데, ‘양심은 간지럼과 같아서 타는 사람이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는 이탈리아 속담처럼, 개인의 가치관(價値觀)에 따라 양심이 내리는 판단의 기준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치가들의 양심은 권력과 돈 앞에서 실종되고, 기업가들의 양심은 이윤 앞에서 실종되며, 예술가들의 양심은 인기 앞에서 실종되고, 지성인의 양심은 합리화(合理化) 앞에서 실종되며, 근로자의 양심은 생존(生存) 앞에서 실종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도 제대로 된 양심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를 않다. 그러니 자존심 같은 것은 이미 찾아보기 어렵다. 옛 선조들이 지녔던 대쪽 같은 선비 정신 말이다.
한마디로, ‘양심(良心)의 실종(失踪) 시대(時代)’다.
아마도 「전원주택라이프」 올해 9월호인 것 같은데, 전원에서 만난 사람 <‘메주와 첼리스트’ 도완녀>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접했었다. 옛날에 ‘첼리스트 도완녀’에 대해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글을 읽게 되었는데, 분명 성공한 인물의 삶이었다.
“명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독일과 국내 대학 강단에 섰으며 국내외 순회공연은 물론 예술 기획 · 경영 분야까지 첼리스트로 예술경영인으로 그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지인이던 일곱 살 연상인 돈연 스님(본명 나종하)으로부터 ‘가목리에 들어와 첼로 연습을 하지 않겠소.’하는 프러포즈를 받고 1993년 5월 정선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태생부터 서울인 그녀가 길 하나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원시림의 두메산골에 들어온 자체가 삶의 큰 변화였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을 적잖이 놀라게 했을 터였다. 게다가 첼로는 뒷전이고 남편이 하던 된장 사업을 돕기 시작해 15개 장독을 5,500개로 불렸을 정도로 사업을 키웠다. 물론 끊임없이 크고 작은 연주회를 가졌다. 된장이 잘 익도록 항아리들 사이에서 첼로 켜는 것을 포함해서.”
글을 다 읽고 나서 필자는 멋있고 낭만적인 삶을 살고 있구나 하면서도 그냥 지나가며 ‘욕심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런데 이달 들어 우연히 ‘무늬만 명품 고추장... 얄팍한 상술’이란 11월 4일자의 YTN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뉴스 기사 내용은 도완녀가 경영하는 <메주와 첼리스트>에서 시중 다른 업체의 일반 고추장으로 황태·더덕장아찌·쌈장 등의 제품을 만들고 자사 고추장으로 만든 제품인 양 속여 판매하여 유명 백화점이나 홈쇼핑 등을 통해 시중에 팔려 나갔다는 것이다. 그 고추장 사용량은 지난 9월 대형 식품업체로부터 납품받은 고추장 3,000kg 중 절반가량이었고, 이 고추장으로 만든 장류 제품은 정가로 3억 4,000만 원어치나 되는데 지금도 백화점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지난해엔 또 다른 업체의 고추장 2,000kg을 구매한 뒤 상표와 용기만 바꿔 판매했다고 하니, 이는 양심 불량으로 상습적인 사기 행위이다.
그렇게 해서 15개 장독을 5,500개로 불렸다면, 그것은 바로 ‘첼리스트 도완녀’라는 한 예술가의 인격을 믿고 그동안 비싼 가격을 주고도 사 준 고객들의 돈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오히려 그 고객들을 이용하여 사리사욕만 채웠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그동안 그녀의 제품을 믿고 산 고객에 대한 배신 행위이며, 예술가들 얼굴에 먹칠을 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잡지사와 매스컴이 한 몫 크게 기여했다. 조금만 특이(特異)하다 싶으면 찾아가서 인터뷰 한 후, 사실을 과대 포장하고 미화시킨 내용의 기사로 선전해 주어 순진한 국민들이 현혹되도록 만드니, 이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된장이 잘 익도록 항아리들 사이에서 첼로 켜는’이라니. 필자는 음악 듣고 식물이 더 잘 자란다는 말은 이해가 되어도 첼로 켠다고 된장이 잘 익는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건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그런 그녀가 “디오게네스(Diogenes, 412~323 B.C.)처럼 살고 싶었다.”고 했단다. 더하여 “가목리에 한방의료 타운 만들 계획이야.”, “3월 계룡산 산신전에서 백일기도를 했어. 정말 치열했어.”라는 말을 했다 하니 필자는 할 말을 잃는다. 무슨 기도를 했을까? 이번에 사건이 터져 진실이 밝혀진 것이 기도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아닐까?
필자는 조물주가 어찌하여 인간을 창조할 때 ‘양심(良心)’만 가지게 해 놓고 양심이 실종 될 때마다 얼굴에 화인(火印) 같은 흉터 하나씩이라도 생겨나게 하여 남들이 알아보게 하지 않았는지, 왜 그런 큰 실수를 했는지 궁금하다.
(시인, 예술촌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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