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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神修養 마당

[스크랩] 김철진의 山房閒筆 / 11월에 띄우는 가을 편지(便紙)(대구일보, 2010.11.1.월)

鶴山 徐 仁 2010. 11. 3. 08:29



11월에 띄우는 가을 편지(便紙)




여보시게들.
어제 우리는 ‘잊혀진 계절’로 까닭 없이 유명해진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냈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시인으로보다는 작사가로 유명했던 고(故) 박건호가 실연을 당하고 썼다는 노래 가사라던데, 원래는 ‘9월의 마지막 밤’이던 것이 10월로 앨범 발매가 늦춰지면서 가사도 ‘시월의 마지막 밤’으로 바뀌었다고 하더구먼. 작사가로서는 몰라도 시인으로서는 그래서는 안 되지. 엄밀히 말하자면 개인의 역사가 되는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그 사랑의 순수(純粹)와 진실(眞實)을 처음부터 상업성으로 왜곡(歪曲)하며 모독(冒瀆)을 했으니 말일세.
그런데 이 노래가 당시 각종 가요 차트 1위를 기록했고, 국민가요처럼 되어 당시 무명의 이용을 일약 톱 가수로 만들며 스타덤(stardom)에 올렸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애창되며 시월만 되면 더 인터넷을 달구더구먼.
어느 누구에게나 흔히 있을 수 있는 그런 실연(失戀)의 슬픔을 담은 가사 내용의 이 노래가 이렇게까지 애창되는 원인은 실연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이 불러일으킨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을이라는 계절과 ‘시월의 마지막 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묘한 느낌 때문이 아닐까 싶네.

여보시게들.
그 ‘시월의 마지막 밤’은 가고 오늘 11월의 첫날. 첫날은 항상 가슴 두근거리게 하지.
오늘 내가 이 편지를 띄우는 까닭은 점차 사라져가는 빨간 우체통과 함께 손으로 종이에 정성들여 쓴 편지 한 통 받아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희미하고, 편지를 받던 우편함에는 고지서와 청첩장과 영수증과 광고 전단들만 들어오니, 이 가을 순수와 진실이 담긴 사람 냄새나는 편지가 그리워서, 눈물나도록 사람이 그리워서일세.
유행가 가사처럼 꽃 피고 새 울던 봄도 땡볕 뜨겁던 여름도 가고, 추수(秋收)도 다 끝난 들판 뒤 저 야트막한 산에도 단풍이 들고, 갈대꽃 억새꽃도 은빛 머리 빗으며 새로운 삶을 위한 여정(旅程)에 오르고 있는 만추(晩秋)일세.
예술촌(藝術村) 산방(山房)이 있는 여기 산골은 뜰에 노란 국화가 피고 사철나무 울타리 옆 감나무의 감은 까치밥으로 발그레 익어가지만, 내 가난한 왕국(王國)의 단풍나무는 이제 막 붉은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데 벌써 계절은 겨울로 들어서는 듯하네.
생(生)의 계절로 보면 우리도 이제 가을에 와 있지 않는가. 그러니 김현승 시인의 ‘가을에는 /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라는 ‘가을의 기도’처럼, 이 가을 우리도 현재를 순간순간 뜻 있게 보내며 여생(餘生)을 더욱 알차게 가꾸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여보시게들.
사랑하는 사람에게나 그리운 이에게 또는 친한 벗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기억이 언제인가? 또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아 본 것은 언제인가?
나는 20여 년 전 해외에 나갔을 때 아내에게 부친 엽서가 마지막으로 썼던 편지인 것 같구먼. 받은 편지는 몇 년 전에 여류 시인으로부터 받은 것이 마지막이라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올해에는 반드시 누구에게든 편지를 써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아직껏 편지를 쓰지 못했네. 하여 이러히라도 ‘가을 편지’를 쓰고 있다네.
언제인가 내 말했었지. 죽고 나서 화환 보내지 말고 살아 있을 때 만나서 소주 한잔 더 하자고. 그냥 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네. 과거는 흘러간 시간이요, 미래는 불확실한 시간이니 살아 있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뜻이었다네. 나는 늘 말한다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내가 현재 만나고 있는 당신이며,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당신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시간이라고.”
그렇다고 현세 중심적 사고라며 날 너무 비난하지는 말아 주기 바라네. 아내의 말을 빌리면 나는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여보시게들.
세상에 태어날 때는 선후(先後)가 있지만, 마흔 넘으면 병풍 뒤에 먼저 눕는 사람이 형님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니 우리 살아 있을 때 자주 만나 소주 한잔이라도 더 하세. 자네도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 알지 않는가.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예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 할고.’
이제라도 죽는 날까지 옛날처럼 편지 좀 쓰며 사세. 아니라면 전화로라도 자주 소식 전하며 따뜻한 가슴으로 정(情) 나누며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가을 하늘 눈이 시도록 저리도 푸르고, 추녀 끝 풍경(風磬) 소리 이리도 맑은데 말일세. 내 이제 졸시 ‘가을 편지’ 한 수 보내며 오늘은 이만 그치네.

‘가을 햇살 여린 눈빛 곱게 물이 든 / 산목련 널따란 잎새 하나 따 놓고 / 내 마음 그리움의 빛깔을 풀어 / 이 가을 너에게 편지를 쓴다 // 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 / 잎새 하나 바람에 떨어질 때마다 / 너의 눈빛 머물다 간 내 가슴에서 / 그리움도 방올 방올 떨어진다고 // 국화꽃 향기에도 네가 그립고 / 구름 없는 하늘에도 네 모습 떠올라 / 밤하늘 별 보며 너를 그리다 / 가을밤 서럽게 잠 못 들었노라고 // 산목련 널따란 잎새에 편지를 써서 / 산수유 열매보다 더 붉은 사랑을 담아 / 지나가는 바람편에 띄워 보낸다 / 네 고운 꿈속으로 띄워 보낸다’ <‘가을 편지’ 전문>

(시인, 예술촌 촌장)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동기회
글쓴이 : 村長(김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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