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멀지 않은 때에

鶴山 徐 仁 2010. 10. 30. 13:44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지 않은 때에


주님은 자비를 오랫동안 유보하지 않으신다.
또 야곱과 씨름하셨던 것처럼
우리와 씨름 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결국 우리에게 숨겨둔 힘을 주셔서
이기게 하신다.

-리처드 십스의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중에서-

온전히 주를 신뢰하는 자녀에게
하나님은 결코 오랫동안 자비를 유보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주 앞에 앉은 자녀에게
주는 지난 과거를 들춰 모욕을 주시지도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기도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해 버렸을지라도
다시 주 앞에 돌아와 울부짖는 자녀에게
주님은 자비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저만치 벗어놓은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혀
세상 가운데 다시 일어서 걷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지라도
주의 선하심을 의지하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곤 삶의 상처뿐이라도
주의 위로하심에 기대 새 힘 얻기를 간구하십시오.
멀지 않은 때에 주가 다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랑하는 내 자녀야. 일어나 함께 가자.” 하실 것입니다.



그릇의 안 쪽
나에게 사진은 그릇의 안쪽입니다.
겉은 번지르르 하고 안은 더러운 그릇에 대하여 그 분이 뭐라고 말씀 하셨던 것 같습니다.
겉은 초라하고 남루해도 안은 참되고 깨끗한 것, 그래서 저는 사진이 아니라 思眞을 고집합니다.
글쓴이 : 장일암 크리스천 포토아카데미 원장
[생각하는 사진하기] 강사
3회 개인전 'In His grace' (2009년 8월)
주의 심으신 포도나무 - 시편 80:1~19
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17.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이 시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탄식하며 그 회복을 간구하는 애가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패망했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양과 목자에 비유합니다(1절). 양에게는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아무런 방어기재가 없습니다. 오직 목자에게 의지하여 목자의 도움을 입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인 이스라엘이 목자되신 하나님을 자주 떠나 결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하는 고백은 사색의 산물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이런 뼈저린 체험에서 나온 절절한 고백입니다.

얼굴 빛을 비추소서!
<주의 얼굴 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3절).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7절).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19절).
이것은 이미 망한 북왕국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는 염원입니다. 주님이 당신의 얼굴 빛을 이스라엘을 향해 비추시기만 하면 곧 모든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아무리 방안 가득 어두움이 차 있어도 등 하나만 밝히면 다 사라지듯 주님의 영광의 빛이야말로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

어느 때까지니이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4절).
하늘 양식을 먹던 백성들이 이제는 <눈물의 양식>(5절)을 먹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자만이 인생을 알 듯이 우리 믿는 자들도 <많은 눈물을 마셔 봐야>(5절)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주님이 <당신의 눈물 병에 담고 계신다>(시 56:8)는 말씀도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말씀 아닙니까? 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 126:6)는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부디 눈물의 빵을 씹으며 절망하기보다 오래지 않아 기쁨의 단을 거둘 소망의 날을 기대하며 도리어 감사하십시오. 어느 때까지냐구요? 멀지 않았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하나님의 때까지만 기다리십시오.

주의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하늘에서 굽어 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14절).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가져다 심으신 극상품 포도나무였습니다. 그래서 그 그늘이 산을 가리고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유브라데 강까지 미칠 만큼(10,11절) 번성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 담을 허사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고(12절), 숲 속의 멧돼지들이 유린하고, 들짐승이 와서 먹게 하셨습니다(13절).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불타고 베임을 당하게도 하셨습니다(16절).
왜요? 자고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자아도취에 빠져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또 가져가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주를 떠나 살면 언제든 주신 것을 다시 회수해 가십니다. 단 한 방이면 족합니다. 주를 떠나 살면 우리는 다 잃어버립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신뢰가 만드는 소망  (0) 2010.10.30
흔들리는 촛불 같을지라도  (0) 2010.10.30
잠잠케  (0) 2010.10.30
고난, 훈련의 과정  (0) 2010.10.29
선한 길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0) 2010.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