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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은 거기에 산다는 뜻입니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날이 갈수록 주위환경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얘기는 그분의 사랑으로 집을 삼는다는 뜻입니다.
-맥스 루케이도의 ‘목마름’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메마름과 이웃에 대한 무정함은 우리 안에 주의 사랑이 말라버렸음을 알려줍니다. 문제는 주의 사랑의 샘이 우리 안에 흐르지 않음으로 우리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회개의 눈물이, 사랑의 손길이 그치지 않는 삶을 사십시오. 감사와 기쁨의 기도로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소망하십시오. 주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누리는 삶을 살 때 어둠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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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
이 세상에서 온전한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우리의 안전지대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 14: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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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임효식 2002년 좋은생각 디지털 사진전 입상 2007년 조선일보 사이버 신춘문예 디카에세이 부문 입상 다음 카페 '♥독서클럽♥ 책으로만나는세상' 서평단 활동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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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 시편 63:1~11 |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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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부단히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엡 4:13) 합니다. 그래야 잠언의 말씀처럼 <지혜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게 될 것>(24:5)입니다. 본 시편은 다윗이 왕궁이 아니라 유대 광야에서 오히려 더 하나님을 깊고 넓게 알았다며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욱 풍성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1절).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광야로 도망 다니며 마치 목말라 물을 찾듯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다윗이 왕궁에 있을 때에도 과연 이토록 하나님을 찾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 아들의 모반을 피해 유대 광야를 헤매며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애타게 갈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풍부함 속에서 주님을 잊고 살 때 이렇게 곧 잘 광야로 내 모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윗처럼,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십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읆조릴 때에 하오리니>(6절). 특히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묵상하는 일은 너무도 복되고 아름답습니다. 때 묻지 않은 하루의 첫 시간, 그 누구보다도 먼저 주님을 만나고, 그 누구와의 대화보다도 먼저 주님과 교감하며 말씀을 사색하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을 보다 깊이 아는 길의 첩경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그날그날의 만나를 거뒀던 것처럼, 다윗이 유대 광야에서 새벽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 주의 말씀을 듣는 자는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를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3절),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5절),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7절). 추석과 같은 명절 때 자식들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가 뵈면 부모님께는 아마도 그 이상의 기쁨과 보람이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손주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떨며 노래를 부른다면 더욱 행복해 하실 겁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찬양을 하면 가장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궁중생활에서도 미처 하지 못했던 찬양을 유대 광야에 나와 마음껏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양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체득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했습니다.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11절). 다윗이 유대 광야에서 느낀 하나님에 대한 즐거움은 왕궁에서 누렸던 세상적인 즐거움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세상 그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감격이고 큰 기쁨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은 결코 환경이나 조건에 근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주님 한 분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고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사는 삶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는 사실도 깨달아 알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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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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