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최인호와 이해인

鶴山 徐 仁 2010. 3. 11. 23:30

암 투병 중인 시대의 멘토 이해인 수녀-최인호 작가 병상에서 써 보낸 가슴 뭉클한 이야기

 

 

최인호 작가와 이해인 수녀는 공통점이 많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났고, 작가이고, 가톨릭 신자이고, 2년 전 암을 얻었다. 산업화의 후유증을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해온 두 사람. 이 시대의 멘토는 암 앞에 당당하다는 것도 닮았다. 최인호 작가는 자연을 벗 삼아 이곳저곳 여행 중이고, 이해인 수녀는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라는 생각으로 시를 썼다.

작가 최인호가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44년 만에 집필을 중단했다. 지난 2년간 암과 투병하는 상황에서도 샘터사에 36년 하고도 반년 동안 연재해온 장수소설 <가족>만큼은 집필해왔는데, 지난해 10월 402회를 끝으로 연재를 중단했고, 1월 초에 발표한 에세이 <인연>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글을 쓰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2008년 6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한 차례 모든 집필을 중단한 적이 있었지만, 스스로 집필 중단을 선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년 전에 침샘암 수술

“죽음이 이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때가 되었으며, 수많은 이별 연습을 통해 나 자신도 존 던의 시처럼 내 영혼에게 조용히 ‘이제 그만 떠납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지혜와 경륜을 배울 때가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영혼에게 가만히 가자고 속삭이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가 이번에 발표한 신작 에세이 <인연>에 나오는 구절이다. 올해 나이 예순다섯. 더군다나 몇 년째 암과 투병 중이니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암에 걸린 이후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휴대폰 번호도 바꾸었다. 병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이기도 하고, 남들에게 위로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는 게 싫어서 연락처를 바꾸었다. 병세가 위중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얼마 전에 에세이집 <인연>을 발표하고는 병세가 조금 더 악화되었다. 지난해 12월 말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달 2일 퇴원했고, 이후로는 아무에게도 거처를 말하지 않은 채 지방에서 긴 요양에 들어갔다. 이제는 그와 가깝게 지내던 출판사 샘터, 여백, 랜덤하우스 관계자 누구도 그와 연락이 되는 사람이 없다. 그저 요양을 시작하고 나서 몸이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만 들릴 뿐이다.

샘터사 관계자는 “우리도 언론기사를 보고 선생님 근황을 알 정도로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 됐습니다”라고 말했고, 여백출판사 관계자는 “집필실에 나오지 않은 지 벌써 4개월이 넘었다”라고 했으며, 마지막으로 작업을 같이 한 랜덤하우스 이양훈 차장도 “12월 말에 ‘병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고, 그 다음에는 지방에 내려가 요양할 계획이다’라는 통화를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연락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 황정숙 씨 역시 근황을 묻는 질문에 “지금 집에 안 계신다. 여행 중이다. 더 이상 드릴 이야기가 없다”라고 짧게 답했다. 작가 최인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다

1945년생. 최인호는 해방둥이로 대한민국의 산업화에서 민주화, 글로벌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무쌍함을 작품을 통해 표현해왔다. 그가 쓴 작품의 소재 역시 다양했다. <별들의 고향>이나 <도시의 사냥꾼>은 아픔을 지닌 젊은이들의 이야기이고, <타인의 방>은 산업화 속에 소외돼 가는 인간을 그렸으며, <잃어버린 왕국>과 <해신>은 잠자고 있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깨워주는 소설이고, <길 없는 길>과 <유림>은 변해서는 안 되는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가 지금까지 ‘청년 작가’로 불리는 것 역시 이처럼 다양한 글쓰기를 해냈기 때문이다.
 
그가 쓴 수많은 작품 중에서 36년 동안 연재한 소설 <가족>은 또 다른 위치에 있는 최인호를 이야기 해준다. 그 긴 기간 동안 씌어진 소설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최인호라는 한 인생의 대하소설. 그러다 보니, 별의 별 이야기가 다 들어 있다. 보통 사람이 하나의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소설이 많은 공감을 일으켰던 것도 바로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인호의 지난날을 읽으면서, 우리의 그날을 오버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최인호의 소설 <가족>은 국민소설이라 불리고 있는 것이고, 그의 투병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는 에세이 <인연>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글귀를 남겼다.

“내가 쓴 글이 세상에 오래 남아 있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게 주어진 이 막막한 백지와의 인연을 이어갈 것이다. 내가 죽음의 자리에 누워 영원히 눈을 감을 때까지 나는 이 인연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쓴 보잘 것 없는 글들이 이 가난한 세상에 작은 위로의 눈발이 될 수 있도록, 그 누군가의 헐벗은 이불 속 한 점 온기가 되어줄 수 있도록, 나는 저 눈 내린 백지 위를 걸어갈 것이다”라고.

그는 어떤 여행을 하고 있을까? 누구는 ‘곧 돌아올 여행’이라고 하고, 혹자는 ‘아주 긴 여행’이라고 말한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전자라고 말하고, 출판 관계자들에게는 후자라고 말한다. 사실, 여행의 길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충분히 쉬고, 충분히 회복되었을 때, 작가 스스로 ‘이제 여행을 끝내도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 때 돌아올 것이다.

투병 의지는 확실하다. 그는 얼마 전 춘천에 간 적이 있다.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창작혼을 불태웠던 소설가 김유정 생가를 찾아 예전처럼 건강해지고 싶다는 의지를 다졌다. 어쩌면 그의 병은 지난 45년 동안 쉬지 않고 쓰고 달려온 그의 삶에 대한 휴식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가뿐하게 회복돼서 예전의 그 생생하던 최인호로 돌아오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희망은 불러야만 오는 것

2년 전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가 지난 1년 반 동안 기록한 단상을 공개했다. 그녀의 시는 고통의 기록이기보다는 위로와 희망에 대한 메시지다.

 

이해인 수녀는 2008년 여름, 암 진단을 받았다. 종양 제거 수술 이후, 28번의 방사선치료와 30번의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요즘도 매일 열두 알의 약을 먹으며 암과 싸우고 있다.

힘든 투병생활 중에서도 이해인 수녀는 틈틈이 시와 일기를 썼다. 그리고 이 시간의 이야기를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로 묶었다. “치료를 받으며 힘겨웠던 시간에, 쉬는 시간에 노래처럼 흘러나왔던 시들”이다. 그녀에게 이번 시집은 “그동안 많이 걱정하며 쾌유를 빌어주던 고마운 분들에게 드리는 하나의 답장”이기도 하다. 그녀는 머리말을 통해 투병생활 동안 배우고 얻은 것들에 감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친 암이라는 파도를 타고 다녀온 ‘고통의 학교’에서 나는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입니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는 여유, 힘든 중에도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 유머를 즐기는 여유, 천천히 생각할 줄 아는 여유, 사물을 건성으로 보지 않고 의미를 발견하며 보는 여유, 단어 하나하나 음미하며 책을 읽는 여유를 이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투병 중 그녀와 절친했던 화가 김점선, 장영희 교수, 김수환 추기경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시와 일기에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됨을 삶으로 보여주며 죽는 날까지 희망에 대해 말했던 장영희 교수의 애장품인 고운 시계가 있는 방, 암에 걸린 것을 무슨 벼슬인 양 자랑하며 웃었던 화가 김점선의 그림들이 있는 방, ‘나도 수녀님처럼 생각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라고 하시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진이 있는 방. 이 방에서 글을 쓰려니 새삼 다정했던 그분들의 생전 모습이 떠오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나의 그날은 언제일 것인가? 미리 헤아려보게 됩니다.”

이해인 수녀는 암과 싸우며 오히려 ‘희망’을 발견한다. 희망을 발견하게 한 고통은 그녀에게 축복이자 선물이다.

“희망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야만 오는 것임을, 내가 조금씩 키워가는 것임을, 바로 곁에 있어도 살짝 깨워야만 신나게 일어나 달려오는 것임을 다시 배워가는 날들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현재 부산 광안리 근처 성베네딕토 수녀원에서 머물며 틈틈이 시를 쓰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오늘 1시경 수술실에 들어가 모니터링 끝내고 마취주사 맞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수술이 몇 시에 끝났는지 몰라요. 깨어나는 순간 여러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 누군가 자꾸 내게 시를 읊어보라고 하여 ‘파도의 말’을 비교적 또렷한 발음으로 외운 기억이 나요. 잠시 저쪽 세상으로 건너갔다 온 느낌. 나를 다시 살려낸 의료진의 수고에 고마운 마음 가득합니다.
2008년 7월 14일

오늘은 비가 내리네요. 비록 소식이긴 하지만 수녀님들이 갖다주시는 음식들은 꼭꼭 씹어서 거의 다 먹기로 합니다. 서서히 입맛이 돌아오는 느낌도 들고요. 포도 한 알, 귤 한쪽의 맛이 이토록 달콤할 줄이야! 아침에 일어나니 피주머니가 터질 듯이 볼록해졌어요. 140cc 정도라고 하네요. 동료 수녀님이 소독을 해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안부가 궁금한 지인들이 연락을 해오지만 나는 아직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2008년 7월 24일

오늘도 치료를 받으러 갔어요. 병원 대기실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그리 밝지 못하고 죽음과 관계된 것이 많아 잠시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하지만, 나는 소풍 다녀오는 어린이의 심정으로 동심을 지니고 즐겁게 표정을 관리하는 중이랍니다. 간밤 꿈에 잠시 고 피천득 선생님이 보였는데 내가 병난 것을 아시면 걱정하시겠다 싶어 가까이 가길 망설였습니다.
2008년 9월 22일

오늘은 용인 천주교 성직자 묘지에 묻히신 김수환 추기경님을 뵈러 갔습니다. “수녀도 왔어?” 하실 것만 같았어요.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는 추기경님의 모습이 그리운 마음. 당신이 남기신 ‘바보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나도 구하고 싶습니다. 1) 유난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움 2) 현실을 직시하는 지혜로움 3) 모든 이를 포용하는 따뜻함 4)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 5)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하는 쾌활함
2009년 2월 22일

만리향 향기가 뜰에 가득합니다. 만리향 한 가지를 글방에 갖다두니 향기가 솔솔 나네요. 내가 환자가 맞구나 느껴질 정도로 그저 눕고만 싶을 때가 있어요.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다가 어느 순간 몹시 ‘설명 불가능한’ 불편을 느끼는 적이 있지요. 오후엔 몸이 쉼을 원하는 것 같아서 두 시간 가까이 휴식을 취하니 한결 나아졌습니다.
2009년 10월 15일

아침 미사 후 7시 10분쯤 식당으로 가는 길, 떠오르는 태양이 하도 밝고 커서 그 안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빛살이 어찌나 눈부신지!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지요. 내가 느끼는 황홀한 생명감, 넘치는 기쁨을 제대로 표현 못해 안타깝기만 했어요. 수술하고 난 뒤에 내 보호자 역할을 해준 허 수녀님의 축일이어서, 고마운 마음 새로이 하며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2009년 11월 23일

어떤 결심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시집<희망은 깨어 있네>(마음산책) 중 발췌


/ 여성조선
  취재 최국태·두경아 기자 | 사진 마음산책, 조선일보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