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투차(Santuzza) : 시골 처녀로 투리두의 연모(S)
투리두(Turiddu) : 젊은 병사(T)
루치아(Lucia) : 그의 어머니(Cont.)
알피오(Alfio) : 마부(Br)
롤라(Lola) : 알피오의 부인, 투리두의 옛 애인(MS)
19세기 후반, 지나친 낭만주의 색채에 젖어 있던 이탈리아 예술계에 반기를 들어 현실주의를 내세우는 문예운동이 일어났다. 음악계에도 이 조류를 따른 베리즈모(Verismo)운동이 대두되었으며 그 첫번째 작품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시골 기사도'라는 뜻이다.
원본인 베르가의 희곡은 1884년에 밀라노에서 초연되었고 이러한 베리즈모 연극과 오페라의 출현으로 지금까지 극장 무대에서 배경 정도밖에 하는 일이 없던 서민이 주역을 맡는 길이 열렸을 뿐 아니라, 곧잘 사투리로 지껄이거나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단지 관객의 이국 취미에 호응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전하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음악 출판사 '손쪼뇨(Sonzogno)'가 주최한 단막 오페라 현상모집에 당선한 작품이다. 그 충격적인 내용과 남국정서가 듬뿍 깃든 아름다운 선율이 이제 겨우 26세의 청년 마스카니를 하룻밤사이에 유명 작곡가로 밀어올려 놓았다.
그러나 그 후 열광적인 인기에 편승하여 숱한 오페라를 썼으나 이 출세작을 능가하는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말년은 무솔리니에게 편든 죄로 쓸쓸하게 살다 갔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1막)
배경
이 가극은 마스카니 27세 때인 1890년에 밀라노의 음악출판사 손쵸노(Sonzogno)가 주최한 1막 오페라 작곡 현상모집에 응모하여 입상한 작품이다. 그는 당시 시골에서 음악교사를 하고 있었느데, 불과 8일만에 작곡한 이 오페라가 크게 성공하자 전세계에 그의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이밖에도 몇몇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나, 별로 성공하지는 못하였고, 이 작품이 그의 출세작이며 대표작이다.
전주곡과 시칠리아나 Andante Sostenuto, F장조, 4/4박자
막이 오르기 전에 바이올린으로 우아하고 종교적인 멜로디로 시작한다.풍부한 관현악의 전주곡으로 여기에는 오페라중에 나오는 중요한 멜로디들이 환상곡풍으로 흐르는데, 감격의 클라이막스에 이를 도달시켰다가 평온한 상태로 내려오게 한다. 이어서 막 뒤에서는 아름다운 시칠리아나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단순한 멜로디의 흐름을 지니고 있으며, 베르가의 원작에는 롤라의 창 아래에서 뚜릿뚜의 원망의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롤라를 찬미하는 사랑의 노래로 되어 있다.
Oh..Lora (Siciliana)
오 로라 아름다운 나의 사랑.
태양과 같이 밝은 그대의 얼굴,
앵두와 같은 그 어여쁜 입술
언제나 사랑한다고 내게 주려마,
내게는 죽음도 두렵지 않소.
언제나 당신만을 사랑하오..
당신을 위해 나 죽더라도 그대의 고운 얼굴 보길 원하오..
이 노래는 지금은 알피오의 아네이지만, 전에 뚜리뚜의 연인이었던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뚜릿뚜는 롤라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만약 죽어 천국에 갈 수 있다 해도 그 곳에 롤라가 없다면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까지 한다. 그는 그의 연인 롤라를 두고 군대에 입영하였던 바, 돌아와 보니, 롤라는 이미 마부 알피오의 아내가 되어있다. 그는 새로운 연인 산투짜로부터 위안을 받지만, 아지고 롤라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1막 시칠리아 마을의 광장
도입의 합창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면서 막이 오르면, 오른편에는 교회, 왼편에는 뚜릿뚜의 어머니인 루치아가 경영하는 술집이 있다. 때는 4월로 부활제의 아침이다. 교인들의 합창이 벌어지는데,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온화하고, 품위있는 왈츠풍의 멜로디에 이끌려 평화로운 분위기가 전개되는데, 여기서 여성합창 「오렌지 향기에 신록은 짙어가고 종달새우네」와 뒤이어 남성합창 「봄을 속삭이는 사랑의 노래」가 이어진다. 노래가 끝나자, 교회로 들어가는 사람, 몇사람씩 떼를 지어 제각기 헤어진다.
극창
이 때 산투짜가 등장, 불안한 표정으로 뚜릿뚜의 어머니 루치아에게 뚜릿투의 행방을 묻는다. 산투짜는 뚜릿투가 어젯밤 어디로 갔으며, 아직도 롤라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려고 하며 자기의 괴로움을 호소한다. 어머니는 뚜릿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자신에게는 묻지 말라고 한다. 그녀가 다시 애원하자, 루치아는 "그는 술을 사려고, 프란코 포테에 갔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산투짜는 울면서 " 어제 저녁에 그는 마을에 없었다"고 말하며 거짓말이라고 하자, 어머니도 걱정이 되어 그녀에게 어쨋든 방에 들어오라고 말한다.
산투짜는 이를 거절하고 버림받은 몸이기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자기의 가련한 신세를 한탄한다. 뚜릿두가 아직도 옛 연인이었던 롤라에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을 그녀는 눈치채고 혼자서 가슴을 태우는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슬픈 심정에 쌓여 주저하고 있을 때, 무대 뒤에서는 채찍질 소리와 방울소리가 나더니, 알피오가 유쾌한 기분으로 노래하며 마을사람들과 함께 들어온다. 이 노래가 유명한 바리톤 아리아 <마부의 노래>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와 함께 노래 부르다가 뿔뿔이 헤어진다. 알피오는 루치아의 인사를 받고 술을 청하는데, 그녀는 술이 떨어져서 뚜릿뚜가 사러갔다고 말한다.
그 말에 알피오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뚜릿뚜가 지금 마을에 있다는 것과, 오늘 아침에 바로 자기집 앞에서 보았다고 말한다. 루치아는 놀라며, 더 물으려고 하지만, 산투짜가 만류하므로 그도 떠나가 버린다. 이 때 교회에서는 부활제의 합창이 울려 나오고, 교회 밖에서도 같이 "할렐루야"의 합창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며, 산투짜의 선창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합창한다.
합창하던 사람들도 교회에 다 들어가 버리고, 산투짜와 루치아만이 남는다. 루치아는 앞서 왜 알피오와 이야기하려는 것을 말렸느냐고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것이 산투짜의 그 유명한 아리아 "어머님도 아시다시피(Voi lo sa pete, O mamma)"이다. 즉 루치아도 알고 있듯이 그의 아들 뚜릿뚜는 이전에 롤라와 약혼까지 했던 사이었으나, 롤라는 그를 버리고 알피오게로 갔는데, 이제와서 또 다시 뚜릿뚜를 유혹하여 그의 손에서 빼앗아 갔다는 내용이다. 롤라에게 그이를 빼앗기어 살 보람이 없는 이 몸이라는 대목에서 노래는 절정에 이른다.
이 같은 쓰라린 정경을 본 루치아는 그를 위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 교회로 들어간다. 이 때 뚜릿뚜를 만난 산투짜는 그를 붙잡고 개심해 줄 것을 애원하지만, 뚜릿뚜는 이를 거부하며, 질투많은 너의 노예가 되지 않겠노라고 하는데, 때마침 롤라가 나타나자 그녀의 유혹을 받고 교회에 함께 가 버린다. 흥분한 산투짜는 그에게 "부활제에 그대에게 불행 있으라"는 저주의 말을 하며 쓰러져 눈물을 흘린다.
이 때 알피오가 나타난다. 산투짜는 그에게 지금 롤라가 뚜릿뚜와 같이 갔다는 것을 말해 버리는데, 알피오는 이말엘 놀라서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것을 청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그에게 이야기하는데, 아내의 정숙치 못한 행동을 알게 된 알피오는 격분하여 반드시 복수할 것을 맹세한다. 산투짜는 자기 때문에 비극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무서워 하며 비밀을 누설한 것을 후회하는데, 오케스트라는 그 같은 분위기를 한층 더 효과적으로 연주한다.
교향적 간주곡 Andante Sostenuo, F장조, 3/4박자
막이 오르는데, 무대에는 아무도 없다. 교회에서 종소리가 들려오자,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와 루치아의 술집 앞에 모인다. 롤라를 옆에 낀 뚜릿뚜는 환희와 행복감에 젖어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려는 마을 사람들을 어머니의 술집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마을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포도주로 축배를 들면서, '축배의 노래'를 한다. 뚜릿뚜는 '사랑을 위해 그리고 행복을 위해'라고 하며 술을 마신다.
노래가 끝나자 알피오가 등장하는데, 그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교환한 후 뚜릿두가 보내는 잔을 거절하면서 '네 술은 받을 수 없다. 내게는 독이다'라고 말하자, 그는 '마음대로 하시오'하면서 술을 따라 쏟아 버린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여인들은 롤라를 데리고 나가 버린다. 서로 반목하는 두사람은 날카로운 몇마디의 불쾌한 인사를 건네더니, 뚜릿뚜는 알피오에게 달려들어 그 지방의 풍습에 따라 오른쪽 귀를 물고서 결투를 신청한다.
알피오가 그의 도전을 승낙하자, 이미 죽음을 각오한 뚜릿뚜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자기가 군대에 갔을 때처럼 축복해 줄 것과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산투짜를 부탁한다고 말하며 결투장소로 향한다. 루치아는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고 이상하게 여기자, 뚜릿뚜는 술이 조금 취해 헛말이 나왔다고 하며 어머니에게 키스를 하고 알피오의 뒤를 따라간다. 여기서 부르는 고별의 노래"안녕히 계세요 어머님!"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루치아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이름을 부르지만, 그는 돌아다 보지도 않는다. 마을 사람들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모여드는데, 음악은 강렬한 화음으로 나타나다가 갑자기 피아니시모로 변하고 멀리서 "뚜릿뚜가 피살되었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마을 사람들이 뛰어와 뚜릿뚜가 죽었다는 비보를 알리자, 놀란 산투짜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여 쓰러지고, 또한 루치아가 쓰려지려는데, 여인들의 부축을 받는다. 일동이 엄숙하면서도 공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주요 아리아와 중창, 합창
1. 어머님도 아시다시피(Voi lo sapete, o mamma)
[산뚜짜(소프라노 또는 메조소프라노)]
자기와 뚜릿두 그리고 로라의 삼각관계를 눈물어린 말로 애달프게 호소하는 산뚜짜의 로만자이다. 따뜻하게 위로하는 듯한 오보에의 반주가 그녀의 안타까운 심정을 한층 북돋운다.
"어머님도 아시다시피, 군대에 가기 전에 뚜릿두는 로라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허나 군대에서 돌아와보니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린 뒤였습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가슴의 불길을 잠재우려면 두릿두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필요했습니다. 하여 그는 저를 사랑했습니다... 저도 그를 사랑했고요! 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오, 정말 사랑했습니다! 우리의 이 사랑이 부러워진 로라가 제 남편을 제쳐놓고 질투심을 품었지요. 이제 그녀는 내게서 그를 훔쳐 갔습니다. 저는 자존심을 빼앗긴 채 혼자 남았습니다. 로라와 뚜릿두는 제가 절망 속에 울고 있는 동안에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벌을 받고 있습니다! 어머님, 교회에 가셔서 하나님께 저를 위해 빌어 주세요. 뚜릿두가 돌아오면 한번 더 하소연을 해 보겠습니다."
2. 어머니, 포도주 맛이 좋군요 (Mamma, quel vino e generoso) [뚜릿두(테너)]
"어머니, 포도주 맛이 참 좋군요. 오늘은 너무 여러잔 마셔서 취하는 군요. 밖에 나가 바람 좀 쐬야겠습니다. 그러기 전에 군대에 가던 날처럼 제게 축복을 베풀어 주세요. 그리고 혹시 제가 돌아오지 못하면 어머니, 산타(산뚜짜)의 어머니가 되어주세요. 그녀와 결혼하기로 약속했었으니까요. 제가 돌아오지 않으면, 산타의 어머니가 되어 주셔야 하빈다./[루치아] 아들아, 왜 그런 소릴 하느냐?/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포도주가 머리 속에 들어가 그런 모양이예요. 포도주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입맞춤해 주세요... 한 번 더 해주세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혹시 제가 돌아오지 않으면 부디 산타의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 한 번 더 입맞춤을 해 주세요. 그럼 안녕!"
Mascagni, Pietro (1863~1945 이탈리아)
피에트로 마스카니는 1863년 12월 7일 이탈리아의 리보르노에서 빵집 아들로 태어났다. 당초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법률 공부를 시키려고 했으나 음악적 재능을 타고 났던 그는 몰래 음악 공부를 하여 14세 때 백부로부터 재능을 인정 받게 되어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백부의 도움으로 케루비니 음악학교를 다니게 되어 소프레디니에게 피아노와 작곡 등을배웠다. 16세 때에는 교향곡 C단조를 썼고 1881년 음악학교를 졸업할 때 오페라 <인 필란 다>를 작곡하여 상을 받을 만큼 어려서부터 오페라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 무렵 에 작곡한 가곡 <환희의 노래>가 밀라노 콩쿠르에 입상하기도 했다. 유일한 후원자였던 백부의 사망으로 한때 곤경에 빠지기도 했지만 음악애호가 라르데렐 백작이 그의 재능을 인정, 그를 밀라노 음악원에 유학시켜서 폰키벨리와 살라디 노에게 작곡을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때 그는 푸치니와 함게 하숙생활 을 하기도 했다.그러던 그는 짚시 생활에 흥미를 느껴 밀라노 음악원을 중퇴하고 순회악단에 끼어 방랑을 계속하였는데 몇 차례인가 순회 오페라단의 지휘자 일을 맡아봄으로써 오페라와 더욱 친근해지게 되었다.
1889년 그는 손쪼노 음악출판사가 모집하는 현상 오페라에 응모하여 1등에 당선했는데 그 작품이 그의 출세작이며 대표작인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이다. 이 콩쿠르에는 1막 작품이라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전작품인 <굴리엘모 라트 클리프>의 제4막을 응모할 작정으로 있었는데 아내가 무단으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응모했던 것이다.이 작품은 1890년 5월 17일로마의 콘스탄찌 극장 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으며 잇따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어 그의 나이 27세때 그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마스카니는 그 후 <친구 후리츠, 1891>, <이리스, 1898> 등의 오페라를 뒤이 어 발표했지만 모두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는 1929년에 토스카니니의 후임으로 밀라노 스칼라좌의 지휘자가 되어 뭇솔리니가 정권을 쥔 후에도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제 2차 대전이 끝난 뒤 뭇솔리니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1945년 로마의 한 허술한 호텔방에서 81세의 생애를 쓸쓸히 끝마쳤다. 결국 마스카니는 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는 작품 하나로 오페라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 게 된 것이다.
베리즈모 운동(Verismo)
진실주의라는 뜻이 담겨 있다. G.베르가, L.카푸아나가 등장하여 단기간에 개화시켰고 이 영향이 M. 세라오, G. 데레다 등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유럽에서는 낭만주의문학이 이상을 상실하고 내용·형식면에서 새로운 문학확립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 역사의 진보에 보조를 맞추는 것으로 자연주의문학이 등장하였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불충분한 국가통일의 성과를 배경으로 하여 이탈리아적 자연주의, 즉 낭만주의적 요소의 적극적인 것을 계승하는 즉물적(卽物的) 낭만주의라고 할 수 있는 베리스모가 탄생하여 이탈리아적 색채를 나타내었다.
베리스모의 문학이론은 카푸아나가 이룩했는데, 그것은 객관적 문학을 주안으로 하고 소설은 회화와 풍경묘사로서 구성되며, 언어는 등장인물의 표현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베리스모의 작가에게는 주로 남(南)이탈리아 도서의 절망적 침묵상태에 있는 민중을 대변하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이 운동은 이탈리아 오페라에도 파급되었으며, 최초의 대표작으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1890)나 레온카발로의 《피에로 pierrot》(1892)를 들 수 있다. 낭만주의 오페라가 신화나 영웅담으로 상징되듯이 비현실적 테마를 즐겨 취급한 데 대하여 베리스모 오페라에서는 일상생활적인 사건, 인간이 지닌 추악상이나 잔학성 등이 솔직히 표현되고, 그와 같은 내용의 음악적 표현법으로서는 종래의 콜로라투라풍(風)의 아리아 대신에 레치타티보나 아리오소·중창·합창 등이 중용(重用)되게 되었다. 따라서 베르디나 푸치니의 작품에도 베리스모 계통으로 꼽을 수 있는 오페라가 있다.
베리즈모란 19세기말 오페라에서의 사실주의 및 현실주의를 지칭하는 것으로 문학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영향을 반영한다. 문자 그대로 진실(Veritas)을 추구하는 ‘사조’나 ‘주의’라고 할 수 있는 베리즈모의 기본 취지는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있어 무엇이든 미화시키거나 과장되게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지양하고 보다 현실세계를 진실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소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우아하고 멋진 이야기보다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정, 분노, 질투 등의 감정이 여과를 거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보통이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등이 대표적인 베리즈모 오페라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