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전달] 6.15 선언과 10.4 합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李榮一칼럼] 6.15선언과 10.4합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하기 두 달 전 6.15선언 9주년을 기념하는 만찬석상에서 이명박 정부가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려면 6.15와 10.4선언을 존중, 승계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 미국 여기자 두 명의 석방교섭을 성공한 것을 계기로 일부 학자들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을 경계하려면 한국이 6.15선언과 10.4합의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남북 간에 당국간 대화를 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이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우선 6.15선언을 내용별로 검토해보자. 우선 6.15선언은 3개항 합의가 주목을 요하는 부분인데, 그중에서도 제2항 합의 즉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한의 연합제 간에 공통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토대위에서 통일을 추진하자, 두 번째로는 우리 민족끼리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자, 마지막으로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문서로 약속한 것이다.

 

 

 

6.15선언을 이명박 정부가 승계 존중하려면, 첫째로 현재 남북한 간에 연합이나 연방이 성립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 연합이나 연방이 성립될 수 있기 위해서는, 연방이나 연합구성체 간에 안보상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북한이 두 차례나 핵실험을 단행,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는 상황 하에서는, 안보상황의 비대등성(비대칭성)으로 말미암아 연합이나 연방이 성립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실험은 6.15선언의 통일조항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이며,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완전히 백지화한 것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6.15선언을 만들 때 까지만 해도, 1992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유효했었다. 독일의 경우도 주변국들은 독일 통일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양독의 핵포기를 요구했고 이를 양독이 수락함으로써 통일의 국제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상기할 때, 북의 핵보유노선은 평화통일을 위한 여건조성에 엄청난 난관을 조성한 것이다.

 

 

 

남과 북의 어느 측이라도 핵무기나 탄도미사일, 항공모함 등 전략무기를 보유하는 한, 그러한 전략무기로 안보위협을 받는 주변 대국들은 한반도의 통일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전략무기제거를 명분으로 한반도문제에 관여해 들어온다. 따라서, 외세의 개입을 불러들이는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하고, 이러한 폐기 없이는 한국 통일을 위한 국제환경이 마련되기는 힘들 것이다.

 

 

 

둘째로, “우리민족끼리”의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 간에는 인민개념이 공유되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수령(首領)론에 입각, 인민은 수령을 위해 소모(消耗)되어야 할 존재로 규정되어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인민이 주권자이고 대통령이 섬겨야 할 존재이다. 중국에서도 등소평은 자신을 인민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인민에게 빵을 나누어 주지 못하는 공산당은, 제대로 된 당이 아니라고 말했다. 중국과 한국 간에는, 인민개념에서 유사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6.15선언에서 말하는 “우리민족끼리”는 인민개념이 공유되지 않는 상황 하에서는, 하나의 미사여구(美辭麗句)에 지나지 않는 허구일 뿐이다.

 

 

 

셋째로, 김정일은 한국답방 약속을 어겼다. 정상회담의 핵심은 상호답방이다. 미국의 대통령도, 중국의 국가주석도, 한국에 대한 답방약속을 성실히 이행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를 무시했다. 상대방에 대한 약속으로서의 답방이 문서상의 합의로 발표되었다면, 이는 6.15선언의 중요한 합의사항인데, 이를 외면했다면 6.15선언은 이미 사문화된 것이다. 이상에서 분명한 바와 같이, 6.15선언은 이미 북측에 의해서 사실상 파기된 문건이다. 지구상의 어느 정부도 상대방이 실질적으로 파기한 문건이나 선언을 승계, 존중하는 나라는 없다.

 

 

 

또, 노무현 대통령과 북측의 김정일 간의 회담에서 합의된 10.4선언을 존중하라는 주장도, 타당성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잔여임기가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통일전선부장과 한국의 국정원장이 만나 북한 김정일이 노무현대통령을 초청, 정상(頂上)대화를 해준다면, 거액의 대북지원을 약속하겠다는 밀약 하에서 이루어진 “대선(大選)용 정치이벤트”가 바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답방을 거부한 김정일을 찾아가 평양에서 회담을 가진 후, 국민의 동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거액의 대북지원을 약속했다.

 

 

 

이 회담에서 국민들이 주목했던 사항은, 대북지원보다는 당시 한반도 최대의 정치문제인 북핵에 관해 양측 지도자들이 갖는 태도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노무현 대통령은, 핵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거론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방북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만을 문서화해 놓은 합의가, 이른바 10.4합의다.

 

 

 

이 합의는, 마치 지불능력이 없는 사장이 사장직을 그만두면서 이사회의 동의 없이 수십억의 어음을 끊어놓고 새로 부임한 사장에게 무조건 액면대로 어음을 결제하라는 것과 진배없다.

 

 

 

이러한 검토에서 보건데, 또 북한의 제2차 핵실험으로 북한의 핵 병(核病)이 핵암(核癌)으로 밝혀졌고, 이 때문에 유엔안보리가 북한의 핵개발에 도움이 될 경제지원을 금하는 결의 1874를 시행하는 상황 하에서, 6.15선언과 10.4합의를 존중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김대중 전대통령이, 자기 대북정책과 주장의 잘못을 끝까지 인정치 않고 별세한 것은, 두고두고 유감으로 남을 것이다. [終]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동기회

글쓴이 : 김종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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