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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칼럼] 우주 로켓에 바친 희망과 헌신

鶴山 徐 仁 2009. 7. 23. 09:14
사설·칼럼
최보식 칼럼

[최보식 칼럼] 우주 로켓에 바친 희망과 헌신

시간과 돈만 충분하다면 누군들 못하겠는가
러시아 파트너가 야속했고 부품 납기(納期)가 어긋나고
다급한 언론이 몰아쳤지만
밤을 새운 열정들이 모여 세상을 만드는 것 아닌가

약속 날짜보다 4개월 늦었다. 2007년 3월 9일, '로켓발사대' 설계문서를 실은 트럭이 마침내 항공우주연구원에 도착했다. 러시아 보안요원 3명이 따라왔다. 당초 첫 발사대 제작은 러시아측에 맡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이 설계문서를 보고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했다.

벌써부터 국회에서는 우주 개발의 사업 타당성을 따지며 말들이 많았다. "1조원이나 투입해 '불꽃놀이' 한번 하는 게 아닌가." "선진국에서는 로켓을 해상에서도 쏘고 비행기에서도 쏘는 실정인데, 이제 겨우 땅에 발사대를 만들어서 뭘 하려는지…."

이런 말의 공론(空論)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로켓 발사대 작업은 연구원 8명이 맡았다. 러시아측에서 넘겨받은 설계문서는 21상자, A3용지로는 2만3000장이었다. 발사 예정일에 맞추려면 이걸 보고 17개월 안에 설치작업을 끝내야 한다. 러시아 전문가는 "어렵다. 적어도 23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연구원들은 아득한 심정이었다. 그때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이 말했다.

"시간과 돈이 많다면 누구든 이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 부족한 상태에서 이 일을 달성해야 유능한 연구원이 아닌가. 이번 일은 국가를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오히려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 걸 고마워하자."

연구원들은 러시아 전문가들에게 달라붙어 설계문서를 학습하고 국내 제작에 맞게 설계 도면을 그렸다. "해가 지면 집에서 쉬어야지 왜 일을 계속 하나"며 일어서는 러시아 전문가들이 그렇게 야속했다고 한다. 이 오지의 우주센터에 들어오면 주말에도 집으로 가는 연구원이 드물었다. 가족과의 생이별이 몇달째 계속될 때도 있다. 심지어 신장이식수술을 받고 누워있는 부인을 두고, 더 이상 개발 시험 일정 등을 미룰 수 없어 연구실로 돌아온 이도 있었다.

또 발사 일정에 맞추기 위해 연구원들은 세계 각국으로 부품 제작사를 찾아다녔다. 대만의 한 주요부품 제작사를 방문했던 한 연구원은 "납기 일정을 지킬 수 없다"는 답변에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열정이었다. 수십개의 국내 제작사를 방문해서는 밤을 같이 새우며 제작을 독려한 경우도 많았다. 이런 사연은 다른 로켓 장비와 분야에서도 흔한 것이다.

'한국형' 로켓발사대가 만들어졌다. 이 속에는 연료·온도·공기 등을 조절하는 273개의 통제시스템이 들어있고, 전선 길이만 140㎞, 밸브 개수는 3000개다. 러시아측은 처음에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성능시험 항목을 당초 99개에서 358개로 늘렸다. 이 과정이 끝난 뒤 러시아측은 "카자흐스탄에 새로운 로켓발사대를 구축하는데 컨소시엄으로 함께 참여하자"며 우리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발사 일정이 연기됐다.

매스컴은 참지 못한다. 얼마 전 러시아측이 엔진 연소 시험 문제로 발사 일정 연기를 통보해오자, 더 시끄러웠다. 한번 발사된 로켓은 고칠 수 없다. 지상에서 꼼꼼하게 완벽을 기하는 과학적 상식이 비판받고 있는 것이다. 한 연구원은 "우리는 정말 죽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돌려 말했다.

지난 주말 여수공항에서 차로 갈아탔다. 1시간 반을 남으로 달려 섬을 잇는 두개의 다리를 건널 때 해무(海霧)가 짙었다. 이 좁은 국토에서 참으로 먼 길이었다. 나로우주센터의 가장 깊은 언덕에, 그 로켓발사대가 빗물에 젖고 있었다.

발사 당일 '누운' 로켓을 트랜스포터에 싣고 여기로 올라온다. 발사대는 자동으로 140t의 로켓을 일으켜 세워 우주를 향해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환호보다 우리는 다른 것을 더 많이 준비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들에게는 "성공했을 때 칭찬하는 것보다 혹 넘어졌을 때 따뜻하게 일으켜주는 믿음"이 더 요구될지 모른다. 첫 로켓 발사의 부담감, 실패의 두려움으로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치 있는 모든 도전에는 실패의 위험이 따른다. 만에 하나 실패해도 개발 과정에서 쌓은 기술력과 연구역량은 그대로 남을 것이며, 그 실패 경험조차 앞으로의 자산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국민적 용기가 없다면 결코 우리는 우주로 나갈 수 없다.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가지 사실이 내게는 분명해졌다. 세상을 만드는 것은 큰 차 타고 호텔에서 식사하고 신문 표지를 장식하는 '뉴스메이커'들이 아니라는 점을. 요란하게 떠들고 늘 우리의 심신을 지치게 하는 집단과 세력들도 아니었다. 물론 이들은 눈앞의 이해관계를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 세상을 만드는 것은 '희망'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이들은 대부분 안 보이는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