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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學事 關係

밤 10시 학생들 한꺼번에 쏟아져 '아수라장'

鶴山 徐 仁 2009. 7. 18. 11:51

사회
교육ㆍ시험

밤 10시 학생들 한꺼번에 쏟아져 '아수라장'

'학파라치' 시행 9일째… 대치동 학원가 가보니
오후 7~11시이던 시간표 6~10시로 앞당겨 수업수강료는 분할납부 강요
"대책도 없이 단속만 하나"

15일 밤 10시 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구 사거리의 왕복 8차선 도로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학원 입구와 인접한 차선엔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 차량이 30대 넘게 한 줄로 늘어섰고, 일부 차량은 아예 인도로 올라와 있었다. 차 댈 곳을 찾지 못한 학원차들이 그 옆 차선에 서면서 차량 소통은 거의 마비됐다. "왜 끼어드는 거야!" "당연히 당신이 양보를 해야지!" 경적 소리와 고성이 오갔다.

인도 위에 서 있는 차량 탓에 수백명의 학생·학부모들은 길을 지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섰다. 구름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던 한 고교생은 불과 다섯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엄마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사람이 너무 많아. 그쪽으로 못 가겠어"라고 소리쳤다.

이날은 밤 10시 이후 학원 강습, 과다 수강료 등을 신고하면 보상금을 주는 '학파라치'제도가 시행된 지 9일째로 시민 2명이 첫 포상금을 탄 날이었다. 학원 앞에 모인 학부모들은 10시만 되면 이날 같은 '교통대란'이 반복된다고 했다. 예전엔 이 일대 학원 수강생들이 10시 이후로도 각각 다른 시간에 수업을 마쳤지만 요즘은 초·중·고생 수백명이 밤 10시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중학생 아들 둘을 데리러 자가용을 운전하고 왔다는 이숙경씨는 "한남동 집에서 대치동까지 1시간20분이 걸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책 만드시는 분들이 직접 와서 이런 상황을 좀 보셨으면 좋겠어요. 학원 단속한다고 하니 당장 그룹과외하자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결국 사교육비도 못 줄일 거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 아닌가요?"

15일 밤 10시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학생들과 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 차량이 뒤엉켜 있다. 밤 10시 이후 학원 단속을 실시하면서 이 지역 교통 혼잡이 극심해졌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학원은 대책 있다

지난 7일 학파라치제도가 전격 시행되면서 대치동 학원들은 일단 숨을 죽이는 분위기였다. 특히 '밤 10시 이후 심야수업 금지'는 대체로 지켜지는 것으로 보였다. 취재팀이 소규모 학원 8곳을 찾아가 "밤 10시 이후에도 아이를 학원에 맡기고 싶다"며 상담을 해봤지만 8곳 모두 "이 동네가 요즘 학파라치 때문에 난리다. 10시 이후엔 자습도 못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들 학원은 대부분 팸플릿에 적힌 방학 시간표와 A4용지에 인쇄한 시간표를 함께 건네줬다. H수학전문학원 상담실장은 "여름방학 때 밤 11시까지 수업하는 것으로 시간표 짜서 팸플릿 다 찍었더니 갑자기 학파라치 발표가 났다. 할 수 없이 일단 A4용지에 새 시간표를 찍었다"고 설명했다. 새 시간표엔 바뀐 수업시간이 진하게 밑줄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학원들도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오후 7~11시'이던 수업이 새 시간표에는 '오후 6~10시'로 바뀌어 있었다. 수업시간을 1시간 줄여 학원비를 적게 받는 것이 아니라 시간대만 한 시간 앞당긴 것이다. 학원 앞에서 만난 신모(숙명여고 2)양은 "학파라치 조치 이후 바뀐 게 있다면 저녁을 못 먹고 학원에 간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게다가 정부가 강력한 단속 의지를 밝힌 시점이 하필 여름방학과 맞물린 것도 학원들엔 '행운'이다. 학기 중에 비해 방학 동안엔 늦게까지 수업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G수학전문학원 상담실장은 "어차피 지난 방학 때도 밤 9시30분에 문을 닫았으니까 단속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학부모도 대책 있다

학원뿐 아니라 학생·학부모들도 정부 규제를 피해가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날 길에서 만난 학생과 학부모 중에는 "예전에는 학원에서 10시 이후에 선생님에게 질문도 하고 쪽지시험도 봤는데 이젠 그런 것이 없어졌다"며 "학원 그만두고 아예 과외를 하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오후 7시쯤 독서실에 가던 정모(은광여고 3)양은 "그동안 언어영역은 타워팰리스 옆 오피스텔에서 과외(교육청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를 했는데 며칠 전 단속반이 나와서 선생님과 함께 불 끄고 엎드려 있었다"며 "그 사건 이후 과외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수업하기로 했다. 집에서 과외 하는 건 불법이 아니니까"라고 했다. 또 "수학은 P학원에서 밤 11시까지 했었는데 최근 토요일 수업으로 바뀐 것이 불편해서 과외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S학원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김모(중동고 1)군 역시 "학원 그만두고 과외를 하겠다는 친구들이 우리 반(학교)에서 10명쯤 된다"고 했다.

과외 수요가 늘어나면서 학원강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고입·대입 종합학원을 운영하는 이모 원장은 "최근 강사 24명 중 2명이 잠원동에서 과외를 하겠다며 그만뒀다"고 했다. 실제로 7~13일의 일주일 동안 관할 교육청에 신고한 개인과외 교습 신고 건수는 1884건에 달했다.

정부만 대책 없다

학부모들은 학원비 단속 역시 여전히 허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학원 앞에서 고1, 중3 자녀를 기다리던 조모씨는 "학원이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학원비를 신용카드로 3~4회 분할 납부하거나 과목별로 쪼개서 낼 것을 강요한다"고 했다. 부당한 것은 알지만 실력 있는 학원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별 수 없이 응한다는 것이다. 조씨는 "교과부에서 내세운 '학원비 표준 규정'을 보니 현실과 너무 달라 헛웃음이 나더라"고 했다.

이처럼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 '풍선효과'가 시작되면서 다른 지역 학부모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가 단속을 하기로 했으면 공평하게, 철저히 하고 단속에 따른 각종 부작용 대책을 정교하고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학원상황팀이 생긴지 며칠 안돼 아직 상황 파악 중이다. 지금으로서는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대답만 내놓고 있다.

특히 현재 학교 교육의 수준이나 만족도가 학원을 대신할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았다. 서울 구로구의 학교에 고1 자녀를 보내는 한국학부모신문 최혜정 대표는 "사교육비를 줄여준다는 취지는 너무나 반갑지만 정부가 제시하는 대안인 '방과후학교'는 프로그램이 제대로 정착 안 된 곳이 더 많아 학부모들 불만이 많다"고 했다.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최미숙 대표는 "학교에서 주로 밤 9시30분까지 하는 야간 자율학습은 교사 1~2명이 학생 수백 명을 감독하는 것에 불과해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가르쳐주는 학원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했다.


 

 
15일 밤 10시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학생들과 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 차량이 뒤엉켜 있다. 밤 10시 이후 학원 단속을 실시하면서 이 지역 교통 혼잡이 극심해졌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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