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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권력 세습

鶴山 徐 仁 2009. 6. 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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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권력 세습

 


          로마의 '오현제(五賢帝)시대'(96~180년)를 두고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했다.

황제는 그 시대 가장 현명한 사람을 양자로 맞았다가 자리를 물려줬다.

다섯 현자(賢者)의 마지막 아우렐리우스가 아들 콤모두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면서

세습이 시작됐지만 세습 황제들은 대부분 사악하고 졸렬했다.

아무도 황제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로마의 쇠퇴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는 정실 소생 둘째를 황태자에 책봉한 뒤 폐위했다가

복위하기를 두번이나 반복했다.

35명이나 됐던 다른 아들들이 황태자에 대해 온갖 트집을 잡았기 때문이다.

1722년 강희제가 죽자 군권을 잡고 있던 세력에 의해 옹립된 넷째 아들 옹정제는

독특한 후계자 선정방식인 태자밀건(太子密建)법을 만들었다.

아들 중 한명 이름을 적어 밀봉해놓았다가 자기가 죽은 뒤 열어보게 한 것이다.

아무리 왕조시대이고 피붙이 자식이라도 권력을 넘겨주기란 그렇게 어려운 법이다.

▶       싱가포르 국부(國父) 리콴유는 큰아들 리셴룽이 어려서부터 특권의식을 갖지 않도록

총리 관저 밖에 살게 하며 회초리로 엄하게 키웠다.

5개 국어를 하는 리셴룽은 케임브리지대 수학과를 수석 졸업한 뒤 귀국해 공무원이 됐다.

결국엔 2004년 고촉통 전 총리의 지명으로 총리 자리에 올랐다.

과도기를 거친 사실상 세습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변방 한촌(寒村)이었던

싱가포르를 강소국(强小國)으로 도약시킨 리콴유의 리더십을 국민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       철권통치 국가라 해도 세습은 순탄할 수가 없다.

냐싱베 토고 대통령은 2005년 38년을 집권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시민들은 '부정 선거'라며 궐기했고 무력 진압으로 10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루지야에선 2003년까지 11년 집권하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려 하자 국민이 무혈(無血)혁명으로 정권을 바꿨다.

▶      1994년 김일성이 죽고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셋째 아들 김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한 게 거의 확실하다고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이 가시화한 것이다.

아무리 주민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는 방법으로 이어온 권력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역사의 예에서 보듯 지나친 권력 세습은 화(禍)를 부르게 마련이다.

한반도 정세가 더욱 불안정해질 공산이 커진 셈이다.

                       

 

  •  - 김홍진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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