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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AGAIN 살수대첩 [ 5 ]

鶴山 徐 仁 2009. 2. 14. 11:12

august 의 軍史世界

 

AGAIN 살수대첩 [ 5 ]

 

 

 

아쉬웠던 북진

 

사실 청성부대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아군 부대들 중 특별히 6사단만 이런 수모를 겪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선 전체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고 작전을 주도하던 미군도 중공군의 신비로운 ( ? ) 전술에 속수무책 당하였습니다.  38선을 넘어 북진하면 전쟁에 개입하겠다던 중공의 엄포를 단지 공갈로 생각하였지만 중공군의 초반 모습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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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공의 엄포는 결코 공갈이 아니었고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

 

그러나 이때까지도 맥아더의 UN군 사령부는 상황을 오판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공산군의 단말마적인 최후의 반항정도로만 판단하여 다시 한 번 국경을 향해 전선을 밀어붙여 1950년 안에 전쟁을 끝내려는 X-mas 공세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상황을 오판한 이런 황당한 시도는 UN군의 패전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었고 결국 뒤로 돌아 북진속도를 능가하는 쾌속의 후퇴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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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군 최고 지휘부는 중공군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었습니다 ]

 

전쟁 초기에 즉각적인 미군의 참전이 있었음에도 낙동강 교두보까지 밀려 3달 가까이 길항하였던 한국전쟁 초기의 상황과 비교한다면, 아무리 중공군이 출몰하였다고 불과 20여일 만에 대나무를 가르는 득한 신나는 북진 레이스를 중단하고 전선을 제대로 구축하여 보지도 못한 체 뒤로 황급히 돌아 후퇴하였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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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나는 북진은 20일 만에 막을 내리고 비극은 시작됩니다 ]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반도의 지형 때문이었고, 둘째는 종전에만 서두른 지휘부의 오판 때문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청천강 - 원산 이북의 지형은 북으로 올라갈수록 깔대기 처럼 갑자기 넓어지는 모양입니다.  때문에 북진 시 청천강 - 원산선에 강력한 방어망이나 교두보를 설치하고 북진하여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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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북부지형은 북진 할수록 한 없이 넓어지는 구조였습니다 ]

 

하지만 UN군은 이를 게을리 하고 갈수록 넓어지는 지형으로 부대별로 산개하여 진격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인접부대와 연결은 신경 쓰지 않았고 오로지 국경에 선착하겠다는 일념에만 사로잡혀 뒤나 옆도 보지 않고 앞으로만 일렬종대 형태로 내달렸던 것입니다. 더구나 평안도 일대로 진격하는 미 8군과 함경도로 진격하는 미 10군단의 작전권도 분리되어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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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부대별로 산개하여 북진하였고 커다란 틈이 발생하였습니다 ]

 

이렇듯 부대 간의 간격이 벌어지고 옆 부대와 연결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 적들이 아군에게 포착되지 않고 우회 침투가 충분히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 주었음을 뜻하는 것이었고, 중공군의 주력 대부분은 이런 거대한 간격사이로 침투하여 별다른 예비대도 없이 따로 따로 떨어져 행동하고 있던 UN군의 각 부대를 뒤에서 쉽게 포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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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분리되어 있던 아군 부대들은 포위당하기 일 수였습니다 ]

 

배후의 단속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알려주는 예가 있는데 바로 장진호로 진격하였던 미 해병 1사단이었습니다.  사단장 스미스 ( Oliver Prince Smith 1893~1977 ) 는 당시 여타부대들과 달리 부대 간의 연결에 신경을 쓰면서 전진을 하였는데 비록 북진속도는 느렸지만 이러한 신중함 덕분에 부대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은 비록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반대로 중공군 십여 개 사단을 재편 시킬 만큼 엄청난 출혈을 강요하면서 포위망을 탈출하는데 성공하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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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혜의 방어선을 이용하지 못한 대가로 평택-삼척선까지 후퇴하여야 했습니다 ]

 

만일 청천강 - 원산선에 완벽한 방어망을 설치 후 부대 간에 보조를 맞추어 진격하였다면 몰락은 쉽게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만일 전장이 밀렸더라도 청천강 - 원산선에서 일단 전선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혜의 방어선을 이용하려는 사전대책이 없던 아군은 이곳이 돌파 당하자, 결국 한반도의 지형 상 다음 방어선인 평택 - 삼척선까지 쾌속후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무대책으로 북진만 하였던 당시 상황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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