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AGAIN 살수대첩 [ 6 ]
후퇴, 반격 그리고 새로운 전략
결국 1951년 1월 4일 다시 한 번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 평택-강릉선까지 밀려나 간신히 대오를 정비한 UN군은 부대 재편 및 연결을 완성하여 겨우 적의 진공을 멈추었습니다. 아군의 필사적인 방어가 있었지만 사실 중공군도 더 이상 진격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중공군은 통상 5일 정도 공세를 지속할 수 있었는데 전선이 남으로 내려오면서 보급로가 길어지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수복 된지 석 달 만에 서울이 다시 공산군에 점령당합니다 ]
이러한 약점이 있던 공산군은 전략 요충지인 중서부전선을 돌파하여 전쟁을 하루 빨리 종결지으려는 필사적인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때 중공군 39군이 미 9군단과 미 10군단의 지경선을 파고들어와 양평군 지평리에 포진하고 있던 미 2사단을 포위하였습니다. 하지만 미 2사단은 고슴도치처럼 결사적으로 방어에 나서 적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외곽에서 미 5기병연대가 포위망을 돌파하여 들어오면서 중공군을 격멸하였습니다.
[ 중공군은 중부전선에서 돌파 시도를 하였으나 지평리에서 차단당합니다 ]
워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새롭게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리지웨이는 북진과정에서 전선이 분리되면서 겪었던 뼈아픈 교훈을 잊지 않고 Hand in Hand , Shoulder to Shoulder 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전선을 촘촘히 연결한 상태로 서서히 적을 밀어 붙이는 전략을 채택합니다. 이러한 UN군의 방어선을 뚫기 위해 중공군은 몇 차례의 공세를 단행하지만 리지웨이의 슬로건처럼 아군은 강철 같은 의지로 이를 극복하여 나갑니다.
[ 리지웨이는 전선의 단절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
전선이 분리되어 돌파구가 형성되면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북진 실패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UN군 지휘부는 현지를 사수하여 전선을 단절 시키지 않게 한 후 적의 공세를 막아내고 이후 강력한 화력을 바탕으로 중공군을 밀어붙이는 전략을 구사하였는데 지평리 전투가 바로 그러한 예였습니다. 이처럼 차근차근하게 몇 차례 반격을 통해 3월 15일에는 서울을 재 수복하고 전선을 38선 인근까지 다시 밀어붙였습니다.
[ 점진적인 반격을 통하여 서울을 재 수복하고 전선을 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
이처럼 미군의 지평리 승전으로 공산군의 2월 공세가 실패로 끝나자 중공군도 부대재편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중공군은 본토로부터 무려 6개 軍 ( 서방의 군단규모 편제) 을 새로 보충 받아 2개월여에 걸쳐 전투력을 복원하고 전력을 정비하는데 전력을 기울여 총 70만이라는 대병력을 전선에 전개시켰습니다. 이른바 전사에 피의 혈전으로 기록된 5차례에 걸친 춘계대공세를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 대대적인 증원을 받아 전력을 회복한 중공군은 새로운 공세를 준비합니다 ]
춘계대공세의 목적은 서울을 재점령하여 공산 측의 군사적 우위를 과시하고 UN군을 압박하여 한반도에서 철수하도록 강요하거나 향후 논의 되고 있는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위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미군과 직접적인 격돌은 피하고 한국군 방어지역에 돌파구를 만들어 대 포위 섬멸 하는 방법으로 전략을 수정하였습니다.
[ 미군의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하자 중공군은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
수세에 몰리게 된 중공군은 북한에서 재미를 본 것처럼 아군 뒤로 우회하기 위해 전략적 비중이 큰 중서부전선 방향으로 몇 차례의 공세를 감행하였으나 미군의 강력한 저항에 번번이 막혀 실패하자 전략을 바꾸어 중동부 전선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곳은 주로 국군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중공군은 국군을 상당히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국군이 담당하는 방어선을 향하여 새로운 공세를 준비합니다 ]
그 이유는 미군이 지키던 중서부 전선과 달리 공산군의 정월공세 시 횡성에서 국군 8사단, 3사단, 5사단을 격파하여 전선을 돌파하였고 평창에서 7사단, 9사단을 패퇴시켰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한국전 초기 압도적인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육탄공격을 감행하면서까지 용감하게 적을 막아내었던 국군이 중공군의 참전이후부터는 너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요 ?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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