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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AGAIN 살수대첩 [ 4 ]

鶴山 徐 仁 2009. 2. 14. 11:09

august 의 軍史世界

 

AGAIN 살수대첩 [ 4 ]

 

 

 

일장춘몽으로 끝난 통일

 

국군 지휘관중 가장 두뇌회전이 빠르다고 정평이 난 청성부대김종오 사단장은 2연대의 급박한 상황을 보고받은 후 이 사태가 부대의 존립을 걱정하여야 할 만큼 예상외로 심각한 국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짧지만 중대한 결심을 한 후 즉시 명령을 하달합니다. " 귀 연대는 휴대할 수 있는 전투 장비를 제외한 모든 장비를 파괴 또는 소각하고 최선의 수단을 다하여 회목동으로 집결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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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장 김종오는 2연대에게 즉각 후퇴를 명령합니다 ]

 

당시 정황은 위기에 처한 7연대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이동하던 2연대가 오히려 적에게 먼저 포위당한 형국이었습니다.  탈출에 방해가 되는 중장비까지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병력이라도 어떻게든 수습하여 보자는 것이 당시 김종오 6사단장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김종오의 명령은 7연대는 물론 이거니와 순식간 위기에 빠진 2연대에게 도와 줄 방법이 없으니 알아서 탈출하라는, 마치 최후통첩과도 같은 철수명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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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병력이라도 추스려야 할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

 

이처럼 예하 부대들로 부터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 받았지만 당시에 사단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단 본부와 함께 있던 19연대뿐만 아니라 인근에 진출하여 있던 국군 8사단도 갑자기 출몰 한 중공군의 동시 다발적인 공격을 겨우겨우 막아내기 급급한 실정이었습니다.  서로 도와주지 못할 정도로 이렇게 예하부대가 쪼개진 상태로 동시에 포위 공격을 당하는 것도 전쟁 개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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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공군의 공격은 전 전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때문에 북진의 선봉에 서서 가장 앞으로 달려 나갔던 7연대의 철수도 자력으로 타개하여야 되었습니다.  7연대는 29일 07:00시 2대대 - 3대대 - 연대본부 - 1대대 순으로 종대 대형을 편성하고 고장으로부터 탈출을 개시하였습니다.  사단으로부터 받은 지시는 " 귀 연대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음.  최선을 다하여 철수 작전에 성공하기 바람. " 이라는 명령이 아닌 기원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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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들도 속수무책으로 중공군에게 무너졌습니다 ]

 

중공군은 항공지원이 불가능한 심야에 퇴각로의 사방에서 꽹과리와 피리를 불어대면서 포격과 총격을 가하여 7연대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7연대는 부대를 분산시켜 전방의 적을 견제함과 동시에 일부를 명장산으로 우회 침투시켜 진로를 타개하고자 하였으나 이곳도 이미 중공군이 침투하여 포진하고 있었고 7연대는 진퇴양난에 빠져 괴멸될 위기에 빠져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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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연대의 탈출로는 중공군에게 차단 된 상태였고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

 

이러한 중공군의 전술에 7연대는 급속히 전의를 상실하고 처참하게 각개격파 당하여 나갑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임부택 ( 林富澤 1919~2001 ) 연대장은 비장한 결심을 한 듯 최후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 연대 전 장병은 적진을 각개 돌파하여 구장동으로 집결하라. "  아군의 최 선봉부대로 압록강변으로 진출하여 사기가 충천하였던 7연대는 이렇게 순식간에 와해되기 시작하며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탈출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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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장 임부택은 부대를 해체시킨 것과 다름없는 각개 탈출을 지시합니다 ]

 

이러한 6사단 예하부대들의 분산철수 과정에서 장병들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외에도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극복하여야 했고 무작정 남쪽으로 뿔뿔이 흩어져 계곡과 산등성이를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여야 했습니다.  장병들은 묘향산을 넘어 청천강 남쪽으로 계속되는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가며 형극의 행군을 계속하였는데 그중 가장 멀리 북진하였던 7연대는 부대가 해체될 만큼의 손상을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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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의 희망은 악몽으로 바뀌었습니다 ]

 

11월 6일 초산의 포위망을 뚫고 사선을 넘어 개천으로 퇴각하여 집결을 완료하였을 때 탈출에 성공한 6사단 병력은 10월 25일 압록강 도착 당시의 50 %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장비는 거의 망실된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부대 해체 수준까지 다다른 심각한 몰락이었습니다.  온 국민에게 가슴 설레는 통일을 꿈꾸게 하였던 6사단의 북진은 일장춘몽이 되었고 순식간 악몽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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