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출처 : [名士멘토의 열공특강] 카이스트 유룡 교수 자연 관찰하던 호기심이 '국보급 과학자'로 키워 | |
![]() 카이스트 유룡(53·화학과) 교수는 국보급 과학자다. 지난해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과학자'로 선정됐다. 국가과학자는 국가과학자위원회가 세계적으로 입증된 국내 과학기술자 중에서 매년 1~2명을 선정한다. 현재 국가과학자는 유 교수를 비롯해 이서구 이화여대 석좌교수, 신희섭 KIST 박사 등 3명에 불과하다. 숲에 사는 황조롱이 알을 연구하고 호박꽃에 앉은 꽃등에를 관찰하던 시골소년, 고2 때 비로소 농사일이 면제된 그가 어떻게 국가대표 과학자가 됐을까. 수원과 인천사이 협궤열차를 타고 통학하던 호기심 많은 소년의 공부 이야기는 흥미롭다. ■ 숙제할 시간도 없던 시절 유 교수의 부모는 비닐하우스에서 참외, 토마토, 오이 등 채소를 재배하는 농사를 지었다. 덕분에 고된 농사일은 그의 일상이었고 유년시절 늘 바빴던 기억밖에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부는 수업시간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숙제할 시간도 없어 거른 적이 많았다"고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가난한 시골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한 것은 고교(수원고 22회)에 진학하면서다. "요즘 같으면 어린이에게 농사일은 안 시켰지만 그 시절은 한가족 영농 공동체였죠. 바쁘다 보니 농사일 때문에 고2 여름방학 때까지 낮에는 공부를 못했어요. 밤에는 전기가 없어(대학 3학년 때 비로소 전기가 들어왔다) 어두운 데다가 낮에 일을 많이 해야 했기에 피곤해서 오래 버티지 못했어요. 하지만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려는 내적 동기를 심어 줬는지 모릅니다." 공부를 하려고 등잔불을 켜도 피곤한 눈이 이내 침침해졌다. "밤이 되면 늘 어두웠던 기억이 전부"란다. "공부를 하려해도 어두운 것이 제일 곤란했어요. 낮에는 공부할 시간은 없는데 부모님은 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시니 밤에 '조금씩'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지치고 눈꺼풀이 무거워도 부모님은 책을 손에서 놓지않게 하셨다. 한편으론 속이 상했다. 농사일에 해방을 시켜주지 못할망정 늘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뿌연 등잔불 아래 침침한 눈으로 책을 보자니 미칠 노릇이었다. '고성능 등잔불'을 발명(?)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등잔에 심지를 여러 개 달아서 그만큼 밝게 하는 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었어요. 뒷면에 거울을 달아 반사광을 이용해보기도 했지요. 제일 좋은 방법은 심지 가운데에 빈 공간이 생기도록 속이 빈 원통형 관 속에 심지를 넣고 불을 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가운데 통로로 공기가 들어가 불꽃의 세기가 커지면서 아주 밝아졌어요." 유 교수는 고교에 진학할 때까지 1등은 한 번도 못했다. '조금씩' 공부해서 그저 우등상을 받는 정도였다. "학급에서 2등 정도를 하면 잘했는데, 1등을 못했다고 신경을 쓴 적은 없었다"고 한다.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학교수업과 등·하교 시간이 전부였다. "낮에 일을 많이 했기에 밤에는 피곤해서 못 버텼지요. 자연히 학교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공부를 했어요. 영어 단어장을 만들어 30분씩 기차로 통학(수원~인천간 협궤열차)하면서 참 많이 외웠어요. 그래서 영어실력은 서울 일류 고교를 나온 학생들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고 자부했어요." 농사에서 해방된 것은 고2때였다. 그렇게 농사일을 시키면서도 '대학엔 가야한다'는 부모의 의지 때문이었다.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유 교수는 먼저 과거 몇 년간 대학입시에 출제된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서점에 가서 서울대 본고사 기출문제집을 모두 구해 문제유형들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예상문제까지 만들어 풀어봤다. 그 덕에 혼자서 공부하며 서울대 공대에 바로 합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문과학생이었지만 대입시험은 이과로 쳐서 합격했다. "기출문제를 혼자 풀면서 출제경향이나 시험문제의 성격을 분석하는 데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어요. 시험보기 전 어떤 과목에서 몇 점을 받을지 혼자 예측할 정도였어요. 어쩌면 그런 분석능력이 과학자로서 성공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 않았나 생각돼요. 역설적인 얘기지만,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과학자가 되기 위한 분석능력을 기르게 된지도 몰라요." ■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게 공부 비결 유 교수는 유년시절, 들과 산이 놀이터였고 휴식공간이었으며 친구였다. 매일 같이 나무에 올라가 새를 관찰하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고 한다. 집 근처 나무 위에 황조롱이가 집을 짓는 것이 그렇게나 흥미로웠다. 나무에서 떨어져 다치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동물과 식물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새를 제일 좋아했어요. 다섯 살 때 새 둥지를 발견하면서 숲과 가까워졌는지 모르겠어요. 새가 하루에 알을 몇 개씩 낳는지, 새끼는 언제 부화하며 무얼 먹고 며칠 만에 어른 새가 되는지… 정말 신기했어요. 생각해보면 사물에 대한 분석력은 그 시절 자연을 관찰하는 습관에서 시작해, 고교시절 본격화된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자연 속에서 자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유 교수는 서울대 응용화학부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자의 꿈은 언제 꾸었을까. "우수집단에 들어가니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더군요. 그 덕에 석사과정인 카이스트 화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할 수 있었죠. 성공하기 위해선 그 분야의 뛰어난 집단에 들어가야 해요. 그 분위기에 동화돼야 더 빨리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죠. 카이스트 석사과정 지도교수이셨던 전무식 교수님이 가장 큰 스승이셨습니다. 그분 지도하에 연구자로서의 첫 걸음을 배웠으니까요." 시험 잘 치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그는 대입과 같은 큰 시험은 출제경향을 철저히 분석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학교시험은 수업에 집중하는 길이 최선이라고 했다. 또 실력을 키우기 위해선 복습만한 것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입과 같은 큰 시험에서는 시험문제의 성격과 출제경향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해야 되죠. 그러나 학교에서 치는 중간·기말고사는 시험경향 분석하는 것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게 최고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또 실력을 기르려면 시험공부보다 혼자서 복습하는 편이 낫습니다. 영어공부가 특히 그래요. 며칠 지나고 나면 모두 잊어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다음 복습하고, 또 복습하고… 1년이 지난 것도 다시 복습해 둬야 합니다. 처음 복습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나중에는 슬쩍 보기만 해도 금방 기억에 살아납니다." 유 교수는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비교할 때 가장 큰 특징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대개 기억력과 이해력이 좋은 경우가 많아요. 창의력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 중에도 창의력이 좋은 학생이 있을 수 있어요. 이런 학생은 나중에 과학자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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