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7부능선 위로 雲霧가 자욱하다. 도로에서 올려다 보이는 양평 용문산은 운무에 가려 반토막이다. 산허리를 휘감은 운무는 매순간 몸짓을 달리하며 교태를 부린다.
산아래서 올려다 본...
山門으로 들어서 용문사 수문장 격인 수령 1100년 된 은행나무에 다가가 예를 갖춰 安山을 청한다. 銀杏木은 암수 나무가 다른 자웅이주(雌雄異株)다. 경외감 마저 드는 용문사의 은행古木은 암그루이다. 그렇다면 마주보는 숫그루가 있어야 열매를 맺을텐데... 주위 어딜 둘러봐도 이 巨木을 대적할만한 숫그루는 없다. 숫그루 대신, 맞은 편에 이보다 훌쩍 큰 피뢰철주가 서 있다. 피뢰철주는 古木을 벼락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있겠으나 만고풍상을 견뎌온 孤木을 보듬어 줄 수는 없을터인데...
1100년이 넘은 銀杏 巨木, 古木, 孤木?
은행나무를 끼고 돌아 다리를 건너면 용문산 등로가 빠꼼하게 드러난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늘은 몽실몽실한 솜털구름 사이로 파랗게 열려 있었다. 두어시간 후 산정에서 맞닥뜨릴 비바람의 낌새는 없었고.
현재 고도는 200m 지점, 정상까지 거리는 2.2km를 가리킨다. 정상은 해발 1157m이니 얼추 통박을 굴려봐도 꽤나 가파른 오름길이 예상된다.
등로훼손이 심하다. 이 몸 역시 산 다닌답시고 훼손에 일조하고 있으니 할말은 없다.
까칠한 된비알에 박힌 돌뿌리는 부실한 잇몸에 박힌 잇빨 같다. 밟고 올라설라치면 흔들거리는 통에 여러번 식겁해야 했다. 비탈에 선 소나무는 앙상한 뿌리를 드러낸 채 힘겹게 제자리를 지킨다. 이리저리 뿌리를 뻗쳐가며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는 모습으로 비친다. 무심한 산꾼들의 무수한 발길에 오늘도 등로는 패여지고 쓸려 내린다.
등로를 지키는 나무들은 인간들에 의해 수없이 짓밟히고 꺾이고 휘어잡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내성을 키워 비탈길에서 손잡이가 되어 당겨주고 디딤목이 되어 올려주니... 이 얼마나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인가, 돌뿌리, 풀뿌리, 나뭇가지...더하여 삼라만상에 늘 감사할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막상 돌아서면 머릿속이 하얘져버리니, 나 원참...
널평상에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고른다. 숲속 공기가 서늘하다. 요며칠사이 여름의 끝자락을 실감한다. 재킷을 꺼내 걸칠 요량으로 배낭을 여는데 신주단지 처럼 넣어온 동동주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산정에 올라 마실 정상주인데...
함께 산행 중인 동서가 얼른 컵을 꺼내 드니 도리없다. 뚜껑을 따 술떡을 안주삼아 연거푸 두어잔씩 들이킨다. 자릴 털고 일어서려는데 거푸 마신 탓일까, 어리어리하다.
파랗던 하늘에 먹구름이 낮게 깔린다. 장대비를 예고하듯 숲속은 어스름해져 오고...걸음을 서둔다. 정상을 8백미터 앞둔 전망 좋은 바위벼랑에 올라서자, 기다렸다는듯 운무의 향연이 펼쳐진다.
운무 저너머로 마루금이 아스라히 물결친다. 잠시 관객이 되어 신비스런 雲舞에 한동안 넋을 놓고 있는데 후두둑 거리던 빗방울은 이내 굵은 빗줄기로 변해 사정없이 퍼붓는다. 까짓거 퍼부을테면 퍼부어라, 지난주 운장산에선 온몸으로 비를 받아냈지만 오늘은 어림없다.
잽싸게 숲속으로 몸을 피해 우의를 꺼내 입고서 미끄러운 빗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오른다. 밧줄을 부여잡고 올라 앞을 보면 가파른 계단이, 계단을 다 올라서면 또다시 된비알이... 스틱으로 앞쪽을 찍어 지친 몸뚱아리를 끌어 당기듯 오른 곳에 거대한 통신탑이 괴물처럼 다가선다.
잘 손질해 놓은 전망데크와 흉물스레 널브러져 있는 철조망이 공존하고 있는 곳, 용문산 정상(해발 1,157m)이다. 민간인 통제용 울타리가 쳐져 있어 흡사 전방 지오피 같다.
雲舞의 향연에 관객이 되어...
비구름은 산하를 집어삼켰다가 토해내길 반복한다. 바람에 실린 비구름은 時空을 넘나들며 이 산 저 계곡으로 비를 몰고 다닌다.
산정에서 한참을 그렇게 비구름에 몰입했다. 어깨를 짓누르던 일상의 무게도 비구름에 실려 갔나? 수소 풍선처럼 양발을 떼면 날아오를 것 같다.
그제서야 흠씬 젖은 우의 속으로 냉기가 느껴진다. 폭염의 맹위도 계절 변화 앞에선 꼬리를 내린걸까? 불과 일주일전만해도 독하게 무덥더니만...
아쉬울때 내려서라 했다. 몽환적 분위기에 빠져 자칫 내려설 시기를 놓치면 모두를 놓칠 수도 있다. 만고의 진리다.
급사면 너덜길, 발딛기가 오를때 보다 더더욱 조심스럽다.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는 하산길 내내 길손의 판단을 헷갈리게 한다. 빗줄기가 잠잠해져 갑갑한 우의를 벗을라치면 놀리듯 퍼붓는다.
마당바위에 이를때까지 빗줄기와의 씨름은 계속됐다. 넓고 편평한 마당바위는 계곡 가운데 덩그러니 자릴 잡고서 오가는 산꾼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계곡물 소리, 산새 소리 그리고 숲을 훑고 지나는 바람소리도 마당바위에 타고 올라 앙상블을 이룬다.
계곡물이 불어도 걱정은 없겠다. 다리를 떠받친 홀쭉한 쇠기둥이 어째 좀 불안해 보이긴 하나, 꼭 필요한 곳엔 다리와 계단이 잘 놓여져 있다. 미끄러운 산길을 한참 걸어내려 왔는데도 계곡의 끝은 좀체 다가서질 않더니만... 숲사이로 언뜻 낮은 울타리 너머 절집 추녀가 보인다. 용문사다.
일주문을 벗어나 뒤돌아 올려다 보니 그렇게 요동치던 비구름은 어디로 가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 통신탑까지 말끔한 모습이다
돌아오는 길, 어찌나 정체가 심하던지, 해가 서산너머로 기운다. 가로등도 늘 그래왔듯 하나둘 불을 밝히고...
............용문사 일주문(11:00)-은행나무--능선길-용문산 정상-능선-계곡-마당바위-들머리-일주문(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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