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제발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둬 [ 下 ]
하나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
독일이 유럽의 강자로 서서히 등장한 것은 비스마르크 ( Otto von Bismarck 1815~ 1898 ) 의 주도로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난 이후부터 입니다. 이때 독일의 통일을 방해하였던 마지막 세력이 유사 이래 독일을 철저하게 분열시켜 그들의 영향력 하에 두려고 하던 프랑스였고 이 두 나라의 충돌은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독일 통일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
삼촌시대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나폴레옹 3세 ( Louis-Napoleon Bonaparte 1808~1873 ) 의 프랑스와 냉정한 재상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프로이센-남부독일연합군은 1870년 건곤일척의 전쟁을 벌였는데 여기서 독일이 승리하고 드디어 통일제국을 달성합니다. 그것은 역사 이래 처음으로 독일이 단독으로 프랑스와 일전을 벌여 승리한 전대미문의 사변이었습니다.
[ 보불전쟁의 승리로 독일은 프랑스에게 최초의 승리를 거둡니다 ]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벌어진 30년 전쟁과 나폴레옹의 침탈 결과 프랑스가 강탈하여간 알사스-로렌 지역을 신흥 독일제국이 회복 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선 역사적으로도 독일의 강역이기도 하였지만 이 지역이 유럽 최대의 철광석과 석탄 산지여서 후발 국가로 신속히 국가발전을 이뤄야 할 독일에게 너무나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 베를린에 있는 보불전쟁 전승기념탑 ]
앞에 소개한 도테의 ' 마지막 수업 ' 은 바로 이 당시를 배경으로 나온 소설 입니다. 단지 이소설만 읽은 사람들은 프랑스는 약자고 피해자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지금까지 알아 본 것처럼 그렇지 않다는 것 입니다. 오히려 역사 이래 계속 수난을 받아왔던 독일이 처음으로 프랑스를 제압하고 고토를 회복 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프랑스합병 이래 많은 게르만계 주민들이 프랑스화 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는 합니다.
[ 파리가 포위당한 채 항전하였으나 프랑스는 결국 항복을 하였습니다 ]
결국 알사스-로렌지역은 300여년 만에 원래 소유주였던 독일의 영토로 환원되어 새롭게 독일제국의 일원으로 참여한 남부독일제후국들과 더불어 제2제국 ( Deutsches Reich 1871~1918 ) 의 새로운 노른자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알사스-로렌에 대한 독일-프랑스의 분쟁사는 이것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였습니다.
[ 제2제국 성립 시 독일지도와 독일의 영토로 환원된 알사스-로렌 ]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이 지역은 50여년 만에 다시 프랑스의 영토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년 후 일어난 제2차 대전에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독일 제3제국 ( The Third Reich 1933~1945 ) 의 영토로 다시 병합하였고 잠시만의 독일 점령 기간 후 프랑스의 영토로 복구되었습니다.
[ 제1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의 영토로 환원되었을 당시의 지도 ]
[ 나찌 극성기인 1942년 독일 제3제국 영토에 다시 편입된 알사스-로렌 ]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지역을 배경으로 소설을 써서 프랑스의 애국심을 고취하였던 도테는 원래 반유태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사상적 배경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맏아들로 역시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였던 레옹 도데 ( Alphonse-Marie-Léon Daudet 1867~1942 ) 는 나찌 점령기간 동안 독일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는 매국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아버지는 펜으로써 독일을 능멸하였지만 아들은 독일의 하수인으로 말년을 보낸 어처구니없는 변절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 인생 말년에 어처구니없이 매국노로 전락한 레옹 도테 ]
마침내 알사스-로렌이 대결의 장에서 벗어난 것은 격렬한 전쟁이 아닌 대화와 협력에 의해서인데 1951년 유럽석탄위원회 ECSC 의 결성이 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더 이상의 전쟁을 막고자 자각하였던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이곳에 매장된 자원을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으로 개발하여 양국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려 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결국 오늘날 EU로 발전하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대화와 협력의 시대를 개시한 드골 (左) 과 아데나워, 세계사에 놀라운 한 획을 장식한 진정한 거인들입니다 ]
단지 국경에 위치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유사 이래 알사스-로렌 지역에 살아왔던 주민들은 본인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자고나면 국적이 바뀌는 황당함을 수시로 당하여 왔습니다. 독일 통치 시에는 피지배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통치 시에는 독일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게르만들로 이방인시 취급되어 왔습니다. 그들은 프랑스이던 독일인이던 우리에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 제발 가만히 내버려 달라 " 고 절규하지 않았을까요 ?
[ 알사스-로렌의 평화는 유럽의 통일을 가져오는 시금석이 되었습니다 ]
이곳주민들은 결국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과 대결이 아닌 평화와 협력의 방법으로 상생의 길을 택한 결과 강요된 애국이 아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고 그것이 유럽전체 평화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너무나 간단한 진리도 수차례의 피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러한 역사를 보면 참으로 인간들은 미련한 존재 같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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