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총통의 소방수 [ 끝 ]
최후까지 군인의 길을 가다
모델이 히틀러에 대해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히틀러 또한 마지막까지 그를 신뢰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가 충직한 나찌 당원이었는지 그리고 많은 전쟁 범죄행위에 가담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모델이 괴링, 요들, 카이텔과 같은 정치군인들과 달랐던 점은 권력핵심부에서만 맴돌지 않고 야전에서 시작하여 야전에서 끝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 모델은 전쟁 내내 히틀러의 신뢰를 받았지만 괴링 같은 정치군인은 아니었습니다 ]
만일 종전 후 살아 있었다면 여타 지휘관들처럼 전범 재판을 받아 형을 살거나 아니면 히틀러와의 관계 때문에 사형까지 당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휘하던 부하들에게 존경을 받았을 정도로 무리한 작전을 펼치지 않아 쓸데없는 사상을 막아내고는 하였습니다. 특히 수세에 몰린 방어전은 많은 피해를 동반하기 마련인데 모델이 이러한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 많은 독일의 장성들이 종전 후 전범으로 처벌받았습니다 ]
이런 이유 때문에 모델은 화려한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한 만슈타인, 구데리안, 롬멜과 같은 명성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모델의 전투는 복싱으로 따진다면 아웃복싱, 야구일 경우 스몰볼에 해당하는데 이런 경기는 관람자입장에서는 사실 재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스포츠가 아니며 재미로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는 공격을 통한 최종적인 승리를 얻지는 못하였지만 열세인 부대를 이끌고 비참한 패배는 지연시켰습니다.
[ 모델은 최종 승리자는 아니었지만 되도록 비참한 패배는 막았습니다 ]
결국은 패배를 하였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을 들을지 모르겠지만 역시 총통에 대한 존경심이 깊었던 파울루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작전을 펼칠 때 실기하여 독일에게 회복 할 수 없었던 패배를 불러왔던 것과 비교하면 패배를 당하지 않고 성공적인 지연을 펼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스탈린그라드에서 포로가 된 독일 6군 지휘부 ]
그는 또한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죽음으로써 그의 책임을 다하려 하였고 독일군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수많은 독일 장성들이 항복을 하거나 체포되어 전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기변호를 하는데 바빴지만 그는 그러한 굴욕을 겪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부하들을 먼저 생각하여 부대를 해산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도 않았습니다.
[ 전후 많은 독일 장성들이 그들의 책임을 변명하기 바빴습니다 ]
그가 비록 총통의 소방수라는 별명처럼 히틀러와 궁합이 잘 맞았는지는 몰라도 만일 히틀러가 아닌 다른 자가 권력자의 자리에 있었어도 그는 충성을 다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군인은 당연히 국가에 충성을 하여야 하지만 설령 독재자라 하더라도 최고 통수권자의 명령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의무도 있기 때문입니다.
[ 사실 야전의 군인들은 정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조차 사치입니다 ]
모델은 자살을 하였기 때문에 전후에 생존하였던 여러 지휘관들처럼 후세에 알려줄 자선전과 같은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전사나 생존하였던 사람들에 의해 회고된 내용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히틀러에 대한 충성심이 본인의 의사이상으로 과대평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 모델은 그의 책임을 다한 군인중의 군인입니다 ]
어쩌면 내성적인 성격으로 잘못된 명령임을 알면서도 적극적인 항변을 하지 못하고 돌쇠처럼 상부의 명령을 받아들여 자신의 임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전쟁 내내 권력핵심부에서 맴돌지 않고 야전에서만 활약했던 예만 보더라도 히틀러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일신의 영달과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모델은 결코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최후까지 묵묵히 자기자리를 지킨 군무를 천직으로 알던 군인중의 군인이었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