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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총통의 소방수 [ 9 ]

鶴山 徐 仁 2008. 7. 29. 19:02

august 의 軍史世界

 

총통의 소방수 [ 9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

 

1944년 8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연합군의 진격으로 독일은 프랑스에서 퇴각하여야 할 지경까지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동부전선도 소련군이 독일 코앞까지 왔지만 프랑스에서 물러난다면 그 다음은 바로 독일이었습니다.  어느 한쪽도 방어를 소홀히 할 수 없던 상황이었는데 모델" 동부전선의 수호자 " 라고 칭송하면서도 굳이 서부전선으로 보내 방어전을 펼치라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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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군이 독일근처까지 접근해 왔을 정도로 서부전선의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

 

august 개인적으로는 아마 이 시점에서 히틀러가 정치적인 고려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전 후 히틀러의 부관이었던 귄셰 ( Otto Gunsche 1917~2003 ) 와 집사였던 ( Heinz Linge 1913~1980 ) 의 진술을 바탕으로 하여 사학자 에베르 von Henrik Eberle 와 마티아스 Matthias Uhl 가 공저하여 출간한 Das Buch Hitler 에 따르면 이점을 유추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저의 해석이지 정답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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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s Buch Hitler 표지 ]

 

이미 독일과 소련의 동부전선은 전쟁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둔 살육전이었습니다.  때문에 제네바협약 같은 허울 좋은 문구는 없었고 오로지 상대에 대한 증오심만 남아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곧 패배는 대량학살과 같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상상을 쉽게 할 수 있었고 더구나 승리가 확실해 보이는 1944년 후반기에 소련이 공세를 멈추고 독일과 휴전이나 정전을 할 가능성도 전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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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를 목전에 둔 소련이 강화에 응 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

 

이에 비한다면 서부전선은 정치적인 타협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독일 측에서 생각 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동부전선에 비해 학살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가 상대적으로 적어 군사작전 외 보복가능성도 적었습니다.  때문에 바다를 건너온 미국이나 영국이 자국이 아닌 유럽대륙에서 전쟁을 벌일 때 의외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여 전투를 멈출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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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서부전선은 정전의 가능성도 엿보였습니다 ]

 

그렇다면 노르망디 상륙 후 별다른 저항 없이 진격을 하던 연합군을 최대한 막아내어 제1차 대전 당시의 참호전과 같은 상태로 서부전선을 고착화한다면 연합군도 독일의 완전한 점령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이때 프랑스를 비롯하여 독일의 서유럽 점령지역을 연합국 측에 양보하면 서부전선에서 휴전을 가져 올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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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역만리에서 참전한 미군의 전투의지를 독일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

 

그리고 서부전선의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돌린다면 소련의 공세도 방어해 낼 수 있을 것이고 최악의 상태로 가정되는 소련의 보복을 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마치 제1차대전말 소련과 휴전을 하여 동부전선을 정리한 후 서부전선으로 전력을 투입하였던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모델은 서부전선에서도 방패가 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고 8월 중순 현지에 부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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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말 전선 상황이 1940년과 비슷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히틀러가 방어전의 대가인 모델을 서부전선으로 보내놓고 황당한 일을 벌입니다.  1944년 말을 기준으로 서부전선의 상황을 살펴보면 우연히도 1940년과 상당히 비슷하였습니다.  서부전선의 북부는 영국이 남부는 미국이 주로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틈새를 노려 연합군을 양단시키면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히틀러는 하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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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는 1940년의 재방송을 원하였습니다 ]

 

그는 1940년 그의 부대가 아르덴을 돌파하였던 제3제국 영광의 역사를 재현하여 보고자 하였습니다.  히틀러는 다시 한 번 아르덴을 기습 돌파하여 서부전선 연합군의 주력을 절단시켜 분쇄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독일이 그나마 보유한 최후의 예비와 전략물자 그리고 부대들을 이 계획에 동원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중에는 동부전선에서 고군분투하던 몇몇 핵심 부대들의 이동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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