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광 기자 ,오선영 기자 zest@,chosun.com,syoh@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8.07.06 14:46 / 수정 : 2008.07.06 15:42
특성화고는 요즘 특목고로 불린다. 실업계고에서 발전된 형태지만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재학 중 '특화된' 전공을 배울 수 있고, 대입이나 취업에서도 유리하다.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진학해 '특성화고 전성시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130개 특성화고가 운영 중이다. 올해 40개 학교가 추가됐다. 〈표 참조〉 특성화 부문도 IT분야는 물론 디자인, 애니메이션, 조리, 도예, 물류 등 다양하다.
- ▲ (위)양영디지털고 창작로봇동아리 학생들이 로못올림피아드에 출품할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아래)예일디자인고 2학년 학생들이 스커트 만들기 수업을 듣고 있다.사진=이경호 기자 ho@chosun.com,이구희 객원기자
양영디지털고
지난 6월 24일 오전 11시 경기 분당의 양영디지털고 로봇체험실습실.
13명의 3학년 학생들이 각자 '라인 트레이서'라는 모바일 로봇을 만들고 있었다. 라인 트레이서는 적외선 센서로 거리를 감지해 지정한 경로를 찾아가는 로봇을 일컫는다. 학생들은 직접 손으로 만든 로봇 부품을 확인하면서 로봇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했다. 로봇제어시스템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유진옥(34) 교사는 "라인 트레이서는 실제 대학에서도 배우는 수업이며 대학생이 졸업작품으로 만들 정도로 수준이 높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바로 옆 강의실인 테크노피아 실습실. '싸커봇'이라는 로봇 만들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싸커봇은 빠른 속도로 공을 몰고 다니며 골까지 넣는 축구로봇. 11명의 학생들은 모터와 프레임 등 수십 개의 부품들을 볼트와 너트로 조립하며 로봇을 만들었다. 윤평원(18·로봇과3)군은 "학교에 처음 들어와 로봇을 만들 땐 오작동이 많았지만 지금은 수많은 연습과 수업을 통해 로봇 만드는 실력이 크게 늘었다"며 "로봇에 관한 한 우리 학교가 전국 최고"라고 자부했다.
디지털특성화고인 양영디지털고에는 디지털로봇과, 멀티미디어과, 디지털네트워크과, 디지털바이오텍과 등 4개의 특성학과가 있다. 학교 전체에 무선인터넷인 와이브로 체제가 구축돼 어디서나 원하는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다. '로봇'과 '디지털'이라는 특성화 분야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만큼 수상실적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만도 국제로봇올림피아드 전국대회 캐리어머신 부문 금상 수상에 이어 한국폴리텍대학 기술경진대회 디스플레이 분야 금상, 경기도 기능경진대회 지능로봇부문 은상 등 많은 상을 휩쓸었다.
학생 전원이 전자기기기능사, 정보기기운용기능사 등 IT관련 자격증을 최소한 1개 이상 가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제 IT자격증인 국제정보기술자격증(CCNA) 시험에 32명이 응시, 모두 합격했다. 학생들은 창작로봇 동아리, 배틀로봇 동아리, 레고블록 동아리, VEX로봇 동아리 등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서로 로봇기술을 익힌다.
지난해부터 로봇올림피아드 출전을 준비중인 창작로봇동아리 리더 정성현(17·로봇과2)군은 "동아리 방에서 로봇을 분해하고 고치고 만들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라며 "목표가 확실하고 의욕이 넘쳐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로봇제작 실력을 발판 삼아 유학을 준비 중인 학생도 있다. 방과후 수업을 통해 유학반을 운영 중이다. 현재 1·2학년 학생 40여명이 유학반에서 텍사스주립대, 프린스턴대 등을 목표로 공부 중이다.
정윤성(58) 교장은 "특성화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년 전국에서 지원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현재 졸업생 80% 가량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일디자인고
"선생님, 제 스커트 시침질 좀 봐주세요."
지난 6월 23일 예일디자인고 패션디자인실.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갖가지 옷과 마네킹, 재봉틀, 원단 사이에서 학생들의 손이 분주히 움직였다. 여성용 스커트를 만들고 있는 패션디자인과 2학년 학생들이다. 1학년 공통과정을 마치고, 이제 막 전공 과정을 밟기 시작한 학생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시침핀과 바늘에 수없이 손가락을 찔리면서도 작업을 계속하며 선생님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2학년 원성미(17)양은 "스커트를 완성하면 직접 '작품'을 입고 패션쇼도 열 계획이라 설렌다"며 "미술 공부와 전문교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힘들지만 진짜 디자이너가 된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하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작은 패션쇼를 연다. 아직은 엉성하고 맵시도 부족하지만 열기와 꿈만큼은 프로디자이너들의 패션쇼와 다름없다.
예일디자인고는 실력 있는 선생님을 모셔오기 위해 산학협력을 맺었다. 전공수업에는 솜씨 좋은 디자이너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이는 디자이너 문진원(45)씨. 이한주(60) 교감은 "전공 과목뿐 아니라 1학년부터 참여하는 방과후 수업에도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학생들의 자격증 취득도 지원한다. 졸업까지 재학생 전원이 1개 이상의 자격증을 따도록 한다.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인터넷정보검색사, 한복·양복산업기사, 실내건축기사 등 관련 자격증도 다양하다. 2학년 홍성미(17)양은 "이화여대 의상학과와 미국 FIT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며 "전공 공부에 미술, 수능 공부까지 하려니 힘들지만 그만큼 전문성을 가질 수 있어 보람 있다"고 했다.
예일디자인고는 2년 전 예일여자실업고에서 특성화고로 탈바꿈했다. 시각디자인과, 웹디자인과, 패션디자인과, 실내장식디자인과 등 4개 학과로 구성돼 있다. 전문화된 디자인 교육을 위해 최첨단 시설을 갖춘 3개의 디자인교실, 데생 등 미술교육을 위한 기초디자인실, CAD실, 멀티미디어실, 재단실습실, 제도실습실 등 대학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췄다.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넓은 갤러리도 따로 마련했다. 김예환(84) 교장은 "학교를 더욱 발전시켜 디자인전문대학까지 설립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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