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鶴山의 넋두리

대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鶴山 徐 仁 2008. 6. 29. 15:15
『 대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 대자연의 풍광은 이렇게 싱그러운 향기를 맘 껏 뽐내고 있는 데, 왜 내 마음은 이처럼 기운차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질 못할 까? 저들의 맑고, 티없이 순수하고, 역동적인 힘찬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들 인간의 나약함과 추하고, 얼룩진 모습들이 너무 부끄럽다.
아침까지 내린 비에 새옷으로 단장한 그들의 모습이 넘 아름답다.
우리들은 그 누구나 대자연의 순수함을 부러워 하고는 있으면서,
닮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인 가를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다.
 
하루 종일 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묻혀서 살 수 있는 것만으로
정녕 행복하다는 생각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많다.
 
문화의 이기 속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고, 중독되어지고,
이제는 헤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때론 불쌍하다.
 
소달구지 타고 다니던 우리 어린 시절에 비하면 분명히 편리하고
안락한 문화의 이기들을 넘치도록 누리며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예전에 구경도 하지 못하던 갖 가지 맛난 음식들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이렇게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들만을 가지고
나이 많은 세대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상은 많이 좋아졌다 말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 삶이 주거문화 공간이 좋아지고, 옷을 잘 입고, 잘 먹고 산다고, 총체적으로, 한마디로 잘 사는 것이라고 할까요?
모든 사람들은 자연의 신비로움이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들을 닮아가고 자 노력하는 모습은 왜 찾기가 힘든 지 모르겠다. 흔히 삶의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고들 하니, 수도자라고 원안대로
산다고 할 수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우선, 잘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 가? 쉬운 질문은 아니죠! 이 세상에 살다간 모든 성자들의 삶은 원안이었다 할 수 있나요? 단정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주장도 나름대로 다른 점이 있었슴은 단 하나로 통일된 원안의 삶은 없었을런지 모를 거라는 것입니다.
결코 인간의 삶에서 원안이라 내 놓을만한 표준안은 없다고 해도, 자연과 함께 하면서, 보고, 듣고, 그 속에서 배우며,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엄청난 많은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생각합니다.

'鶴山의 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08.07.03
사랑의 언약  (0) 2008.07.03
올바른 초심의 도전정신을 가다듬고  (0) 2008.06.29
인연  (0) 2008.06.29
덩신처럼 살고싶다  (0) 2008.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