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꽃잎이 되어 사라지다 [ 7 ]
피의 대가
크레타의 요충지를 굳건히 방어하며 선전하고 있던 연합군이 방어선을 재구축하고자 말레메 공항이 내려다보이는 107고지에서 전술후퇴를 하였습니다. 수비군이 25,000여 병력이었던데 반하여 그때까지 크레타에 낙하한 팔슈름야거가 단지 8,000뿐이었고 대부분 피해를 보고 있었던 입장이었는데도 공항을 제압당할 수 있는 거점을 스스로 포기한 연합군의 행태는 사실 미스테리한 부분입니다.
[ 전멸의 위기에 몰렸던 팔슈름야거들은 우연히 요충지를 차지합니다 ]
연합군이 철수한 107고지를 얼떨결에 접수한 기진맥진한 제7공수사단의 잔여병력들은 이곳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통하여 말레메공항만 장악한다면 그들을 구원할 제5산악사단이 즉시 들어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멸 위기에 처하였던 팔슈름야거들은 마지막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켜 내고자 하였습니다.
[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사력을 다해 거점을 고수합니다 ]
말레메공항 확보 소식이 독일 지휘부에 전달되자 곧바로 증강병력을 투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증강 병력을 실은 수송기들이 공항을 통하여 속속 도착하면서 전멸의 위기까지 내몰렸던 절망적인 상황의 팔슈름야거들은 간신히 구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전세는 서서히 반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연합군은 증강 되는 독일군을 막기 위해 간간히 포격을 가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 드디어 제7공수사단이 말레메공항을 통하여 속속 도착하기 시작합니다 ]
결국 5월 22일 대부분의 크레타섬은 독일에 의해서 급속히 장악되고 승기를 잃은 연합군은 해상을 통하여 이집트로 철수하려 하였으나 제공권 장악에 실패하여 대부분 독일의 포로가 됩니다. 한 순간의 판단 미스로 인하여 연합군은 다 이긴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배하였고 독일은 목표한 크레타섬을 차지하였으나 승리의 대가로 얻은 손실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 순식간 전황은 역전되어 연합군은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항복합니다
동료들이 사냥당하듯 죽어나간 상황을 목도하였던 현실을 고려할 때
아래 선전사진처럼 생존 팔슈름야거들이 여유를 부렸을지 의문스럽습니다 ]
전사자가 1,915명, 실종이 1,759명 그리고 부상이 1,632명이었는데 그것은 발칸반도 제압 시 한 달 동안 독일이 입었던 2,500명 사망자, 3,000명 실종자, 6,000명 부상자와 비교한다면 작은 섬 하나를 공략하는데 4일간 입은 피해로는 너무나 컸던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피해의 대부분은 히틀러가 애지중지 여기던 독일의 최정예 팔슈름야거들 이었습니다.
[ 새로운 시도를 통해 얻은 결과는 너무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
1975년까지 팔슈름야거를 비롯한 많은 시신이 발굴 되었을 정도로 수많은 무명의 병사들이 이 작은 섬에서 죽어갔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독일군이었던 연합군이었던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지휘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수많은 병사들이 불구덩인 줄도 모르고 뛰어 들어가 몸을 태웠던 것이었습니다.
[ 크레타에 만들어진 팔슈름야거 충혼탑, 현재도 일부 구조물이 남아있습니다 ]
크레타 침공전은 결론적으로 섬은 점령했으나 실제로는 실패한 작전이 되었는데, 그 피해 상황에 놀란 히틀러의 격노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앞으로는 이러한 대규모의 공수작전을 금하였고 이 작전을 기화로 해서 팔슈름야거들은 극소수의 특공작전 외에는 공중을 통한 침투를 되도록 삼가면서 일반 보병부대화되어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크레타전투 귀환 후 참전 팔슈름야거들의 환영식 모습 제 눈에는 비참했던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
반면 독일의 대규모 공수작전에 깊은 감명을 받은 연합군은 독일의 실패원인을 심층 분석하여 대규모의 공수부대를 양성하였습니다. 결국 본의 아니게 귀중한 대규모 공중 강습에 관한 노하우를 습득한 연합군은 4년 후 노르망디에서 사상 최대의 대규모 공수작전을 성공하여 독일의 패망을 재촉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 교훈을 얻은 연합군은 노르망디에서 사상 최대의 공수작전을 펼칩니다 ]
같은 사건을 놓고 하나는 다시는 시도조차하지 않았던 반면 또 한편은 좋은 교훈으로 삼아 발전시켰던 것을 보면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생사도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설픈 시도로 실패하였을 경우 포기하거나 아니면 와신상담하여 성공하거나 ... 본인은 어떠하다고 생각 하십니까 ?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