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어 귀국하는 서해교전 전사자 아내 김종선씨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바친 영웅을 홀대하는 나라…. 더 이상 얘기 안 하겠습니다.”
그가 ‘일기 같지 않은 일기’라는 이름을 붙인 글은 3년 전 출국을 나흘 앞두고 아버지 기일(忌日)을 맞아 “사막 같은 인생의 길, 가는 걸음마다 바르게 걷기를 함께 기도한다”던 2005년 4월 20일자로 시작해 귀국을 앞둔 복잡한 심정을 기록한 지난 3월 10일자로 끝난다. 수첩에 적어놓은 메모, 휘갈겨 써 놓은 쪽지 글을 다시 꺼내 보면서 김씨는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돌아보기 싫은 아픈 상처들을 떠올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편을 팔아 돈을 벌려는 수작’ ‘고철덩어리를 뭣 때문에 전쟁기념관으로 옮기려 하느냐’는 인터넷 댓글을 보며 피가 거꾸로 솟구치던 순간,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1년에 8번이나 거처를 옮겨야 했던 기억을 적었다. “절대 쓰러지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꼭 살아남자”는 다짐도 보인다. 번듯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살다 결혼 반 년 만에 남편을 잃은 김씨. 2005년 서해교전 3주기를 맞아 남편의 유품을 매만지며 사무치는 그리움에 홀로 안타까워했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해 “언니처럼 예쁜 웨딩 드레스를 입고 싶었다”고 속으로 되뇌는 대목에선 애잔함마저 느껴진다. 작년 서해교전 5주기를 맞아 미국 참전용사 할아버지들과 함께 조촐한 추모식을 벌이던 일,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시에서 열린 한국전쟁 기념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을 때 아이들에게 장렬히 산화한 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가르치는 미국인의 모습을 보며 느낀 감상도 적어 놓았다.
김씨는 전화통화에서 “앞으로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을 것”이라면서 “마음에 남아 있는 (나라에 대한) 앙금을 털어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의 시신을 40여일 동안 바닷속에 둔 정부와 군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참수리호가 침몰한 지점은 우리 바다 아닌가요. 실종이라고 변명했지만 따지고 보면 전우를 그냥 두고 나온 것이잖아요. 남편의 시신을 찾기까지는 제게 지옥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기다리라고 할 뿐 누구 하나 미안하다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는 현재 평택 2함대에 전시된 참수리357호를 용산의 전쟁기념관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평화가 그냥 지켜지는 것은 아니란 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바로 참수리357호예요.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라도 꼭 전쟁기념관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전하려면 선체를 해체해야 하고 적잖은 돈이 들기 때문에 어렵다 이야기 하고 있지만 후세들이 가까이서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대단한 애국자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에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당연한 것 아닌가요.” 김씨는 4월 1일 뉴욕발 인천행 항공권을 끊어놓았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귀국하면 10년 동안 미국에는 올 수 없게 될 것”이라면서 “우스터에 있는 6·25 전쟁 기념공원에 있는 (남편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이 무척 보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힘든 미국 생활 동안 그에게 힘과 용기를 준 참전용사 할아버지들도 그리울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부분 여든 안팎의 고령이다. “고마운 분들. 돌아가시면 장례식에라도 참석하는 것이 도리인데…. 한국에 돌아가면 그게 어려워지겠죠.” 수화기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2005년 4월 20일 미국에선 닥치는 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 기일이다.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고생만 하다 가신 아버지. 하늘 나라에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근심과 고통, 아픔과 걱정이 없는 그곳에 계셔서….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기보다는 그곳이 나을 것 같다. 땀 흘리지 않고는 먹지도 말라 하지 않았나. 여기선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지만 미국에선 닥치는 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서 다시 시작하는 거다. 파이팅!!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나를 걱정해 주시는 모든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하루를 감사 속에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병원비가 비싼 그곳에선 절대 아프지 말아야 한다. 사막 같은 인생의 길, 가는 걸음마다 바르게 걷기를 함께 기도한다. 2005년 4월 24일 2005년 5월 18일
2005년 6월 4일
2005년 6월 22일
2005년 6월 29일
기일예배, 3년 전 그 바닷속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오전에 남편 기일 예배를 드렸다. 숙소로 돌아와 남편의 유품을 꺼내 보았다. 불에 탄 흔적이 선명한 신분증, 군 표식 목걸이와 나에게 다정하게 전화하던 휴대폰, 뭔가를 적었을 샤프 펜슬…. 그의 온기가 아련히 느껴진다. 3년 전 그 바닷속에 (상국씨는) 얼마나 추웠을까. 벌써 3년이 지났는데, 난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 정말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줘. 당신의 명예를 꼭 회복시킬 거야. 그때가 꼭 올 거야. I am strong,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please. 2005년 8월 19일 우스터시 공원의 남편 이름, 언제 봐도 가슴이 아리다 얼마 전부터 청소 일을 시작했는데, 자주 몸이 아파 사장님께 죄송하다. 쉬운 일이 없다. 갑자기 우스터에 가고 싶어 서둘러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5시간 걸려 도착한 우스터시 유니언 광장. 한국전쟁 기념 공원의 벽돌에는 여섯 용사의 영문 이름이 선명했다. ‘한상국 중사,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에서 사망하다….’ 언제 봐도 가슴이 아리다. 참수리357호를 보러 평택 2함대를 찾던 때가 생각난다. 벗겨진 페인트칠, “고철덩어리”라 말하던 사람들을 보며 피가 거꾸로 솟구치기도 했다. 용서라는 단어를 생각해 봤다. 지금 내 마음은 그들을 용서했을까. 아니다. 용서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 필요 없다. 남편이 마지막을 함께 한 참수리357호를 반드시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옮기고 말 것이다. 2005년 11월 23일 한국에 있는 엄마가 보고 싶다 몸이 너무 아파 일도 나가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히터가 고장 나 난방을 못한 탓이다.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께서 죽과 약을 갖다 주셨다. ‘또 잘리면 큰일’이라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매니저가 부담 없이 한 주 정도 푹 쉬라고 했다. 며칠 전에는 일하다가 넘어져서 팔과 다리에 멍이 들었다. 사장은 신발에 문제가 있다며 새것을 사라고 하지만 돈이 없다. 참자. 그날 생일을 맞은 동료 린다는 꽃다발 선물을 받았다. 얼마 전 내 생일엔 무엇을 했나. 씁쓸한 웃음이 날 뿐이다. 한국에 있는 엄마 생각이 난다. 보고 싶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다. 아니 아직 못 간다. 그 사람이 간 지 벌써 3년이 넘었는데, 해 놓은 일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내일 오전에는 엄마 목소리를 들어야겠다. 2006년 1월 22일 2006년 6월 28일 2006년 9월 15일
2006년 10월 1일
2007년 3월 11일 2007년 5월 15일 2007년 5월 26일 올해 기념식이 마지막이 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오래했지…. 명예회복이 되지도 않았는데 기념식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하긴 이 초라한 기념식마저 없다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지겠지. 2007년 6월 6일
2007년 6월 29일 나만의 5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우스터에 가는 길. 기차를 타고 가다 중간에 워싱턴 근처에서 한국전 참전용사인 잭 릴리 할아버지를 만나 그분의 차를 타고 함께 갔다. 참전용사회 부회장인 켄 스위프트 할아버지도 만났다. 후두암 수술을 받은 지 며칠 안 됐다는 회장 프랜시스 캐롤 할아버지는 집에서 눈물이 가득히 고인 눈으로 날 반겨주셨다. 10월에 있을 한국전쟁 기념 공원에서 가질 (한국전 참전기념) 동상 건립 기념식에 다른 쟁쟁한 분들과 함께 나를 초청해 주셨다. 나에겐 기회가 될 수 있을까? 먼저 간 여섯 분의 명예회복에 대해서 꼭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잭 할아버지와 함께 가게에 들러 하얀 꽃을 한아름 샀다. 유니언광장에서 나만의 5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한 분 한 분 벽돌을 만져 드렸다. 5년 전 그때가 생각났다. 배가 침몰했다고 했고, 남편은 실종됐다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왜 바로 선체를 인양하지 못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걱정과 분노 속에 40일이 지났고 남편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의 시신을 조타실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남편의 시신은 물에 부풀어 올랐지만 불에 탄 흔적은 없었다. 너무나 깨끗했다. 난 분명히 기억한다. 조타실에 불이 나 가라앉은 배에서 남편의 시신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던 그들의 말을. 그들은 남편의 시신을 차디찬 바닷속에 배와 함께 놔둔 채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실종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체면만 생각하는 우리나라 대양 해군. 이런 식으로 무슨 발전이 있겠나. 2007년 10월 20일 미국인들이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했다 한국전쟁 기념 동상 제막식이 열린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시. 청명한 가을 날씨다. 좀 쌀쌀하기는 했지만 너무나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난 가져온 배지를 나눠줬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있고 ‘한국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형제애를 영원히 지켜나갑시다’란 영문 글귀가 적힌 배지다. 고맙다며 일일이 인사하는 참전 용사 할아버지와 가족들. 오히려 내가 더 고맙고 감사한데, 그들은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행사가 시작돼 자리에 앉았는데, 내 자리는 VIP석이었다. 우스터 시장 부부와 행사의 주역들, 왕년의 여배우, 군 관계자들, 우리 보스턴 영사관분들…. 지난 대선 때 대통령 후보로 나온 존 케리 상원 의원도 보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나라를 위해 먼저 가신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찡했다. 기념 동상의 바닥 벽돌엔 남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서해교전 전사자 6명을 이렇게 정성껏 추모하는 곳은 없다. 2008년 1월 7일 2008년 1월 26일 완전히 결심했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4월 초면 미국 생활도 끝난다. 한 달 반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결과다. 마음먹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엄마의 건강이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나? 아버지처럼 병원 신세를 지다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 한 분뿐인 엄마인데. 그래, 가자. 가서 애물단지 딸이지만 효도를 하자. 남들은 내 속도 모르고 또 여러 이야기를 쉽게 해대겠지. 어차피 내 인생. 그네들이 살아 주는 게 아니다. 신경 쓰지 말자. 가려고 마음을 먹으니 빨리 가고 싶다. 가족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 2008년 3월 10일 김종선씨가 초기 대표…네티즌 3600명 매년 추모행사
추모본부는 지난 1월 29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건의문을 보냈다. 주요 내용은 △서해해전으로의 명칭 변경 △전사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서훈의 재평가 △승조원들의 국가유공자 대우 △참수리357호의 전쟁기념관 이전 등 4가지다. 김상길 추모본부장은 “김대중 정부는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해 해전을 교전이라 축소했다”면서 “임진왜란 당시에는 조선과 일본 수군의 세세한 전투도 해전으로 기록됐다”고 했다. 그는 “부상 당한 장병들은 전역 후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실정이라며 외상 후 증후군과 같은 부분도 보훈 혜택이 가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참수리357호의 전쟁기념관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귀감(龜鑑)을 멀리 떨어진 2함대 안에 전시해 국민의 관심과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할 경우 국민 캠페인을 벌일 계획도 있다고 했다. 비와 눈으로부터 참수리357호를 가려주는 차단막이 없어 선체의 부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도 지적했다. 서해교전?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25분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고속정인 참수리 357호에 선제공격을 가해 침몰시킨 사건이다. 교전 과정에서 윤영하 소령, 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와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했고, 이희완 대위 등 18명이 부상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14/2008031401364.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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