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주필
요즘 들어 이명박(李明博) 대통령 당선자가 화제에 오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이야기의 주조(主調)는 걱정하는 소리다. 기대가 컸을 법한 사람일수록 더 크게 흔들리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넋이 나간 듯하던 손학규(孫鶴圭) 신당 쪽 분위기에는 생기(生氣)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과 '각(角)을 세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조금씩이나마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축구 골대 앞에서 슛을 날리려면 슈팅 각도를 확보해야 하듯 선거에서 상대 샅바를 잡으려면 이슈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엔 인수위가, 최근 들어선 당선자까지 나서서 이런저런 시빗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말이다.
말(言)과 인사(人事)가 문제다. 불탄 숭례문을 국민 성금을 모아 다시 짓자는 발언만 해도 그렇다. 국민들은 화재 당일 TV 긴급 뉴스로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이 나 화재 10분 만에 출동한 소방대가 불을 끄고 있다는 소식을 화면과 함께 지켜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화면 속의 숭례문은 문루(門樓)에서 몇 자락 연기가 새어 나오긴 했어도 여전히 늠름하고 의연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었다. 아침에 깨어보니 그게 숯덩이가 돼버렸다. 소방대와 문화재 당국이 5시간에 걸쳐 국보 1호를 태워먹었다는 것이다. 잇달아 들려오는 소식도 기(氣)가 막히는 소식뿐이었다. 몇 년 전부터 노숙자들이 밤이면 숭례문 문루에 올라가 불을 피워 라면을 끓여 요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수출 3000억 달러에 세계 십몇 위의 경제대국 어쩌구 해왔던 대한민국이 이렇게 기초가 없는 나라였나 하는 부끄럽고 막막한 심정에 휩싸여 몸을 뒤척였다. 여기에 느닷없이 날아든 국민 성금 이야기가 심난한 심사(心思)를 한 번 더 뒤집어 놓고 말았다. 숭례문 앞에는 '문지기'가 없더니, 당선자 곁에는 '입지기'가 없구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당선자의 인사 내용도 뭔가 모르게 위태위태 하기만하다. 요 며칠 전 발표된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가 그랬고, 각료 하마평(下馬評)에 오르내리는 면면(面面) 역시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대통령 당선자의 가장 큰 욕심은 사람 욕심이다. 우리 역대 대통령이 그랬고 세계 모든 대통령이 똑같다. 국정(國政)이란 것이 사람 쓰기에 의해 결판 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 인사 발표가 있자 여기저기의 첫 반응이 '靑瓦대학'이 설립됐느냐는 것이었다. 그만큼 대학교수 출신이 많았다. '적게 배우고 적게 아는 사람'하고만 동지적(同志的) 유대감을 나눴던 노무현 정권과는 달리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사람'을 중(重)하게 여기겠다는 뜻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랏일은 선생님 일하고는 경기 종목도 다르고 무엇보다 운동장 규모가 다르다. 70년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라는 일본 총리가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1등 입학, 1등 졸업을 도맡아 했고 태어나서 치른 모든 시험에서 수석(首席)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다. 그 후쿠다가 한국에 와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과 서로의 국정 운영 경험을 나누면서 했다는 이야기다. "저는 사람을 쓸 때 대학교수에겐 손이 잘 나가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항을 열 가지고 백 가지고 순식간에 열거(列擧)하는데 막상 무엇을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지 하는 우선순위(優先順位) 판단과 조직의 힘을 한 군데로 모아 일하는 데 서툴러서 말입니다." 실제 박 대통령도 집권 18년 동안 수많은 교수들을 정부로 불러들였지만, 그 가운데 성공했다 싶은 인물은 몇 손가락을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당선자의 인사가 있고 나면 으레 학연(學緣)·지연(地緣)·종교연(宗敎緣)을 들먹이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도 심상한 일은 아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인사 구상을 하면서 오랜 측근 케네스 오도넬한테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하버드 출신이나 당신처럼 아일랜드 이민자에다 가톨릭 신자 말고 좀 다른 사람을 찾아봐." 학교·지역·종교 간 안배(按配)가 최선은 아니지만, 정권이 달리면서 부딪치게 될 역풍(逆風)을 최소화하려면 안배의 지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 말이다.
이쯤이면 넋이 나갔던 신당이 왜 요즘 갑자기 기(氣)가 되살아나서 이번 총선에서 이명박 정권과 각을 세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되찾게 됐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4/20080214014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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