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시론] 지역 전문가 푸대접하는 사회

鶴山 徐 仁 2007. 8. 13. 15:09

조희선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몇 해 전 이집트 방문 길에 카이로대 정치학과장의 초청으로 이집트 주재 미국대사 간담회에 참석했다. 미국 대사가 이집트의 여론 주도 인사 100여명을 특별 초청해 미국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다. 당시는 이라크전으로 반미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아랍인 특유의 다혈질로 고성이 오가고 질문들이 쏟아지는 살벌한 분위기에서도 미국 대사는 유창한 아랍어로 또박또박 미 정부의 입장을 해명했다. 참석자들은 간담회 내용과 관계없이 아랍 세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아랍어로 답하는 미국 대사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1990년대 말 내전으로 혼란을 겪던 아프리카 북부의 어느 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곳 주재 한국대사와 짤막한 전화 통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 아랍어나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대사를 파견했던 것이다. 아랍 세계와의 인연은 젊은 시절 카이로에서 6개월 동안 연수한 것이 전부라고 이분은 고백했다.

지금은 약간 나아졌겠지만 지역 전문가가 여전히 드문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우리 기업과 국민들이 지구 곳곳에서 활약하는 만큼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이번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에서도 전문가가 없다는 지적은 앵무새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가가 부족한 분야가 아프가니스탄뿐이겠는가. 아랍어, 이슬람 전문가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전문가도 드물기는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는 아무리 멍청한 학생이라도 소련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수월하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소련이 무너지자 미국과 소련 중심의 세계가 서방 대 이슬람으로 재편되면서 무게 중심이 아랍, 이슬람학으로 넘어갔다. 1996년 UCLA에서 방문교수로 보내면서 아랍, 이슬람학 전공 학생들이 손쉽게 장학금을 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집트, 모로코, 예멘, 튀니지 등 자신이 원하는 어느 나라든 국비장학생으로 유학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 아랍어가 처음으로 도입돼 2007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는 5000명 이상의 수험생들이 제2외국어로 아랍어에 응시했다. 아랍어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는 뜻이다. 대학에서도 한국외대, 명지대, 부산외대, 조선대 등 4개 대학에서 아랍어를 비롯한 아랍지역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립대학 중에는 한 곳도 아랍어과가 개설된 곳이 없다. 선진국 대학에 아랍, 이슬람 학과가 주로 국립대에 개설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수 국립대에 아랍학과가 개설돼 우수한 인력이 아랍어, 이슬람학에 뛰어들 때보다 뛰어난 지역 전문가가 배출될 수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현재 한국외대 아랍어과 학부에는 일부 서울대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아랍어를 공부하기 위해 학점 교류 수강을 하고 있다.

아랍, 이슬람 전문가를 키우는 것도 어렵지만 문제는 아랍 국가에 자비로 유학한 지역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한국의 인력 관리시스템이다.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시간강사를 하거나 번역, 통역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선배들의 처지는 후배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쳐 장기 유학을 선택하는 신진 연구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외교부에 특채된 아랍 전문가들도 푸대접을 견디지 못해 대기업으로 이직하거나 외교부를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쪽에선 전문가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그 반대편에선 박사 학위까지 받은 전문가들을 푸대접하는 나라, 2007년 8월의 한국 사회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12/20070812004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