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 경향 강한 것은 ‘공화정신´ 때문
프랑스의 정식명칭은 프랑스 공화국(Republique Francaise)이다. 프랑스의 각급 학교 정문을 비롯해 모든 공공건물에는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RF’가 쓰여 있고 그 위에는 자유·평등·박애의 혁명 이념을 상징하는 3색기가 펄럭인다.
공화국이란 정확하게 무엇일까.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발칸반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들이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공화국이 어떤 것이며, 그 가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공화국의 어원은 라틴어의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인데 이는 ‘공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그 출발점은 공공성과 공익성인 셈이다. 프랑스는 어느 나라보다도 공화국의 어원에 맞는 정치를 구사하며, 공화국 정신에 충실하게 국가를 운영해 가는 나라다. 프랑스인들에게 국가(Etat)는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공화국은 그들에게 반(反)왕권과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일관되게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국가는 강력해야 하며 잘 훈련받은 인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생각이다. 모든 국가의 업무를 중앙에 결집시키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고, 엘리트 교육을 인정하는 배경이다.
프랑스는 미국이나 독일, 스위스와 달리 중앙정부의 힘이 막강하다. 프랑스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책임진다. 국방, 산업, 의료, 교육 등 모든 일을 국가가 맡아서 한다. 국가는 절대적이다. 이 절대적인 힘을 움직이는 손발은 600만명이나 되는 공무원들이다.
프랑스가 서유럽에서 가장 중앙집권적인 나라라는 것은 정치체제 외에 인구분포와 도시화 측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구 5800만명 중 1000만명이 파리와 수도권에 살고 있다.20여개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수많은 국도 등 모든 길은 파리로 통한다. 파리는 중앙정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르코지의 ‘강한 프랑스’는 역사의 산물
프랑스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통은 사실 전제군주 시절부터 뿌리내려 온 것이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왕권시대에 강력한 중앙관료체제를 발전시킨 나라다. 왕이 임명하는 관료들이 지방에 파견돼 세금을 거둬들이고 행정을 담당했다. 그 전통은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지금도 중앙정부 파견 도지사(prefet)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중앙집권적 경향은 혁명세력에 의해 더욱 강화됐다. 왕권에 동조하는 반혁명 세력을 뿌리뽑고 민주적 전통을 뿌리내리기 위해서, 그리고 대혁명을 통해 확립한 ‘통일된 불가분의 공화국(La Republique une et indivisible)’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중앙집권화된 강력한 국가가 필요했다.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가 내세운 ‘강한 프랑스’는 갑자기 튀어나온 슬로건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수백년 역사의 산물이며, 드골 대통령에 의해 실현됐던 것이다. 사르코지는 강한 프랑스의 재현을 외치며 제5공화국의 6대 대통령이 됐다.
1958년 9월28일 국민투표에서 채택돼 오늘날까지 유효한 프랑스의 제5공화국 헌법은 중앙집권화된 국가를 통치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 180년 동안 수많은 희생과 시행 착오를 거친 뒤 얻어낸 결과물이 전제 군주시대의 군주처럼 대통령에게 힘을 집중시켰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프랑스다. 현대판 제왕이라고 할 정도로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데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공화국 정신을 수호하려면 강한 대통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포원, 원포올!
중앙집권화된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동화(同化), 공공의 이익, 평등 등 세 가지 원칙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공화국을 기계에 비유한다면 이 원칙들은 기계가 잘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것이다. 프랑스에 사는 모든 사람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언어적으로 프랑스의 것에 동화돼야 한다는 것이 우선이다. 프랑스 국민을 하나로 묶고, 지금까지 국가를 이끌어온 원칙이다. 두 번째는 ‘공공의 이익’인데 장자크 루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공공의 이익 앞에서 양보돼야 한다. 프랑스 같은 자유주의·개인주의 사회가 안정되게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이 철칙이 지켜지는 덕분이다. 프랑스에서 관료들은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의회의 의원도 마찬가지다.500여명의 지역구 의원이 하원에 있지만 이들이 지역구의 사업이나 현안을 챙기는 일은 없다. 공개적으로 지역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은 없다. 프랑스 정치인들이나 관료집단이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평등을 얘기해 보자. 프랑스에서 평등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며,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은 철칙이다. 평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프랑스는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의료와 복지를 국가가 책임진다.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평등은 어떻게 적용될까. 국가의 입장에서도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출신에 상관없이 프랑스 국적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프랑스인으로서 권리와 혜택을 누리지만 동시에 국민으로서 책임을 요구한다.
공화국 정신이 잘 이해가 안 간다면 삼총사가 칼을 맞대고 외쳤던 슬로건을 떠올려 보자.‘올포원, 원포올!’ 국가를 위해 모두가 뭉치고, 국가는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