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봄에도 낙엽은 진다

鶴山 徐 仁 2007. 4. 28. 05:47
2007년4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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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도 낙엽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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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뉴델리의 외국인 밀집지역인 바산트 비하르(Vasant Vihar)의 한 주택가 2층. 내가 사는 집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면 먹이를 찾아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부랑우(집 없는 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인도는 그야말로 소들의 천국이다. 통계에 따르면 인구 11억명의 인도엔 소가 3억마리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정처 없이 도시나 시골의 골목길을 누비는 부랑우만 1억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목격하는 소들은 1억마리가 넘는 부랑우 중 몇 마리에 불과하다.
 

알려진 것처럼 인도에선 소를 신성하게 여겨 아무도 살육하지 않기 때문에 수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간혹 대로 한가운데를 독차지해 교통체증까지 일으켜 뉴델리 같은 대도시에선 엄청난 골칫거리다. 오죽하면 인도 정부가 나서서 일년에 한 번쯤 이들 소를 트럭에 태워 농촌으로 싣고 가서 버리기도 할까.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 해결은 아니다. 먹이를 찾는 부랑우들은 금세 대도시의 쓰레기 하치장 등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인도 소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우리 동네 골목길에서 부랑우 외에 낯선 물체를 발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선을 붙잡은 것은 바로 주먹보다 큰 노란색 낙엽이었다. 뉴델리가 남반구도 아닌데 지금 무슨 낙엽일까 싶다.

뉴델리는 우리와 같은 북반구라 최근까진 영상 0~10도 안팎의 쌀쌀한 겨울이 막 지나갔다. 이제 막 여름으로 가는 중이다. 그런데도 낙엽이 한창이다. 부처께서 득도하실 때 작열하는 인도의 태양을 가려줬다는 보리수는 물론 수많은 가로수의 잎들이 1~2주일 전부터 마르기 시작해 지금 한창 잎이 지고 있다.

만물이 만개하는 여름으로 넘어가는데 왜 낙엽이 질까. 겨울을 보내자마자 낙엽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현상’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뉴델리에선 수천 년 전부터 늘 이맘때면 어김없이 낙엽이 졌다고 한다.

 

이유는 생존의 법칙 때문이다. 인도에선 3월 말부터 섭씨 40도를 넘는 무더위가 시작된다. 앞으로 6개월 이상은 이 나무들이 최고 섭씨 50도까지 오르는 혹독한 더위와 싸우며 자신의 존재를 지켜내야 한다. 고온에 적응력이 강한 열대수가 아니어서 잔혹한 더위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그래서 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 둘씩 가볍게 하고 있으며, 그 작업이 바로 ‘4월의 낙엽’이란 것이다. 추울 때만 낙엽이 진다고 여겼는데, 이런 자연현상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인도에서 10년째 거주하는 이건준 박사(산크리스트어)는 “유학 초기 4월의 낙엽을 보고, 다시 한 번 나의 고집과 오만을 반성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이 진리의 전부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경험 속에서 지식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부끄러워하게 된다.

인도에선 이런 ‘경이스런 일’들이 종종 있다. 델리에선 정작 4월 하순 이후 한여름이 되면 모기를 구경하기 어렵다. 너무 더워지면 모기들이 산란을 못해 사라진다고 한다. 8월 이후 몬순 더위가 한풀 꺾이면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인도에서 4월의 낙엽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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