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기차에 대한 로망 때문에 찾아간 마을

鶴山 徐 仁 2006. 10. 27. 11:05
[오마이뉴스 배지영 기자]
▲ 섬진강 기차 마을
ⓒ2006 배지영
내가 자란 곳에는 철로가 없었다. 그러니 기차가 다니지 않았다. 방학이면 서울 친척집에 다녀와서 얼굴이 하얗게 된 친구들이 기차 탄 얘기를 해 줘도, 기차가 나오는 책을 읽고, 기차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봐도, 내게 기차는 생경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안에 화장실이 있어 물만 내리면 똥오줌이 내려간다는 수세식 화장실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기차는 감 잡기가 어려웠다.

대학 학력고사 끝나고 처음으로 기차를 탔다. 광주에서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목포까지 다녀왔다. 처음 타기가 어렵지, 그 다음부터 기차 타 보는 것은 탄탄대로였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기차가 마지막으로 서는 도시에 살아서 1년에 열 번 정도는 밤 기차를 탔다. 이웃 도시를 갈 때도 기차를 탈 때가 많았다.

그래도 내게 기차에 대한 어떤 결락(缺落)이 남았던 모양이었다. 아이가 두 살부터 네 살까지 놀이학교에 다닐 적에는 방학을 하면 어머니 집에 아이를 보냈다. 그 때 방학 기념으로 꼭 아이랑 둘이서 기차 여행을 했다. 1주일이나 2주일 동안 아이를 못 본다는 허전함과 해방감을 기차에서 마시던 캔맥주로 달래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흘렀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다 기차와 나란히 함께 달려도 흥분은 잠깐, 금세 무덤덤 해졌다.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참여자치 군산 시민연대’에서 섬진강 기차마을을 간다니까 가장 먼저 신청을 했다. 떠나기 전날 밤에 도시락을 싸야한다는 압박의 소식을 듣고서 망설이긴 했지만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했다.

▲ 기차마을 안. 담벼락 그늘에 앉아 쉬는 아이들
ⓒ2006 배지영
ⓒ2006 배지영
내게 기차 마을이 있는 곡성은 아주 새로운 곳은 아니다. 몇 년 전, 새로 지은 곡성역에서 내려 하루 동안 네댓 번의 히치하이킹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때는 기차 마을이 없었다. 기차 마을은 1930년대에 지어져 60여 년 동안 곡성역이었다가 폐쇄된 곳을 작년 봄에 다시 단장해 놓은 곳이다.

기차마을 앞은 새 곡성역이 생기고 나서 6년여 동안 비어 있었다. 그래서 역과 마주보는 ‘공원 수퍼’ 아주머니도 그냥 농사만 지었다. 기차 마을이 생긴 지 1년 6여 개월. 그 간 50만 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단다. 요즘처럼 부지깽이도 농사일을 거들어야 하는 때에 ‘공원 수퍼’ 아주머니는 나락을 널고 돌아와 손님들에게 하드와 물을 파신다. 돌아서는 손님들에게 “갑시다 잉!”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넘치셨다.

기차 마을은 따로 경계가 나뉘지 않은 채 놀이기구 타는 시설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떼 부리기에 딱! 이었다. 우리 아이는 의젓한 초등학교 1학년 이래서 눈치가 있었다. 밖에 나온 이상 넉넉하게 돈을 쓰는 제 엄마 습성을 알고 있다. 아이는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타보고, 3분에 2천 원씩 하는 ‘하늘을 나는 자전거’는 두 번 탔다.

▲ 하늘을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위로 올라간다.
ⓒ2006 배지영


▲ 영화 <아이스케키>의 촬영 세트장
ⓒ2006 배지영


기차 마을에는 <아이스케키>라는 영화를 찍은 세트장도 바로 붙어 있었다. 아이를 역 앞 입체 영화 상영하는 데에 들여보내 놓고, 혼자 돌아다녔다. 세트장에 오면 아이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영화 끝나기를 기다려 아이와 함께 세트장으로 갔다. 앞에 걷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런 곳에서 컸다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런 데에서 학교 다닐 때 엄마 해찰하고 까먹었지? 냇가에서 목욕도 많이 했지?”

“어. 냇가에서는 날마다 놀았는데 많이는 안 까먹었어. 지현이 이모한테 종이인형 사다주느라고 돈 아낀 적도 많았어. 제규야, 넌 이 중에서 어떤 가게에 가 보고 싶어?”

“난 뽑기 하는 가게. 옛날에도 있었지?”

우리는 영화 세트장에서 나와 전시되어 있는 기차 안으로 들어가 봤다. 통일호 기차 안에서는 아무도 없길래 귀신 놀이를 했다. <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장동건원빈이 군대로 끌려가던 기차도 탔다. 사람들은 나무로 돼 있는 기차 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기차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바깥 사람들은 증기 기관차에 기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 전시되어 있는 증기기관차
ⓒ2006 배지영
▲ 철로 위를 달릴 수 있는 자전거. 사람이 많아서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2006 배지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자전거로 철로 위를 달릴 수 있는 곳이었다. 10월답지 않게 가만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데 땡볕 아래서 2시간을 기다려야 탈 수 있다는 비보를 듣고는 포기했다. 그런데 후배 부부는 끈질기게 기다렸다가 탔다. 거기에 우리 아이도 덤으로 태웠다. 나는 ‘사모님’이 되어 철로 자전거를 타면서 입이 헤~ 벌어진 아이 얼굴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평일에는 두 번, 주말에는 네 번, 기차마을에서 가정역까지 증기기관차가 오간다. 주말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입석으로 가야 한다. 증기기관차에서는 증기가 나왔다. 하지만 석유로 간다는 거. 기차는 느리게 30분을 달렸다. 그 사이에 <아이스케키>영화에도 출연하셨다는 아저씨가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가정 역은 줄 서지 않고도 갈 수 있는 냇가가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한 여름처럼 물 속에 들어가서 재첩을 잡거나 낚시를 하고 있었다. 다리 건너에서는 코스모스 길을 달리는 자전거들이 보였다. 이제는 어릴 때처럼 냇가에서 놀고 신작로 길을 달리려면, 돈을 들여 먼길을 와야 한다.

물에 빠져서 속옷 차림이 된 아이와 관광버스에 올랐다. 아이는 차에서 켜 놓은 영화를 보고, 나는 mp3로 노래를 들었다. 허전했다.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갔고, 밤 기차에서 맥주도 마셨고, 프랑스 고속 철도 테제베에서 책을 읽었어도, 어린 날에 기대했던 기차는 없었다. 어쩌면 은하철도 999’가 생겨 우주를 오가는 기차를 탄대도, 기차에 대한 로망은 로망인 채로 남아있을 것 같다.

▲ 섬진강, 사람들은 한여름처럼 물에 들어가 재첩을 잡고 있다.
ⓒ2006 배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