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각은…] 국립대 법인화 해야 한다 vs 안 된다 [중앙일보]
"대학에 자율권을 주겠다는데 …" 대학 역사상 요즘처럼 세계적으로 대학 경쟁력 문제가 핵심 사안으로 떠오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중국.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신흥 강국들도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개혁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도 2004년 정부 행정조직이던 89개 국립대를 모두 법인으로 전환했다. 각국이 대학 교육에 관심을 쏟는 것은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선 대학이 국가 경쟁력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립대는 역사는 짧지만 대량화.표준화로 대표되는 산업화 시대에 인재 양성과 연구.기술 개발에서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에서 현 국립대의 지배.재무운영 구조는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대학이 산업.경제계를 따라가지 못하고, 사회.경제 발전은 지체될 것이다. 이제 국립대가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선 법인화가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국립대 법인화 논의는 1995년 5.31 교육개혁 방안에서 처음 제안됐지만 추진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정부가 '특성화를 위한 대학혁신 방안'에서 자율적 선택에 의한 국립대 특수법인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여러 차례 학계.경제계.언론계 인사들과의 논의를 거쳐 '국립대학 법인의 설립.운영 특별법안'초안이 만들어졌다. 이 법의 특징은 국립대를 '정부조직으로서 법령에 입각한 의사결정구조'에서 '국가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의사결정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국립대에 이사회를 설치해 대학 구성원 위주의 폐쇄적인 운영체제에서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개방형 운영체제로 전환하는 한편 총장의 리더십과 책임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인사.조직.재정에서도 자율화된다. 현재의 국립대는 정부 인사관리 원칙과 예산 회계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인사.재정 운영에서 많은 통제를 받아 대학이 자율적인 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많다. 그러나 특별법이 적용되면 대학은 교직원 인사.보수, 기구 설치. 폐지, 재정 계획 등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국립대 법인화 반대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첫째, 국가의 관리.통제 강화와 대학의 기업 경영화로 대학의 공공성과 대학자치가 말살된다. 둘째, 연차적으로 국립대에 대한 재정 지원을 축소해 국가의 재정부담 책임을 피하려 한다. 셋째, 대학서열 체제가 고착화된다. 넷째, 이윤추구가 가능한 응용학문을 중시해 기초학문이 몰락한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법인화로 발생할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법에 법인으로 전환된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의무, 국립대가 보유하고 있는 국유재산의 무상 양여, 정부의 기초학문 육성 책임 등을 명시했다. 또 법인 소속으로 전환되는 교직원의 고용승계, 정년.연금 보장 등을 명시해 법인화가 돼도 교직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게다가 교육부는 일본과 달리 희망하는 국립대에 한해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립대 구성원들은 무조건 특별법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토론의 장에서 의견을 적극 개진해 특별법이 국립대 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임창빈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구조개혁팀장 "준비 덜 됐는데 왜 밀어붙이나" 왜 이리 되었는가. 국립대 특수법인화의 목적은 대학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 이를 위해 대학 운영의 자율성은 필수적이다. 대학 교수치고 이 명제에 반대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국가가 정책방향을 다 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요식 행위를 갖추려는 독선적인 태도는 정말 큰 문제다. 국립대 법인화를 놓고 교육부와 대학이 언제, 몇 번이나 진지한 논의를 했던가. 이번 공청회는 필자 이외에는 사회자.토론자들이 법인화 찬성 입장을 밝혀온 인사여서 공청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공청회 안내도 교육부 홈페이지 어느 곳에도 사전 공개되지 않는 등 일방적이고 졸속이었다. 공청회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한가. 더욱 교육부의 법인화 특별법은 '대학의 자율성' '의사결정구조의 민주성' '안정적 재정지원' 등 쟁점 사안들이 깊이 연구되지 않은 매우 조악한 것이었다. 교육부는 "법인화를 통해 재정.인사.조직 등에서 대학에 자율성을 주려는 것인데 왜 교수들은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특별법은 승인.인가.허가권 등의 조항에서 교육부 장관의 절대적 결정권한을 인정해 대학의 자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도 비민주적이다. 특별법은 총.학장 등 당연직 6명과 외부 인사 6명 등 15인 이내로 구성된 이사회가 대학 운영의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당연직 이사 중 대학 내부 인사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교육과 연구부문조차 교수 참여가 차단돼 있다. 국립대학의 관심사인 안정적인 재정지원도 불투명하다. 특별법은 '국가는 법인으로 전환한 해당 연도의 국고지원금과 교육예산 중 고등교육 분야 증가율을 반영한 예산을 매년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이는 관계부처와의 협의 과정에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국립대 법인화를 찬성하는 쪽은 2004년 법인화된 일본 도쿄대를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들고 있지만, 일본에는 도쿄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정 기반이 탄탄한 대학은 법인화로 경쟁력 강화를 극대화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학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 재정 기반이 안정되지 못한 한국 대학의 현실에서 법인화만이 최상의 정책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고등교육 투자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상황에서 성급한 법인화는 고등교육에 관한 국가의 책무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데도 교육부는 네 편 내 편 가르려는 듯 "원하는 대학만 법인화하면 된다"고 주장할 것인가.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부와 대학 교수들이 반목할 일이 아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교육부는 일방적으로 끌고가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 정해룡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회장 부경대 교수 |
2006.10.11 21:09 입력 / 2006.10.11 21:13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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