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내가 존경하는 일본인, 사카모토 료마

鶴山 徐 仁 2006. 10. 9. 20:30
 
   
   
  서정후님께 드립니다.
     
내가 존경하는 일본인, 사카모토 료마

얼마 전 일본의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천년의 일본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3위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였고 2위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였다. 그리고 1위에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5∼1867)가 뽑혔다.
료마의 인기가 일본 안에서 그만큼 높은 것이다. 그는 1835년에 하급 사무라이 가정에서 태어나 난세(亂世)를 자신의 몸 하나로 헤쳐 나가면서 천재적인 발상과 과감한 실천으로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얼마 후 자객의 손에 암살당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33세인 1867년이었다.

일본에서는 전국 시대의 경영의 달인(達人)으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인물을 손꼽는다. 노부나가가 길이 없는 상황에서 길을 열어 나간 창업형(創業形)이었다면, 히데요시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였던 관리형(管理形)이었고 이에야스는 닦아 놓은 터전이 오래 지속 되어 나갈 수 있도록 터를 견고히 다진 수성형(守成形)에 해당하는 지도자였다.

이에 비하여 료마는 1860년대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되었던 일본의 혼란기에 개혁과 변화를 이룩하여 나가기 위하여 ‘자기 자신이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변화하고 성숙하여 나가야 함’을 강조한 제3의 지도자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활약하였던 당시에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혼란에 빠진 시대를 비분강개하며 불어 닥치는 서구 문명의 바람에 맞서려고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달랐다. 서양 바람에 맞서려 들지를 말고 배워서 이용하자는 유연한 안목을 지녔다. 이런 열린 시각으로 서양의 발달된 해양기술과 총포술을 재빨리 받아 들여 해양대국 일본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시대를 탓하기 전에 먼저 열어 나가는 지도자다운 면모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