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미스테리에 대한 재해석 [ 5 ]
일곱, 어쩔 수 없는 독일 해군의 능력
해안을 향하여 육지의 나머지 부분을 봉쇄하였다면 포위가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때문에 포위된 적을 요리하는 것은 순전히 공격자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포위된 적이 해상으로 나갈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100 % 완벽한 포위로 볼 수 없습니다.
[ 영불 연합군의 탈출 통로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
만일 오늘날 미국같은 나라가 육지와 바다를 함께 봉쇄하였다면 완벽한 포위이며 포위된 적들은 더 이상 탈출구가 없음을 알고 조기 항복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독일 해군 Kriegsmarine 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재군비를 선언한 이후 육군과 공군의 군비는 빠른 속도로 확장을 하였습니다만 해군의 경우는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 독일 해군의 전력은 육군이나 공군에 비해 미약하였습니다 ]
해군의 경우 전투함에 의해 전력이 결정되는데 전투함이라는 것이 단시일 내에 만들어 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독일은 전통의 육군강국이었습니다. 비록 제 1 차대전 직전까지 영국과의 대규모 건함경쟁을 통해 상당수준의 해군을 운용하였던 적도 있었지만 패전 후 전형적인 연안해군으로 전락하였을 뿐이었습니다.
[ 한때는 영국과 건함경쟁까지 하였지만 제 1 차대전 패전 후 급속히 몰락합니다 ]
재군비 선언 후 독일은 해군육성에도 힘을 기울였지만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1939 년 제 2 차대전 개시 시점에서 보았을 때 세계최강 영국은 빼더라도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변국과 비교하여도 열세였습니다. 독일의 레더 Raeder 제독은 독일이 전쟁을 시작하자 탄식조로 이야기 하였다고 합니다. "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 것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
[ 그들의 한계를 알고 있던 레더제독은 탄식하였습니다 ]
당시 독일 해군은 전쟁을 수행 할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그나마 구축된 전력도 대프랑스전 직전에 있었던 노르웨이 침공 전에서 많은 피해를 보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노르웨이 침공전의 주역은 루프트바페였고 독일 해군은 조연 노릇만 하였습니다. 독일 순양함 블리허가 노르웨이의 구닥다리 해안포에 격침당해 바닥을 하늘로 향해 뒤집었던 것은 독일해군의 한계를 보여주었던 예입니다.
[ 바닥을 하늘로 보여준 블리허는 독일 해군의 한계 였습니다 ]
이런 이유로 육지에서는 대 포위를 완성하였지만 영불해협은 세계 최강 영국해군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영국해군의 호위 하에 병력을 철수하는 동안 바다에서 독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독일 공군이 이를 막기 위해 투입되었지만 집요한 영국공군의 요격에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독일 해군의 유일한 자랑인 U-Boat 도 좁은 영불해협에서 떼거리로 활약하기는 힘들었고 당시까지는 수량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 U-Boat 의 활약도 있었지만 전쟁내내 독일 해군은 수세에 몰려 있었습니다 ]
한국전 당시 흥남 철수도 강력한 미해군의 탄막으로 중공군의 진격을 막고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만일 영-프 연합군이 내륙 한가운데서 포위 되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던커크의 기적을 이야기 할 때 독일 해군의 열세와 영국 해군의 용전분투에 대해 간과하였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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