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미스테리에 대한 재해석 [ 3 ]
넷, 너무나 무서운 프랑스
밀리매니아들이 최고의 당나라군대로 항상 첫손꼽는 것이 프랑스군 입니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폴레옹 이후 제대로 이긴 적이 없고 특히 베트남이나 여타 식민지에서의 개망신도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군 = 허접군대라는 인식이 더욱 에스컬레이트
됩니다.
[ 디엔비엔푸에서 항복한 프랑스군 입니다. 과연 프랑스군이 허접군대 일 까요 ?
]
하지만 august 는 프랑스군이 과연 허접군대였는지에 대해서 물음표를 던집니다. 정말 프랑스군이 불세출의 백전백패 오합지졸
허접군대였을까요 ? 사실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망신당한 것은 미국이나 소련같은 슈퍼파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망신살로 본다면 미국이나 소련같은 슈퍼파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
일대일로 독일과 최초로 맞섰던 보불전쟁은 비록 패전 하였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프로이센 또한 프랑스 못지않은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 1 차대전에서는 전쟁기간 내내 힘들었지만 한 세대의 70 %를
희생하면서까지 결코 물러섬이 없는 투쟁을 프랑스는 하였습니다. 사실 프랑스가 약하였다기 보다는 독일이 더 강하였다는
것이 타당 하다고 생각됩니다.
[ Great War 에서 프랑스는 한 세대를 희생하며 맞서는 불굴의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
독일은 미국과 소련을 상대로 양면전쟁을 하였던 유일무이한 나라였고 근대사이후 항상 여러 적들과 동시에 전쟁을 벌여 비록 패전 하였지만
전투에서는 전사에 길이 빛나는 수많은 승리를 하였을 만큼 강한 군대를 가졌던 나라였습니다. 이런 강한 독일도 프랑스와의
일전은 항상 망설여 왔습니다.
[ 프랑스는 전통의 군사강국이었고 독일도 프랑스와의 대결은 항상 망설여 왔습니다
]
히틀러가 프랑스에 대한 침공명령을 내린 것은 1939 년 대폴란드전 승리직후였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프랑스를
제압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가장 반발하였던 것은 바로 독일군부 자신들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섣부른 프랑스
침공은 나라를 말아먹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쿠데타 모의까지 하였을 정도였으니까요.
[ 프랑스와의 일전을 망설였던 장본인은 바로 독일 자신이었습니다 ]
결국 군부의 강한 반발에 히틀러 또한 마음을 고쳐먹고 수차례 ( 1939 년에만 9 차례 ) 에 걸쳐 작전을 연기하였습니다. 이
당시의 사료를 보면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대프랑스전 개전을 히틀러 또한 많이 망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히틀러도 군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프랑스 침공 시기를 여러차례 정정하였을 정도 입니다
]
그리고 막강한 영-불 연합군과 일전을 치르기 위해 침공 세부계획도 수차례 수정합니다. 이렇듯 내심 두려워하였던 프랑스를 초기에
독일이 예상했던 이상으로 몰아 붙였으니 오히려 두 번 세 번 뒤돌아보고 조심하였을 것입니다. 아니 너무나도 당연하였던 것이고 던커크에
포위 된 프랑스 영국 연합군을 향한 공격중지 명령을 내린 히틀러뿐만 아니라 독일군부 또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 우리역사를 돌이켜 봐도 참담한 패배는 많았습니다 ]
그런데 독일도 상대하기 껄끄러워 하던 프랑스를 강화도의 소규모 국지전을 빼놓고는 우리가 제대로 총칼을 섞어 본적도 없었는데 많은 매니아들이
너무 우습게 아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역사를 살펴봐도 빛나는 승리도 있었지만 허접한 패배도 사실 많았습니다.
상대를 우습게 알아서 승리하였던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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