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 국보 제15호 위치 : 경북 안동시 서후면(西後面) 태장리(台庄里) 봉정사 시대 :
고려 말기 구분 : 목조 불전
국보 제 15호 이 건물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 목조건축 중 최고의
건물로 유명하다. 정면 3칸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전대인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極樂殿;국보 제15호)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목조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에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 2년(1363년)에
2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고 그 후 인조3년(1635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봉정사 극락전은
1376년 중수된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백년 정도 앞선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이는 건축양식을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데, 고려시대
주심포 맞배집의 대표작으로 1탑식 가람배치의 특징을 살리고 있다. 1973년 건물 해체수리 때 1368년에 중수했다는 묵서가
발견됨으로서 이 건물이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중 최고의 건축물로 추정되었으나, 봉정사 대웅전(사진) 보수를 위해 건물을 해체하던
중 대웅전 내 불단을 1361년에 만들었다는 묵서가 발견됨으로서 오히려 대웅전이 늦어도 1361년 이전에 세운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찰의 중심 건물은 극락전이 아니라 대웅전이기 때문에 대웅전이 극락전보다 늦게
건축되지는 않을 것 것이라는 사실이 뒷받침하고 있다. 주요 구조를 보면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잡석으로 된 낮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부드러운 배흘림을 가진 기둥머리에 창방을 돌려, 기둥 위에는 2출목으로 돈
공포를 올려놓았다. 이 공포는 대들보 끝을 받아 그 위의 주심도리를 받게 되며,
외포2출목 첨차는 대들보 끝에 짜여진 부재를 받고, 그 위에 외목도리를 받는다. 대들보 위에는 앞뒤에 일종의
복화반을 두고 그 뒤에 놓인 포작으로 중종보를 받는 이중량 구조로서, 중종보는 복화반 모양의 포대공 위에서 중도리를 받는다. 중종보
중앙에는 키가 낮은 복화반 모양의 포대공이 있어 마루도리를 받치고, 마루도리는 그 앞뒤에서 솟을합장이 이를 받친다. 이 솟을합장은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짧은 것이 아니고 마루도리와 중도리 사이에서 직선재(直線材)로 되나, 그 밑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안으로 굽어 차례로 도리목을 받치며 내려가는 특수한 양식이다. 마루는 널마루를 깔았으며, 불당
중앙 뒤쪽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단 벽을 만들고, 그 앞에 불단을 마련하였다. 불단 위에는 높은 우주를 가진 다포집 모양의 궁전형
보개를 설치했으며, 이 공포의 기둥머리나 소로는 모두 본 건물의 양식과 같이 된 5출목의 포작이다. 이 불단과 보개(寶蓋)는 모두
그 제작연대가 건물과 같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 건물의 몇 가지 양식에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건물의 공포, 특히 기둥머리와 소로의 굽의 형태 및 덧보, 마루도리를 받치는 일종의 복화반(覆花盤) 모양으로 된
대공 형태 등이다. 곧 기둥머리나 소로의 굽은 그 단면이 안으로 굽은 곡선으로 되어 굽받침이 없는데, 이 형태만 본다면 부석사
무량수전의 그것에 굽받침이 없어진 형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생각되는 의성 탑리 5층석탑의
1층 탑신의 우주 위와,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의 좌우 돌난간 기둥에 부각된 소주형의 머리에 이와 비슷한 기둥머리를 볼 수 있다.
쌍봉사(雙峰寺)에 있는 감선사부도 기둥 위의 기둥머리나 창방 위에 놓인 접시받침이 외와 곡같다는 점에서 부석사의 그것보다 앞서는
것이며, 복화반 모양으로 된 대공도 주심포집 건물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국시대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팔자형
솟을 대공의 변화형으로서 오래된 양식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이 봉정사 극락전은 그 양식이
주심포집이라고 하나, 흔히 말하는 고려 중기에 중국 화남지방에서 도입된 건축양식인 주심포집과는 달리, 그 이전에 있었던 건축양식에
이 새로운 양식이 영향을 주어 세워진 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의 고격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며, 부재 하나 하나가 모두 국보적 기법을 갖추고 있어 한층 더 지보적(至寶的) 존재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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