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소주, 아산 연엽주…. 우리나라의 유명 가양주(家釀酒)들이다. 가양주란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주. 그리스로마 신화에 바쿠스가 등장하듯, 술은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골골마다
나름대로의 비법을 지키고 있는 술의 장인들이 있다.
경북 고령 한 마을에서 전통주 빚는 솜씨가 가장 빼어난 김영순(58)씨. 김씨가 빚는 술은 ‘스무주’인데, 술을 담가 20일 만에 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800m 산중턱에 자리잡은 전북 완주의 수왕사(水王寺). 물왕이절이란 옛이름이 알려주듯 신경통과 위장병에 특효라는 약수가 샘솟는
곳이다. 벽암 스님(전통식품 명인1호)의 송화백일주는 이 약수로 빚어내는 약주이다.
예안 이씨 문중의 5대째 가양주로 내려오는 아산 연엽주. 안주인 최황규(63)씨는 시집와서 매번 같은 재료로 담가도 그때마다 술맛이
달랐다고 한다. 고민 끝에, 술을 빚을 때 일절 말을 하지 않고 정성을 기울이자 술 맛이 변함이 없게 됐단다.
조옥화(84) 할머니는 친정에서 배운 가양법과 시집에서 배운 가양법 중 장점만 골라 전통 안동소주 양조비법을 개발했다. 청죽을 잘게 잘라
항아리에 차곡차곡 채우고 불에 구워, 스며 나오는 즙인 죽력으로 만든 술이 전북 정읍의 ‘죽력고’. 녹두장군이 한양으로 압송될 때 타박상에
효과가 있어서 마시며 갔다는 술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지방 어디를 가도, 고유의 맛과 정서를 간직한 술이 있다. 진도를 가면 홍주가, 경주에는 법주가 반긴다. 이같은 민속주는
우리 민족의 성품을 그대로 빼닮아, 소박하면서도 감미로워 친구를 사귀는 매개체가 됐다. 아울러 적당한 음주는 백약지장(百藥之長)으로 권장됐다.
경기도 포천의 ‘전통술 박물관’. 전시실 뒷벽에 놓인 술 도구에 대한 설명은 마치 옛 시인이 읊은 풍류 시(詩)를 보는 듯하다.
‘시아주버니 무서운 손님 드릴 술은 따끈따끈 놋주전자에 담고요. 잔소리 많은 시아버님께 드릴 술은 잔금 서린 청자 병에 담지요. 새참
내어갈 때 얼른 거른 탁배기는 항아리에 담고요. 전 국 고이 떠낸 제주는 옹기주병에 갈무리해요. 임금님 주안상엔 청화백자 제격이지만, 우리 임
드실 술은요 앵두 같은 내 입술에 담아요.´
옛사람들은 술을 적게 마시면서도 술이 갖는 고유한 풍미를 즐기고자 했다. 술을 통해 일월순천(日月順天)의 자연관을 노래해 왔던 것이다.
글·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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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소주 안동소주(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는 민속주 중 알코올도수가 가장 높은 순곡 증류주이다.
고려시대 권문세가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민간 요법으로 배앓이, 독충에 물린 데 발라 치료하는 등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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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 애초 수왕사(水王寺)의 스님들이 마시던 곡차였다. 고산병을 막기 위해 즐겨 마셨던
사찰법주를 벽암 스님이 사지(寺誌)나 문헌을 찾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되살려 낸 것이다. 술이 부드러우면서 독특한 향을 내는 것은 모악산 7부
능선에서 모아진 송홧가루에 그 비법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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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주 담근 지 20일 만에 마실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스무주. 물대신 찹쌀죽을 쑤어 빚는다. 담백하고
향긋한 향이 일품으로 국화를 많이 넣어 국화주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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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력고(竹瀝膏) 소주에다 죽력(푸른 대쪽을 불에 구워서 받은 진액)을 넣어 곤 술로 약 소주의 일종인데
약으로 많이 쓰여 주(酒)라 하지 않고 고(膏)자를 붙였다. 기능보유자인 송명섭(49)씨가 전통제조기법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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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엽주(蓮葉酒) 궁중술에서 유래한 것으로 극심한 가뭄이 들어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임금께서 술을 못 드시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신하들이 차보다는 도수가 높고, 술보다는 도수가 낮은 약술인 연엽주를 만들어 드시게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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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잔에 흥(興)이 되고, 두 잔에 약(藥)이 되는 우리 술. 전통주는 선조들의 생활에 멋과 여유를 주는
활력소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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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 연엽주는 솔잎과 연엽을 깔고 누룩과 버무린 재료에 다시 연근을 섞어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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