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뮤직이라는 용어의 개념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는 시절,그리스의 전통 음악을 포함해
세계 곳곳의 민요와 히트곡, 클래식을 보다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 앞장섰던
나나 무스꾸리 !
데뷔 당시에는 그리스어로 노래하는 그리스 가수로,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재즈 보컬리스트로, 크로스오버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나나 무스꾸리.
연한 파스텔 색채의 목소리, 천사의 목소리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소프라노를
구사하는 그리스 출신 여가수 나나 무스꾸리(1934년생)는 청순하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어 짙은 검은테 안경과 긴머리로 친근하다.
어릴때부터 음악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그녀는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다.
그러나 졸업을 얼마 앞두고 그 당시 유행하던 포크, 재즈, 로큰롤에 심취하게 된
그녀는 Harry Belafonte 와 Quincy Jones 의 영향을 받아 대중음악 가수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1959년 첫 레코드를 취입하고,
1960년 지중해 송 페스티발을 석권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60년 독일에서 싱글 하얀 손수건과 아테네의 횐장미를 발매한 그녀는
1백 2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어 사운드 트랙인 Never on Sunday를 발표하며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64년 해리 벨리폰테의 초청으로 미국 카네기 홀에서 처음 공연을 가진 그녀는
미국 팝 팬들로부터 많은 환호와 갈채를 받는데 성공했다.
또한 최초로 흑인 가수와 공연한 백인 여성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후 오리지널곡과 리바이벌곡 등을 청순하면서도 노래한 그녀는, 많은 고정 팬들을
확보하며 포크 가수와 가스펠 가수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녀는 80년대로 접어들면서도 꾸준히 앨범들을 발표했으며 다이어스트레이츠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Why Worry와 베트 미들러의 The Rose, 케니 로저스의
Sweet Music Man등을 나름대로 리메이크하여음악팬들로부터 원곡 못지않게 사랑을 받았다.
또한 베르디의 오페라'나부코'에 나오는 Song For Liberty를 발표했을 때는
오히려 그녀의 목소리로 부른 작품이 꾸준히 사랑을 받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수많은 세월을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려왔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의 슈퍼 스타였다.
프랑스 샹송에서 이탈리아 영화음악, 팝 넘버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레퍼토리는
거칠 것이 없었고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검은 뿔테 안경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독특한 이미지 또한 음악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59년 데뷔이래 450여장의 발매 앨범 중에서 350여장이 골드 앨범 또는 플래티넘
앨범으로 제작되었으며 1년에 100여차례 공연을 연일 매진으로 마치는
한마디로 전설적인 여가수이다.
여자가수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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