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진천성당(충북 진천군 읍내리 329-1)
건축연도-1923
충북지역 최초 성공회건축물 성당을 한옥건축 양식으로 표현 했다.
진천의 성공회 성당은
1908년에 이 지역에서 전도활동을 벌인 W.N.거니(W.N.Gurney:한국명 김우일)의 감독 아래 학교와 병원 등을 포함하여
60칸 정도의 규모로 세워졌다.
이 성당은 'ㄱ'자형 평면의 한옥식 건물로, 용마루 끝에 십자가를 달았다. 그러나
1920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지금의 성당은 1923년 10월에 주임사제인 조지 어니스트 휠렛(George Ernest
Hewlett:한국명 유신덕)의 관리로 새로이 건축된 건물이다. 건물은 1976년 진천읍 도시계획으로 소방도로 개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나 기본구조만 옛모습을 유지한 채 많은 부분이 변형되었다.
좌향이 남북축에서 동서축으로 변하였고 외벽은 원래 붉은
벽돌이었으나 옮긴 뒤 하부는 붉은 벽돌, 상부는 회벽으로 처리하고 황색으로 도장하였다.
기둥 사이의 간벽에 하나씩 나 있는
창은 서양식 쌍여닫이창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 내부는 유리창, 외부는 전통적인 띠살창호로 구성된 이중창 구조였다. 정면의 합각
부분에 있는 벽돌로 된 십자가 장식도 타일로 변형되었다.
지금의 성당은 동쪽에 정면 출입구, 서쪽에 제단을 둔 긴 직사각형
평면으로 정면 4칸, 측면 8칸 규모이다. 내부는 2개의 열주에 의해 신랑과 측랑이 뚜렷이 구별되는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 공간을
구성하였다.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사다리꼴의 초석을 놓고 사각형의 기둥을 세웠다. 가구 형식은 납도리 9량가로 대들보와 종보
위에 사다리꼴의 대공을 놓아 마루도리를 받도록 하였다. 단층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부연이 있는 겹처마 구조이다. 내부바닥은 장마루로
되어 있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성당 동쪽에는 기와를 올린 1908년 초기 설립 당시의 토담이 일부 남아 있으며 애인병원
수술실로 쓰이던 건물도 있다. 이 성당은 1976년에 옮기는 과정에서 원형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서양건축의 수용과 전통건축의 근대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건축사적 의의를 지닌 중요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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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예능원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7-3
2002.3.28 지정
건축연도
1924
홀형과 중복도형이 병용된 주택 이국형태의 방갈로풍의 주택으로서 주거사 연구자료로 가치가 높음
충청북도에 남아 있는 대표적 일본식 목조주택으로, 1924년 충북금융조합 사택으로 세워졌다.
1954년부터
청주 YMCA(기독교청년회) 회관으로 사용하였으며, 이듬해 강당(講堂)을 신축하였다.
1967년에는 강당을 증축하였고,
1999년에는 1층 화장실을 증축하였다. 지금은 유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뾰족집'이라고도 일컬어진 2층의
목조함석집으로, 일제강점기에 청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꼽혔다.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식민지시대의 문화 상징물로
역사성과 그 시대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홀형과 중복도형이 병용된 이국적인 형태의 방갈로풍 주택으로서 주거사
연구자료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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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 위치한 덕수궁 석조전 동관의 활용 방안을 놓고 미술계와 문화재·역사학계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현재 석조전 동관을 사용하고 있는 궁중유물전시관이 8월 경복궁 내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로 옮김에
따라 이곳이 빈 공간이 되기 때문. 미술계는 지난해부터 석조전 동관을 근대미술관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해왔고 이에 맞서
문화재·역사학계가 최근 대한제국 역사박물관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영국인 건축가 G R
하딩 등의 설계로, 1909년 완공된 국내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이다. 고종이 집무실 및 처소로 사용하는 등 대한제국의 영욕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 규모는 지상 3층, 건평 493평, 연면적 1247평.
일제강점기엔 ‘이왕가(李王家)미술관’으로
사용되었고 광복 이후엔 덕수궁미술관,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활용되었다. 현재 소유 및 관리자는
문화재청.
한편 석조전 서관은 1938년 완공되었고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술계는
지난해부터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은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서울 도심에 위치한 덕수궁 석조전 동·서관을 통합해 한국 근대 미술을
전담하는 국립근대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973∼86년 석조전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했던 전례를 들어
다시 미술관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화재계와 역사학계는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 고종의 생활공간이었던
석조전 동관의 의미를 살려 대한제국 역사박물관으로 꾸며 근대사 역사교육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반론의 요지.
기본설계는 영국인 G.D.하딩, 내부설계는 영국인 로벨이 하였으며, 1900년(광무 4)에 착공하여 1910년(융희 3)에
완공되었다. 3층 석조건물로 정면 54.2m, 측면 31m이며, 1층은 거실, 2층은 접견실 및 홀, 3층은 황제와 황후의
침실·거실·욕실 등으로 사용되었다. 앞면과 옆면에 현관을 만들었다. 기둥 윗부분은 이오니아식, 실내는 로코코풍으로 장식한 서양식
건축기법이 특이하다.
이 건물은 앞에 있는 정원과 함께 18세기 신고전주의 유럽의 궁전건축양식을 본뜬 것이며, 당시에 건축된
서양식 건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다. 이 곳에서 1945년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며, 6·25전쟁 이후 1986년까지
중앙박술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석조전 동관에는 궁중유물전시관이 개관 운영 중이며, 서관에는 국립 현대미술관 분관이 1998년
12월에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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