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2000년 12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을 워릭대에 초청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인은 워릭대를 1960년대 세워진 신생대학의 성공모델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영국 잉글랜드 중심부 코번트리 시외곽에 위치한 워릭대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재정적으로 국가에 의존하는 그저 그런 대학에 불과했다.
당시 워릭대의 정부 지원금 의존율은 전체 예산의 70%나 됐다.》
당시 영국의 예산 위기로 모든 공공부문은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었고 이는 대학교육도 예외가 아니어서 1970년대 말까지 각 대학들은 파산을 모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워릭대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1980, 90년대 20년간 이 대학 재정담당관을 지낸 마이클 셰톡 씨는 “공격은 최상의 방어였다”고 말했다.
대외협력처장 피터 던 씨는 “보수성을 탈피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중에는 행정조직의 개편과 수입의 다변화, 대학운영의 효율성 및 산학협력 강화 등이 포함돼 있었다.
워릭대는 먼저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대학평가는 연구 성과에 달렸고 기업이나 정부의 연구용역을 따야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1991년까지 워릭대는 거의 모든 학과에 대학원 과정을 두게 된다. 1980년과 비교할 때 학부생 수는 2배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대학원생 수는 6배 증가했다.
워릭대는 고등교육재정위원회(HEFC)의 2001년 연구수행평가(RAE)에서 100여 개 대학 중 5위를 차지했고 고등교육질평가원(QAA) 평가에서는 24개 학과 중 22개 학과가 ‘우수’(24점 만점에 21점)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현재 예산 2억8400만 파운드 중 정부지원금은 27%, 국내 학생의 학비에 의한 수입이 10%를 차지하고 나머지 63%는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이다. 이제는 정부예산을 그대로 소진하는 ‘국립대학’이 아니다.
이 때문에 워릭대는 개혁 초기에 “대학이 사업하는 곳이냐”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실제로 이 대학의 운영방식을 보면 일부 학생들이 자신들의 대학을 왜 ‘워릭 주식회사’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간다. 기숙사 건물은 방학이면 방문객에게 개방한다. 방학 내내 각종 학회를 유치하고 사용료를 받는다.
다른 유명대학들이 많은 전공과목을 운영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학과를 만드는 데 비해 워릭대는 선별적으로 학과를 신설한다. 투자에 비해 성과가 괜찮을 것인가를 우선 따진다.
이 대학은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의학, 치의학, 수의학 대신 경영학, 과학, 엔지니어링에 투자했다. 또 수학 경영조사학 통계학 경제학이 융합된 ‘MORSE’란 학과를 만들었다.
개별 학과는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학과장의 힘이 워낙 커 연구센터나 트레이닝센터를 설립하거나 필요한 연구진을 고용하는 권한까지 가진다. 워릭대의 각종 센터는 연구센터 50개를 포함해 80여 개나 된다. 학과에서 기업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한다.
엔지니어링학과의 경우 학부만 해도 3년 과정부터 5년 과정까지 다양하다. 시장 중심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워릭 매뉴팩처링 그룹은 전형적인 산학협력 프로그램이다. 대학은 국내외 기업 40여 개와 파트너십을 맺어 연구와 교육을 함께한다. 교수 연구원 석사과정 학생들은 한 팀이 돼 기업이 제공한 기계나 자재를 이용해 공부한다. 전 세계 500여 개 회사에서 실전경험을 쌓기도 한다.
비즈니스스쿨 역시 트레이닝센터에서 직장인을 훈련시킨다. 또 철도관리회사인 내셔널 레일의 매니저들과 각 축구구단의 매니저를 위한 트레이닝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은 극장을 운영하는 그룹인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와 파트너십을 맺고 연극배우들을 훈련시키기도 한다. 영문학 교수들과 학생들은 희곡을 써 제공한다.
극장 공연장 콘서트홀이 들어선 워릭아트센터는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복합문화공간이다. 매년 1100개의 공연이 열려 25만 명의 관객이 찾는다.
워릭대는 의학전문대학원(메디컬스쿨)도 과감하게 ‘아웃소싱’했다. 대학 측은 2000년 메디컬스쿨을 가지고 있던 레스터대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에 따라 워릭대 학생들은 레스터대 메디컬스쿨과 병원에서 실험 실습을 한다. 대부분 메디컬스쿨은 5년 과정이지만 워릭대는 학부졸업자만 받기 때문에 4년 과정이다.
워릭대 메디컬스쿨 3학년인 케이트 토머스 씨는 “3년 과정의 생화학과를 졸업한 뒤 메디컬스쿨에 들어왔다”며 “현재 레스터대 메디컬스쿨의 시설을 이용해 공부한다”고 말했다.
존 이넥베디온 국제업무국 부국장은 “워릭대는 각종 수입을 학교건물 신축과 연구시설 확충 및 교수진 확보에 재투자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질이 더욱 높아지는 선순환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자랑했다.
코번트리=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5명중 1명 외국학생…115국서 유학 ‘작은 지구촌’▼
워릭대는 유학생에게 인기 있는 학교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합쳐 유학생 수는 115개국 3500명.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이 중 한국학생은 95명. 1980년까지만 해도 전체 유학생이 250명에 불과했다.
유학생 수가 급증한 것은 학교가 신흥명문으로 부상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대학 측의 유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대학의 국제업무국은 외국학생 모집과 함께 이들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대학은 전 세계 22개 도시에 사무실을 두고 외국학생에게 대학 정보를 제공하고 동문 활동을 지원한다. 한국에서는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 맨체스터대 노팅엄대와 함께 사무실(MNW Universities)을 운영한다.
그렇다고 외국인의 입학이 쉬운 것은 아니다. 대학 측은 전체 입학경쟁률이 9.2 대 1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영국에서 유학생 유치는 국제적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재정확충에 도움이 된다. 유럽연합(EU) 출신이 아닌 외국학생은 영국학생에 비해 3배 이상의 학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워릭대에 유학하는 학부생은 연간 9150∼1만1900파운드(약 1600만∼2080만 원)를 내야 한다.
영국 대학은 영국인 학부생 학비는 연간 3000파운드 내에서 받도록 돼 있지만 대학원생 학비는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대학원생의 학비도 외국인이 훨씬 비싸다. 그래서 유학생이 ‘봉’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국 대학들은 유학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유학생이 많이 찾는 영국은 9·11테러 이후 중동지역 학생들이 미국을 기피함에 따라 반사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해 7·7런던테러 이후 영국정부가 엄격한 비자정책을 추진하면서 유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번트리=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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