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잊혀졌던 ‘선거기술자’ 전병민 다시 등장

鶴山 徐 仁 2006. 7. 1. 16:11
대전시장 선거 역전승 이뤄… "염홍철씨의 약점 파고든 전략이 먹혔다"

5·31 지방선거 최대의 격전지는 대전과 제주였다. 다른 지역은 사실상 진작에 승부가 결정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정치권은 ‘과연 대전과 제주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 왼쪽부터 박성효 후보, 강창희 위원장, 박근혜 대표(5월 29일 대전).
선거를 열흘 앞두고 한창 유세전이 벌어지던 지난 5월 20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피습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사건이었다. 박 대표는 수술이 끝난 후 “대전은요?”라고 물었다. 그만큼 한나라당 입장에서 대전시장 선거가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박 대표가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이른바 ‘박풍(朴風)’의 위력은 더 거세졌다. 한나라당 내에선 “이러다 대전과 제주마저 한나라당이 차지하는 것이 아니냐”고 희망 섞인 기대를 하기도 했다. 개표 결과 대전에서는 기적 같은 역전극이 일어났다.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가 43.8%를 얻어 줄곧 우세를 보여왔던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41.1%)를 이긴 것이다. 그러나 박풍도 제주에선 판세를 뒤엎지 못했다.

왜 박풍은 대전에서만 통하고 제주도에서 미풍에 그쳤을까? 정치권 일각에선 ‘선거기술자’로 불리는 전병민씨(한국정책연구원 고문)가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의 선거운동을 맡아 총지휘했기 때문에 이 같은 역전승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전씨는 노태우·김영삼 정부가 탄생할 때 선거기획에 참여한 바 있는, 자타가 인정하는 선거 컨설턴트다.

그는 왜 대전시장 선거에 참여하게 되었고 어떻게 무명의 박성효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었을까? 지난 6월 9일 오후 전씨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 가회동의 한국정책연구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2005년 말 대전지역의 여론조사에서 염홍철 대전시장의 지지율은 50%대였지만 박성효 전 대전시 정무부시장은 불과 2%였다. 한나라당 강창희 대전시당위원장은 지난 4월 초 친구인 전병민씨에게 “대전시장 선거를 맡아 달라”고 의뢰했다. 4월 9일 전씨 측이 한 첫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는 11.5%, 염 후보는 32.8%였다. 일주일 뒤에는 이 차이가 더 벌어져 박 후보 15.5%, 염 후보 42.3%였다. 열린우리당에선 “대전시장 선거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할 만했다. 어떻게 이런 역전 드라마가 가능했을까? 전씨의 설명이다.

“지지율만 본다면 염 후보가 유권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의 유권자는 ‘염 시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유임과 교체 여론이 비슷했던 것이다. 우리는 ‘시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유권자 쪽에 가능성을 두고 그쪽을 공략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많은 언론이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을 간과했기 때문에 박 후보의 당선을 이변처럼 보고 있다. 처음부터 대전시장 선거는 이길 수 있는 선거였다.”

비록 박 후보가 약하게 보였지만 전씨는 염 후보의 두 가지 약점으로 인해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다. “염 후보가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꿨고 관선을 포함한 시장 임기 6년 동안 이렇다 할 만한 업적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이길 수 있다고 봤다.”

▲ 전병민씨.
전씨는 초반 선거전략을 염 후보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작업에 초점을 맞췄다. 검증 과정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인다’는 공격과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운동원들은 “충청도는 양반동네라 네거티브로 몰고 가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는 박 후보의 부친까지 선거운동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박 후보의 부친은 “이 따위로 선거를 하려면 당장 그만 두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전씨는 “시장교체를 희망하는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를 끝까지 묶어놓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전략이었다”고 설명한다. “당적 변경과 4년간의 업적 문제가 1차 대상이었고 자질구레한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것들도 일단 검증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염 후보가 시민의 인상에 남을 만한 상징적인 업적이 없었다는 점을 겨냥했다. 염 시장의 지지자들에게 지지 이유를 물으면 절대다수가 ‘무난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난했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현상유지만 했다’는 뜻이다. 현상유지에 그친 사람은 일단 네거티브 캠페인에 걸려들면 지지층이 흔들리게 되어 있다.”

전씨가 선거를 지휘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박 후보의 지지율은 아직 15%대를 맴돌고 있었다. 전씨는 두 번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전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인 강창희 한나라당 시당위원장을 선거전의 전면에 내세웠다.

5월 8일 강창희 시당위원장은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배반의 장미를 들고 유권자를 현혹하지 말라’라는 제목의 회견문을 읽었다. 강 위원장은 “4년 전 저와 한나라당 당원들은 염홍철씨를 시장후보로 내세워 대전의 유권자 여러분에게 당선을 호소했고 염홍철씨는 시장에 당선되었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당원과 시민에게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염씨는 열린우리당으로 갔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염홍철씨는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병든 아내 팽개치고 야반도주하듯 떠난 사람과 같다”고 공격했다.

강 위원장은 이날 회견에서 “염씨가 열린우리당으로 갈 때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불과 20% 전후였다”면서 “모든 국민이 무능한 정권, 경제 망친 정권, 좌파정권이라며 등을 돌려버렸는데 염씨가 바로 그 정권으로 갔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끝으로 “염씨가 당을 배신했더라도 시정을 제대로 해서 성공한 시장이 되었다면 그래도 그를 인정했을 것이고, 한나라당 선거운동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강창희 위원장이 전면에 등장하자 대전시장 선거는 ‘염홍철 후보 대(對) 강창희 위원장’의 양상이 되어버렸다. 부동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씨는 왜 이런 선거전략을 구사했을까?

“선거구도를 ‘후보 대 후보’로 몰고 가기에는 솔직히 박 후보가 너무나 왜소했다. 그래서 박 후보 대신 강창희 위원장이 나서주길 바랐다. 강 위원장으로 하여금 대리전을 치르게 한 것이다. 사실 염 후보와 강 위원장의 개인적 관계로 보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선거라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줄곧 앞서나가던 염 후보는 박 후보와 강 위원장의 협공을 받고 초조해지는 듯 보였다. 급기야 염 후보는 한 체육행사장에서 만난 박 후보에게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너 맞을래?”라며 막말을 하게 된다. 염 후보에게 악재가 발생한 것이다. 전씨에 따르면 모든 게 차곡차곡 자신의 선거전략대로 맞아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때 예기치 않은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마저 일어났다. 과연 박 대표 피습사건은 대전시장 선거의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리는 ‘염 시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절반 가까운 유권자가 염 시장에게 가지 못하도록 검증을 지속화해서 부동표로 계속 묶어둔 다음, 선거 막판에 박 대표가 대전에 내려와서 그 부동표를 흡수해 가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선거 막판에 박 대표는 대전을 다섯 차례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전씨는 “테러사건이 났기 때문에 부동표 흡수의 속도가 빠르고 컸을 뿐”이라고 말한다.

두 번의 대선을 승리로 만들었던 ‘선거기술자’ 전병민.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그가 대전에서 또 다시 역전승의 드라마를 연출해냈다. 그는 대전시장 선거 승리의 의미와 관련, “JP 이후 충청권의 정치적 오리엔테이션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로 한나라당은 10년 만의 실지회복에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전씨는 “대전시장 승리의 진정한 승자는 강창희 위원장”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강 위원장이 선거전문가인 나에게 모든 걸 백지 위임했다. 감독은 감독의 역할이 있는 것이고, 배우는 배우의 역할이 있다는 논리다. 5선 의원 출신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리더십의 중요한 부분이다.”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maple@chosun.com)

 

 

 

 

鶴山 ;

전병민씨의 결론적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한 때 우리 나라는 정통 군인의 길이 아닌 정치군인이라는 타이틀을 걸머진 소수의 소위 '정치군인' 때문에 군인들은 온통 싸잡아서 정치를 하면 안되는 것처럼 여긴적도 있지만, 남미 등의 군사쿠데타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국가들이 아니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 세계 여러 국가들에서도 군인정치가가 국가의 원수로서, 수상으로서, 훌륭한 치적을 남긴이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순수한 군인으로서 일선 지휘관과 참모생활을 두루 거친 강직한 사람들은 그 어느 영역에서 근무한 사람들 못지 않게 참신하고, 헌신적이면서도 선이 굵은 정치를 할 수 있는 소양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전병민씨가 얘기하는 5.31선거 때 한나라당 대전 시당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던, 5선의 강창희 국회의원도 역시 육사를 졸업한 유능한 군인이었기에 나름대로의 강력한 리더쉽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