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개척정신으로 전진할 것”
대담=김민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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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감리교에서 파견한 여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이 어떻게 이 땅에 ‘이화학당’의 깃발을 들게 되었나요?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은 스크랜튼 부인은 한국 여성의 비참한 현실을 보고 여성교육의 뜻을 품게 됐습니다. 당시는 갑신정변 직후로 사회가
불안정한 상태였죠.”
―이화학당의 첫 학생은 누구인가요?
“김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영어를 배워 통역가가 되고 싶었지만 석 달 만에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이화여대는 한국 근대사가 공인하는 ‘여성1호’ ‘국내최초’의 기록 산실입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중앙선관위원(손봉숙)’ ‘최초의 여성
헌재 재판관(전효숙)’ ‘여성 최초의 법제처장(김선욱)’ ‘한국 최초의 일간신문사 여사장(장명수)’ ‘한국최초의 외신지국장(손지애)’… 이런
인물을 배출한 ‘이대 파워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이화 교육은 전통의 틀을 깨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구한말에 체육교육을 여성에게 시키는 것도 엄청난 파격이었습니다.”
―이화정신의 또 다른 강점은 무엇이 있나요?
“누구나 공정·대등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 학교의 전통입니다. 또 절망하거나 패배감에 빠지지 말자고 가르쳤습니다. 시련을 극복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강점입니다.”
―120주년을 맞은 올해 첫 여성총리를 배출했습니다. 17대 국회 여성 국회의원의 30% 정도(40명 중 13명)가 이대 졸업생이고요.
지난해에는 사시합격생 52명을 배출시키는 등 여풍(女風)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성의 리더십 발휘가 본 궤도에 들어서는 것이죠.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서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선배와 동료를 보면서 ‘아,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도전정신과 용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죠.”
―이화여대의 국제적인 위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죠.
“2000년 독일에서 여자대학(IFU)을 신설하는 데 이화여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했어요. 이제까지 여자대학의 전통은 미국과 일본이
대표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화여대의 프로그램이 인정을 받은 거죠.”
―120주년 슬로건이 ‘프런티어 이화’인데 이화여대의 미래설계를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이화의 역사는 개척정신으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정신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화 글로벌파트너십 프로그램’으로 올해 아프가니스탄, 모잠비크, 케냐, 파라과이 등 개발도상국 14개국에서 24명을 장학생으로 뽑은
것이 시선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화학당이 과거 국내외의 사랑과 도움으로 성장했는데 이제 그 사랑을 나눠주자는 것입니다.”
―외국학생들을 어떻게 지원하나요?
“올해부터 매년 30명씩 뽑아 4년 후부터는 해마다 1~4학년 모두 120명을 지원하게 됩니다. 이들에겐 등록금, 생활비 등 4년간
약1억원씩이 지원됩니다.”
―이화여대는 올해 동물행동학자 서울대 최재천 교수를 스카우트했습니다. 이전에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출신 세계적 과학자 이서구 박사와
나노 분야의 대가 서울대 최진호 교수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했고요.
“21세기에는 자연과학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학교가 발전할 수가 없어요.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화여대는 14개 단과대학을 11개 대학으로 줄이는 등 과감한 대학 구조개혁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잡음도 적지 않은데요.
“1990년 이후 연구중심 대학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조개혁의 출발점은 단과대학이 10개를 넘지 않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동창회를
설득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단과대학을 더 줄일 계획입니까?
“법률이 통과돼 법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되면 법과대학을 없앨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단과대학이 10개로 줄겠죠.”
―오늘 이화학당 한옥교사 복원 봉헌식을 가졌는데요.
“그곳은 한국 근대적 여성교육의 발상지입니다. 한국 여성의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죠. 복원의 꿈을 가지고 있다가 120주년
기념사업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곳은 역사 자료관으로 근대교육의 변천사를 보여줄 것입니다.”
―2만평 규모 지하캠퍼스가 내년 12월 완공되는데 캠퍼스가 어떻게 달라지나요?
“국내 최초의 지하캠퍼스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지하 6층의 캠퍼스에는 강의실과 도서관, 공연장, 극장 등을 갖추게 됩니다. 또 학교로
진입하는 모든 차량은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게 돼 ‘차 없는 캠퍼스’가 실현됩니다.”
―한국대학들의 국제경쟁력은 국가경쟁력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평입니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전공이나 분야를 육성해야 합니다.”
―이대가 집중 육성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생명과학과 나노과학, 여성학 등입니다.”
―총장께서는 대학시절 법대학생회장으로 한일 굴욕외교 반대시위를 주도해 정학을 당하기도 했는데 학생의 정치참여 사회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아쉬운 점은 요즘 학생운동이 마치 노동운동처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학교와 학생관계를 노사관계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어 당혹스럽습니다.
총장과 ‘교섭’을 하자고 하는 등 노동현장과 교육현장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된 데는 사회의 책임도 큽니다.”
―한국의 지도자가 될 학생들이 뭘 준비해야 합니까.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학생들이 변화된 세상에 대한 적응력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직되고 고정관념을 가지면 본인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심각한 벽에 부딪힐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낙관합니다.”
신인령 총장은 남 앞에 나서지 않는 조용한 성격의 학자다. 하지만 원칙이 정해지면 소신껏 일을 밀고 나가는 스타일. 올해 등록금인상 반대투쟁과 대학 구조개혁 반발 때도 소신과 원칙대로 일을 처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강원도 명주군(현 강릉시)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사회교육간사로 10여년간 일했다. 이 당시 공장 노동자들에게 노조민주화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전공은 노동법. 한국노동법학회 11대 회장을 역임했고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민간위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