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鶴山의 個人觀

젊은 세대들이여!

鶴山 徐 仁 2006. 5. 15. 11:59

선조, 조상이 없는 후손, 지금의 현 세대가 존재 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 모두가 지나 간 역사를 결코 간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 사회를 지켜 본다면 너무 빠르게 지나친 우리의 과거사를 잊어버리고 살아 가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역사이건 오욕의 슬픈 역사이건 우리가 지나쳐 온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알아야만 현재를 제대로 조명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밝은 미래를 기약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많은 국가들이나 일부 아시아의 가난한 국가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60~70년대만 하더라도 굶주리고 헐 벗은 국민들이 너무나 많았었는데도 불구하고 80년대 이후로 국력이 점차 신장되고 경제가 급속히 도약하는 과정에서 철 모르고 성장한 세대나 이 시기에 출생한 세대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나 부모의 세대가 참담하게 겪은 고통과 아픔을 전연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자랑스럽지 못한 어려웠던 자나 간 시대 상황을 이해해 달라거나 공감대를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마는 아직도 살아 있는 세대로서, 당시 같은 아시아 국가의 필리핀의 국민소득이 170불이고, 동남아 태국의 국민소득도 220불 등인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겨우 76불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과연 오늘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 가를 그냥 도외시 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 여겨 집니다.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만 현재를 지키며 발전시키고 더 발전된 미래를 기약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당시를 일선에서 몸소 경험한 세대들은 오늘의 현실을 통해 그 동안 피와 땀을 흘려 자신들이 쌓아 온 공든 탑이 일부 소수의 삐뚜러진 이념과 사고를 가진 사회의 지도층에 의하여 손 쉽게 허무러지는 상황이 도래 되지 않을 까 노심초사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98년도에 IMF사태를 맞기 이전인 96년도 봄에 물류 벤치마킹을 위해 네델란드와 독일 및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에 파리에 잠시 들렸을 때 그 곳에 있는 고급 백화점들에 채용되어 한국어 통역근무를 하는이들을 보고 경제에는 많은 조예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도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는 또 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아니라 하더라도 경제상의 대혼란이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상을 했었는 데 과연 2년 여 후에 바로 국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사태를 빚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 생각을 해 보시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입니다. 어찌해 파리의 백화점에 영어 통역도, 일어 통역도 없는 터에 한국어 통역이 있다는 것입니까? 과연 우리의 경제가 그들을 능가해서 해외 백화점에서 달라를 흥청거리며 뿌릴 수 있었겠는 가 하는 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 통역으로 근무하고 있던 점원으로부터 들은 바 있지만 그 이전에 과연 국내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바대로 현장의 사람 입을 통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가 값 비싼 물건을 골라서 사면 바로 싹쓸이로 사버리길 그렇게 좋아 한다니 그들로서는 어쨌던 꿩 잡는 놈이 매라고, 미국인이던 일본인이던 사용하는 달라의 가치는 같은 터인데 물건을 많이 팔아주고 사가는 고객이 장땡이가 아닌냐는 것이었지요. 그러면서도 같은 동포로서 한 편으로 걱정이 되지 않는 바는 아니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물론 비교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지금의 젊은 세대나 소위 386세대들이 이젠 노년기에 접어던 우리 60대의 세대가 일선에서 피와 땀을 흘려 일을 하고 있을 때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거나 아직 출생도 하지 않은 터였기에 이들이 어찌 당시의 사회가 내. 외적으로 안고 있던 어려운 실상을 온전히 이해 할 수 있겠으며, 제대로 이해를 구할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오늘의 사회건설이 이루어 지기까지 국내외 일선 현장에서 피땀 흘려서 수고한 세대들을 향해서 이제는 한 물이 간 세대라 하여,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이들이 이 세대들을 향해 수구세력 운운 하면서 폄하 하는 것을 볼 때이면 너무 서운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심지어 어떤 잘 나가는 현 여당의 중견 정치인은 국가의 주요 대사를 치루는 선거 일을 며칠 앞두고 노인들은 투표장에 나 올 필요도 없다고 공공연히 피력 할 정도로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이 나라의 장래마저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 사회의 386세대나 젊은 세대들이 몰아 부치고 생각하는 것처럼 지금 노년기에 접어던 세대들이 민주화에 대한 의욕이 젊은 세대들에 비해 약하거나 없거나 민족 통일의 의지가 약한 세대들이 결코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 일선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겁이 많은 움추린 세대가 또한 아님니다.

이승만대통령의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를 여러분들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근간에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각목을 손에 쥐고 거리를 떼지어 나와서 경찰은 물론이고 군인들마저 후려치며 폭력을 일삼을 그런 겨를 조차도 그 땐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불과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은 1960년대 초 박정희 소장에 의한 5.16혁명 때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일부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을 하면서 미군들의 잔반을 재처리해 끼니를 떼우던 가정을 찾기가 흔한 시대였다는 걸 우리 세대들은 알고 있으며, 지난 1964년만 해도 국민소득이 겨우 100달러였을 정도로, 만사를 제쳐 두고 우선은 오늘의 북한에 못지 않게 하루하루 생존이 문제였던 국민의 굶주림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코 앞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박대통령 시대에 즐겨 부르던 새마을운동 노래 가사 가운데는 "~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하고 염원을 담았겠습니까? 자신도 60년대 말 군사유학으로 도미를 했을 때 당시 우리 한국군 장교들은 동남아의 다른 국가로부터 유학 온 장교들의 반에도 못 미치는 겨우180불이라는 돈을 받아서 한 달을 버티어 나갔으며, 현지의 쇼핑몰에 주차되어 있는 수 많은 차량들을 보고 신기해서 감탄을 하면서 연신 카메라의 샷터를 눌러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시대가 변하여 우리나라의 경제력도 급신장 하였고, 따라서 국가의 경쟁력도 10위권 근처로 껑충 뛰었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이 어려웠던 지난 날을 너무 무시 하거나 도외시 한다면, 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대 간의 갈등과 계층 간의 갈등을 지금처럼 계속해 부추기게 된다면 엄청난 시련을 다시 겪을지도 모릅니다.    

결코 지금 노년기에 접어던 세대 사람들은 용기가 없었다거나 의욕이 없는 세대여서 여러분들처럼 이념의 갈등이나 조직의 이익을 모르거나 팽개치고 숨 죽인 채 여러분들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거리로 뛰쳐 나오거나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게 아님니다.   

60년대 당시 유엔에 가입하고 있던 국가의 수가 120여 개국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는 변변한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최 하위권의 빈국에 속 할 정도로, 필리핀의 국민소득 170불이나 태국의 220불에도 못 미치는 겨우 76불의 수준으로서, 우리나라 뒤에는 오직 인도만 있었을 뿐입니다. 국가에서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려고 해도 달라를 빌려줄 국가가 어디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우리의 우방이라고 자처하던 미국마져도 이를 외면하던 시절이었기에 하다 못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단안을 내려 국제사회가 가난한 우리나라를 이렇게 도와주기를 외면하고 있다고 해서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여 국가를 재건 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우리와 같이 분단의 고통을 안고 있으면서도 국력이 강했던 서독을 방문하여 당시 서독이 긴요하게 필요로 하던 간호사와 광부를 우리나라에서 보내주는 조건으로 일종의 이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히는 상황에서 서독으로부터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고졸출신을 대상으로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을 정도이고 실상에는 그들 가운데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다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지금과는 달리 어려운 대학과정을 나오고서도 이런 어렵고 위험한 일을 자원하여 고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라 형편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현재 우리들 젊은이들은 중국에서 국내에 들어 와 우리나라 전국의 이곳저곳에서 갖 가지 궂은 일과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조선족을 보면서도 별다른 감회를 느낄 수가 없겠지만, 과거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태우기 위해 서독 항공기가 도착한 김포공항에서는 이들을 떠나 보내기 위해 나 온 가족과 친지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 지 모릅니다. 사람도 산천도 모두가 낯선 이국 땅 서독에 도착해 그 나라의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은 저마다 시골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져 배치 되었으며, 그들에게 처음으로 맡겨진 일은 서독인들이 하기를 꺼리는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으며,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가 넘는 깊은 땅 속을 파고 내려가 뜨거운 지열과 싸우며 위험을 무릅쓰고 서독인들이 하루 8시간 일하는 것에 비해 열 시간이 넘도록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를 두고 당시 서독의 방송과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많은 찬사를 보내곤 했습니다.
이들이 서독에서 피와 땀을 흘려 일하고 있던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하게 되어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었는 데 그 때 작업복 입은 시커멓게 얼굴이 그을려 있는 광부들은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던 박 대통령은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계속 일하자는 이 말만을 반복했다고 하며, 대통령이란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가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다고 합니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친자식들처럼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으며,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을 향해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기에 동석한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답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경제의 양극화보다도 사실은 더욱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념의 양극화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 아닙니까? 

'조국근대화'의 점화가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고 한다면, 이 시기에 월남전에 파병  되었던 지금은 이미 작고 하였거나 노병으로 살아가고 있는 당시의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을 오늘의 일부 세력은 진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매도 하고 폄하 하면서 파월 장병들의 피와 땀을 모욕 하듯이,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파견한 용병, 운운 하고 있지만, 그들의 역할도 오늘 날 우리 경제의 회생을 위한 기폭제가 되었음은 부인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들 참전용사들의 피와 땀을 욕되게 하는 젊은 세대들에겐 분노마져 금할 길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여, 일부 386세대와 정치인들이여! 그대들이 아무리 상황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파독 간호사와 광부, 월남전에 참전한 장병, 열사의 중동사막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결코 욕되게 하지 말기를 당부합니다.

또한, 주월남 한국대사관의 마지막 공사로서 월맹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후 석방되신 이대용공사께서 작년에 기고한 글의 내용, 즉 오늘 날 우리나라의 현상이 패망 직전의 월남 상황과 유사하게 닮은 꼴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제 고령에 접어던 그 분이 무엇 때문에 무슨 욕심이 있어서 이렇게 호소 하시겠습니까?

지난 역사를 더듬어 볼 때, 우리의 선조들이 갖 가지 내우외환과 우역곡절을 겪으면서도 이 만큼이라도 일구어 놓은 이 나라를 더 이상 와해시키거나 분열을 조장하는 무리들을 경계하면서, 불필요한 세대간의 갈등을 슬기롭게 잘 극복하여 선진 복지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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